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 딥마인드사 데미스 하사비스 대표(왼쪽), 이세돌 9단 ⓒ 구글

한국의 2016년이 극심한 소용돌이 속에 새로운 시대를 연 해로 기억될 전망이다. 한국 체육도 같은 길을 걸었다. '국정 농단 사태'가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정국에서 체육은 태풍의 눈이었다. 그러나 큰 피해 속에서도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야구와 축구 등 각 종목은 팬의 사랑 속에 소중한 싹을 키웠다. 바둑발 '알파고 신드롬' 속에서 인간과 기계, 스포츠의 정의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스포티비뉴스는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한국 스포츠의 2016년을 10개의 키워드로 정리한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다. 구글 딥마인드사가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인간을 이겼다. 기계-인간이 펼친 5차례 수 싸움은 제법 무거운 물음을 던졌다.

바둑이 과연 스포츠인가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던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알파고 신드롬 이후에는 '도대체 스포츠는 무엇인가'라는, 스포츠의 정의(定義)를 향한 근원적인 성찰이 시작됐다. 나아가 기계와 인간의 공존, 기술의 통제 가능성에 관한 고민을 낳았다.

세계가 놀랐다. 알파고는 지난 3월 한국 프로 기사 이세돌 9단과 5번기 대국을 펼쳤다. 애초 예상을 깼다. 최종 스코어 4승 1패로 이 9단을 이겼다. 현존 최고 바둑 AI로 올라섰다. 인공지능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

통념을 깨트렸다. 창의적인 수(手)를 뒀다. 이 9단이 "독창적인 수를 대국 내내 같은 호흡으로 두는 게 인상적이다. 흐트러짐이 없다고 해야 할까. 인간적인 바둑을 두는데 인간과 붙는 느낌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알파고는 수천 년 동안 이어진 바둑 패러다임 변혁을 예고했다.

한국기원은 알파고가 '입신(入神)' 경지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프로 명예 단증인 9단을 수여했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바둑계의 인정을 받았다.

◆ 알파고의 경제적 가치…승자로 우뚝 선 '구글'

브랜드 가치 평가 회사 '브랜드스탁'은 지난 7월 초 한국 100대 브랜드를 선정했다. 다국적 인터넷 기업 '구글'이 13위에 올랐다. 1분기와 비교할 때 무려 23계단이나 상승했다.

브랜드스탁은 '구글은 상징이다. 미래 생활상을 바꿀 혁신 기업을 대표한다. 이러한 지위를 얻는 데 바둑 AI 알파고가 크게 한몫했다. 프로 기사 이 9단과 대결 추진은 창조적이었다. 발상이 남달랐다. 마케팅 역사에도 한 획을 그은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눌렀다. AI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얻었다. 인간에게 경외심을 안겼다'고 설명했다.

최대 수혜자는 구글이다. 돈다발이 쏟아졌다. 구글은 이 9단-알파고 대국이 진행되는 동안 시가총액이 58조 원이나 늘었다. 탄탄한 기술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 번뜩이는 이벤트 기획으로 개가를 올렸다.

◆ 알파고가 뿌린 '감정 씨앗'…이정표와 두려움 사이

이정표를 세웠다. 한국 사회가 미래 먹거리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방향을 일러 줬다. 알파고 신드롬의 요체는 이 9단 패배가 아니다. "인간이 진 게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것이다"란 인터뷰는 신드롬의 촉매제 노릇을 했지만 딱 거기까지다. 핵심은 AI 승리가 준 충격파다.

통제 가능성이 의심되는 미래가 보였다. 희망과 우려가 뒤섞였다. 복잡한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알파고 승리가 공론장을 만들었다. 밝은 면을 보되 대비도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미래 신성장 산업 정책을 추진하면서 '안전장치'를 꼼꼼히 살피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끝을 헤아릴 수 없다. 바둑에서 경우의 수는 무한에 가깝다. '10의 170 제곱'에 이른다. 알파고는 이 엄청난 가짓 수를 1분만에 계산한 뒤 수를 둔다. 또 대국을 펼칠 때마다 복기 내용을 데이터베이스(DB)화한다. 바둑을 둘수록 무섭게 성장한다. 구글이 자랑한 '딥 러닝' 프로그램이다.

알파고의 학습 능력은 독보적이다. 양(量)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세돌과 대국하기 전 살핀 기보만 3000만 개에 이른다. 인간이 알파고 등장에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정서 밑바탕에는 기계의 독보적인 습득력에 관한 두려움이 배여 있다.

1957년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맞수' 소련이 인류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했다.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이 미국과 서유럽을 공격할 수 있다는 염려가 또아리를 틀었다. 세계 언론은 "미국이 '스푸트니크 위기'를 맞았다"며 대서특필했다.

미국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헛발질하지 않았다. 곧바로 과학·기술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 확대를 이뤘다. 인력 양성과 연구·개발이 수월하도록 제도를 손질했다. 이듬해 2월 1일 미국은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 발사에 성공했다. 공포감을 자양분으로 삼았다. 

인류는 진보를 지향한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꾼다. 알파고 출현이 '스포츠판 익스플로러 1호'를 낳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숙제다. 올겨울 한국 사회는 제출 기간이 넉넉하지 않은 꽤 두툼한 과제를 받았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