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초대 수장으로 뽑힌 김응룡 회장 ⓒ 한희재 기자

올 시즌 KBO리그도 명암이 엇갈린 한 해였다. 두산이 구단 첫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가운데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800만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돔구장이 개장됐고, 프로 야구 출범 후 FA 100억 원 시대도 열었다.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감추고 싶은 그림자도 짙었다. 팬은 불법 도박과 승부 조작 사건에 차가운 눈길을 보냈고, 김성근 한화 감독은 '지도 철학' 논란에 휘말렸다. 스포티비뉴스는 올 시즌 프로 야구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를 10대 뉴스로 정리했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새 시대를 열었다. 한국 아마추어 야구 수장으로 첫 정통 야구인이 이름을 올렸다. '코끼리 감독' 김응룡(75)이 야구계 전폭적인 지지 속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초대 수장으로 뽑혔다.

김 회장은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KBSA 제1대 회장 선거에서 유효표 127표 가운데 85표를 얻어 41표에 그친 이계안 후보를 제쳤다. 무효표 1표. 야구계 대통합을 강조한 김 후보가 '원포인트 릴리프론'을 내세운 이 후보를 꺾고 협회 초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 '최초' 야구인 출신 수장…야구계에 부는 '변화 바람'

대화합 메시지가 효과를 봤다. 한국 야구계가 바라는 바는 뚜렷했다. 그동안 야구인은 재정 안정을 이유로 정치인·기업인에게 대한야구협회 수장을 맡겼다. 야구 현장에 몇십 년 몸담은 이보다 자금 동원이 더 수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내홍이 심각했다. 지난 3월에는 대한체육회 관리 단체로 지정되기도 했다. 전임 회장 때 벌어진 기금 전용과 비리 탓이었다. 수뇌부를 향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기대했던 '돈줄'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대로는 다 망한다'는 위기감이 일었다. 대한야구협회와 전국야구연합회, 대한소프트볼협회가 손을 모았다. 3개 단체 통합을 이뤄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 발걸음을 새로 뗐다. 김 후보는 야구 환골탈태에 작은 밀알이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지며 KBSA 회장 선거에 입후보했다.

야구인이 움직였다. 김 후보를 중심으로 지지층 결집이 이뤄졌다. 책임감 있는 야구계 큰어른이 한국 야구 조타수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뜻이 모아졌다. 지난달 28일 일구회를 시작으로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한은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의 릴레이 지지 선언이 대표적이다.

당선 소감에서 명확히 밝혔다. 김 회장은 아마추어 야구계 '파벌 싸움'을 뜯어고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번도 프로 선수로 뛰어본 적이 없다. 40년 넘게 야구를 했는데 늘 아마추어 쪽에 있었다. 요즘 (아마추어 야구계에) 경쟁이 과열돼 암적인 존재가 나타났다. 파벌 싸움이 심각하다. 프로 야구가 생기면서 분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나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힘줘 말했다.

◆ 문제는 '바닥 난 곳간'…KBO와 관계 정상화 '속도전'

가시밭길이다. 재정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KBSA는 현재 돈줄이 말랐다. 김 회장은 20억 원 재원 마련을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 로드맵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정·재계 출신 후보에 비해 상대적 열세로 평가 받은 부문이기도 하다. 재원 확보 가능성은 4년 임기 내내 김 회장의 '신발 속 가시'로 작용할 확률이 높다.

묘수는 있다. KBO와 공조다. 김 회장은 프로 야구 입장료 일부를 떼어 아마추어 야구 발전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 협의가 오간 건 아니다. 그러나 명분과 실리 모두 지녔다. KBO는 젖줄인 아마추어 야구를 외면하기 어렵다. 또 내부적으로 정통 야구인 출신 김 회장을 반기는 분위기도 있다. 그간 정치인 회장과 껄끄러웠던 KBO는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코끼리 수장'을 관계 정상화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냉랭했던 두 단체 데탕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돈'을 쥔 KBO, 혁신 첫걸음을 뗀 KBSA간 협상이 급물살을 탈 확률이 높다.

비옥한 '대화합 토양'을 만들 수 있다. 돈 문제가 해결된다면 세 단체의 화학적 결합을 앞당길 수 있다. KBSA는 지난 6월 29일 대한야구협회와 전국야구연합회, 대한소프트볼협회 등 3개 단체가 통합해 출범했다. 대한체육회로부터 '관리 단체 지정' 수모를 겪은 지 97일 만이었다. 대승적 결단이었다. 절박한 위기감을 행동으로 보였다. 그러나 아직 통합 사무실이 없다. 타 기관과 커뮤니케이션 통로도 일정하지 않다. 구체적인 플랜도 부재한 상황. 돈이 윤활유 노릇을 할 수 있다. KBO, 후원 기업 등과 원활한 협력 플레이에 속도를 낼 수 있다.

◆ '은퇴 뒤' 인생 2막…외연 넓힌 '회장 김응룡'

'회장 김응룡'이 지닌 의미는 작지 않다. 선수 출신 인사의 은퇴 뒤 선택지를 늘렸다. 그간 지도자, 구단 프런트, 해설 위원에 국한됐던 운동선수 인생 2막에 협회 수장을 추가했다. 현장-행정을 명확히 구분했던 과거와 다르다. 이분법 도식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문제 의식을 야구계 현안 해결에 녹여낼 가능성이 크다.

전문성이 강점이다. 풍부한 현장 경험으로 책상과 그라운드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 경영인 사이에 '우문현답'이란 말이 있다. 보통 뜻과는 달리 쓰인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를 줄인 말이다. 현장 경영을 강조하는 최고경영자(CEO)가 즐겨 쓴다. 최근 경기인 출신이 구단·협회 리더로 발탁되는 사례가 늘었다. 하나의 흐름이다. 박종훈 한화 이글스 단장, 송구홍 LG 트윈스 단장이 좋은 예다. 김 회장은 이러한 트렌드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한국 야구는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유니폼을 벗은 선수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최근 은퇴 뒤 야구 지식을 체계적으로 쌓는 경향이 짙다. 십수 년 선수 생활 경험에 공부를 더하고 있다. 수확물이 조금씩 걷히고 있다. 행정 업무에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경기인 출신 케이스'가 늘고 있다. 범위도 구단 사장과 육성이사, 운영총괄팀장 등 행정 요직에 걸쳐 있다. 

'회장 김응룡'이 야구인들의 인생 2막 외연을 넓혔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