▲ 여갑순이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금메달 과녁을 조준하고 있다. ⓒ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국장] 1992725일부터 89일까지 벌어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한 344(임원 97 선수 274)의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12개와 은메달 5, 동메달 12개로 종합 순위 7위에 올라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거둔 성적이 결코 홈의 이점을 살린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한편 경기력이 스포츠 선진국 수준에 올랐다는 걸 확실히 보여 줬다.

한국은 출발이 좋았다. 개막식 다음 날인 726, 260개 세부 종목 가운데 가장 먼저 열린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서울체고 2학년에 재학하고 있던 18살의 소녀 여갑순이 금메달 과녁을 명중했다. 이 종목에서 지난 2년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지켜 금메달 후보 0순위로 꼽히던 불가리아의 베셀라 레체바에게 2.9점이나 앞선 498.2의 좋은 기록이었다. 결선에서 10발을 쏘는 동안 레체바에게 단 한번도 리드를 빼앗기지 않고 독주를 거듭한 끝에 이룩한 대회 1호 금메달이었다. 여갑순은 본선에서 레체바에게 1점이 뒤진 가운데 결선에 올랐으나 8발째까지 모두 10점을 쏴 전세를 간단히 뒤집은 뒤 9번째 사격에서 9.9, 마지막 10번째 사격에서 9.8점을 기록해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10년 연상의 레체바를 꺾었다.

사격에서 여갑순의 '금메달 바통50m 소구경 복사의 이은철이 이어받았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 이후 3번째 올림픽에 출전한 관록의 이은철은 본선에서 다소 부진해 최하위로 8강에 올랐지만 결선에서 역전극을 펼치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1988년 서울 올림픽 52kg급 은메달리스트인 작은 거인전병관은 체급으로 올려 도전한 끝에 금메달을 들어 올렸다. 역도는 1948년 런던 대회와 1952년 헬싱키 대회에서 미들급의 김성집이 잇따라 동메달을 따고 1956년 멜버른 대회에서는 라이트급의 김창희가 동메달을 목에 걸어 한때는 올림픽 메달박스로 통하던 종목이었지만 1960년 로마 대회부터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까지 24년 동안 노 메달이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와 1991년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 잇따라 정상에 올라 바르셀로나 올림픽 56kg급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았던 전병관은 인상에서 132.5kg과 용상 155kg, 합계 287.5kg으로 라이벌인 중국의 류쇼우빈을 10kg 차이로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처음 올림픽 정식 세부 종목이 된 여자 유도 72kg급에서 우승한 김미정. ⓒ대한체육회

전통의 효자 종목인 격투기 종목은 물론 구기 종목의 선전도 눈부셨다.

레슬링에서는 자유형 74kg급의 박장순과 그레코로만형 57kg급의 안한봉이 각각 금메달을 안았다. 서울 올림픽 68kg급 은메달리스트인 박장순은 결승에서 올림픽 2연속 우승을 노리던 서울 대회 74kg급 금메달리스트 캐네스 먼데이(미국), 안한봉은 1990년과 1991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리파트 일디츠(독일)를 각각 판정으로 꺾고 1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안한봉은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는 일디츠에게 초반 잇따라 점수를 내주며 경기 종료 30초전까지 3-5로 뒤져 패색이 짙었으나 사력을 다한 허리 태클과 옆굴리기로 내리 3점을 따 6-5의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일궈 냈다. 레슬링에서는 이밖에 자유형 48kg급의 김종신이 은메달, 그레코로만형 52kg급의 민경갑이 동메달을 획득해 메달 레이스에 추진력을 불어넣었다.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여자 유도에서는 72kg급의 김미정이 남자선수에 못지않은 힘을 앞세워 승승장구한 끝에 결승에서 만난 일본의 다나베 요코를 3-0으로 물리치고 이 체급의 올림픽 초대 챔피언이 됐다. 남자 60kg급 윤현은 은메달, 71kg급과 78kg급의 정훈과 김병주는 동메달을 보탰다. 김미정과 김병주는 이후 올림픽 메달 커플이 됐다.

복싱에서는 60kg급의 홍성식과 75kg급의 이승배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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