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어제의 동지가 적으로 마주했다. 12년 전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 저주'를 깨는 데 힘을 모았던 테리 프랑코나(57)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감독과 테오 엡스타인(42) 시카고 컵스 사장이 엇갈린 표정을 지었다.

컵스는 3일(이하 한국 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2016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와 월드시리즈 7차전서 8-7로 이겼다. 시리즈 스코어 4승 3패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뤘다. 1승 3패 열세를 딛고 5, 6, 7차전을 내리 잡으며 짜릿한 역전 우승을 달성했다.

▲ 시카고 컵스 테오 엡스타인 단장

'질긴 저주'를 깼다. 젊은 사장이 또 한번 새 역사를 썼다. 엡스타인 사장은 12년 전 밤비노의 저주를 깬 데 이어 컵스를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보스턴 우승에 한몫했을 때 현장을 지휘했던 사령탑이 바로 프랑코나 현 클리블랜드 감독이었다. '붉은 양말'을 월드시리즈 정상으로 안내하는 데 손을 맞잡았던 두 사람은 2016년 시즌 외나무다리에서 적으로 만났다. 엡스타인이 웃었고 프랑코나 감독은 고개를 떨궜다.

2011년 엡스타인은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컵스 사장으로 새 출발했다. 당시 밤비노 저주를 극복한 그가 '염소의 저주'도 깰 수 있을지 주목 받았다. 컵스는 1945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월드시리즈 4차전서 홈구장에 염소를 데리고 들어가려 했던 관중을 제지한 바 있다. 이때 이 야구 팬은 "이제 리글리필드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며 저주를 퍼부었다. 실제 컵스는 1945년 시즌 뒤 월드시리즈 우승은커녕 진출조차 하지 못했다. 이 기간 지구 우승 6회를 이루는 등 좋은 전력을 자랑할 때도 있었지만 마지막 무대와는 연이 닿지 않았다.

이 젊은 사장은 새 팀에서도 제대로 실력을 발휘했다. 엡스타인이 부임했을 때 컵스는 꽤 오랫동안 우승권 전력으로 올라서지 못하고 있었다. 2008년 내셔널리그 중부 지구 우승 이후 뚜렷한 실적을 수확하지 못했다. 그러나 '엡스타인 마법'은 컵스를 빠르게 강팀으로 성장하게 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잇따라 대박을 쳤다. 카일 슈와버, 크리스 브라이언트가 그의 대표작이다. 또 제이슨 헤이워드, 에디슨 러셀, 존 래키, 벤 조브리스트 등을 새 식구로 들였다. 육성과 외부 수혈 모두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 가며 전력을 살찌웠다. 효율적인 FA(자유계약선수) 영입과 신예 발굴, 기민한 트레이드로 보스턴에 이어 컵스 역사에도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테리 프랑코나 감독
프랑코나 감독은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주가를 크게 끌어올린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승패를 떠나 그를 향한 칭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라운드 위에 내놓는 용병술, 마운드 운용, 승부처를 읽는 '눈'이 물이 올랐다는 평이다. 이번 월드시리즈에서도 카를로스 산타나의 '좌익수 기용', 앤드루 밀러 조기 등판을 성공적으로 펼쳤다.

월드시리즈 3차전 때 보인 전략이 백미였다. 파격적인 수를 놓았다. 산타나를 좌익수로 기용하는 깜짝 카드를 꺼냈다. 프랑코나 감독은 지난달 29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3차전서 산타나를 좌익수로 기용했다. 승부수였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스위치 히터 산타나는 포수로 빅리그 무대를 밟은 선수다. 이후 1루수, 지명타자 등으로 기용됐다. 그러나 좌익수로는 통산 4이닝을 책임진 게 전부다. 그것도 4년 전 일이다. 그러나 프랑코나 감독은 마지막 가을 무대에서 산타나를 좌익수로 기용했다. 공격력이 좋은 그를 수비 부담이 적은 포지션에 배치해 장점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산타나는 3차전에서 볼넷 2개를 골랐다. 바지런히 1루를 밟았다. 3차전서 프란시스코 린도어와 함께 가장 많이 출루한 클리블랜드 타자였다. 수비에서도 실책 없이 안정적으로 경기를 마쳤다. 팀도 컵스를 1-0으로 따돌렸다. 많은 우려를 샀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프랑코나 감독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4차전에선 산타나를 4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하게 했다. 주전 1루수 마이크 나폴리를 선발 명단에서 뺐다. 또 한번 승부를 걸었다. 보기 좋게 적중했다. 산타나는 0-1로 끌려 가던 2회초 선두 타자로 나서 컵스 선발투수 존 랙키에게 동점 홈런을 뺏었다. 이후 2안타를 더 추가하며 팀의 7-2 승리에 한몫했다.

당시 'FOX-TV' 캐스터 조 벅은 "프랑코나는 천재다. (3차전에서) 공격을 살리기 위해 산타나를 좌익수로 기용하더니 이번에는 나폴리를 벤치에 앉히고 산타나를 4번 타자-1루수로 내보내는 강수를 뒀다. 뚝심이 빛났다. 결과도 함께 얻었다. 그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던 모든 게 척척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칭찬했다. 준우승에 그쳤지만 프랑코나 감독은 단기전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점을 홍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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