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영준은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역주를 거듭한 끝에 2시간11분11초로 8년 만에 아시아경기대회 마라톤 금메달 맥을 이었으나 이후 한국 마라톤은 계속 뒷걸음질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국장] 다시 7년 만인 2001년 제105회 대회에서 이봉주가 2시간9분43초의 기록으로 골인해 54년 전의 대선배 서윤복과 51년 전의 대선배 함기용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3번째 보스턴 마라톤대회 우승자가 됐다. 1991년 대회부터 2000년 대회까지 케냐 선수들이 10회 연속 우승하는 등 아프리카세가 세계 마라톤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거둔 성적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이에 앞서 이봉주는 2000년 2월 13일 도쿄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7분20초의 한국 최고 기록을 세웠다. 도쿄 대회는 이봉주가 1990년 제71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마라톤에 데뷔한 뒤 25번째 기록한 완주한 레이스였고 이때 이봉주는 33살이었다. 당시 세계 최고 기록은 모로코 출신의 미국 국적 선수 할리드 하누치가 갖고 있는 2시간5분42초였다. 이 대회에서 이봉주가 수립한 한국 최고 기록은 2016년 현재 깨지지 않고 있다. <18편에서 계속> 

1986년 서울 대회에 이어 16년 만에 국내에서 다시 열린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남남북녀’ 오누이가 마라톤에서 동반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의 이봉주가 남자부에서 2시간14분04초의 기록으로 우승했고 여자부에서는 북한의 함봉실이 2시간33분35초로 1위를 차지했다. 이봉주의 금메달은 1998년 방콕 대회에 이어 아시아경기대회 개인 2연속 우승인데다 1990년 베이징 대회 김원탁, 1994년 히로시마 대회 황영조를 포함해 4개 대회 연속 우승이어서 가치가 더욱 빛났다. 

그러나 45개의 금메달이 걸린 육상에서 한국은 이봉주 외에 남자 높이뛰기의 이진택, 여자 창던지기의 이영선 등 3명이 금메달을 차지해 말 그대로 체면치레에 그쳤다.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육상 종합 5위)는 홈그라운드에서 열렸던 서울 대회의 금메달 7개와 은메달 5개, 동메달 13개(육상 종합 3위)에 견주면 2000년대 한국 육상의 현주소를 바로 알 수 있다. 옛 소련이 해체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 아시아 나라들이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면서 육상을 비롯한 많은 종목에서 판도 변화가 일어났지만 한국 육상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두 대회 성적에서 바로 알 수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이봉주는 역주했지만 자신의 최고 기록인 2시간7분20초에 8분여 뒤지는 2시간15분33초로 14위를 마크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신기하게도 이탈리아와 미국, 브라질 등 비 아프리카 나라들이 1~3위를 차지했다. 은메달을 차지한 미국의 멥커 플레즈기는 12살 때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아프리카 에르트리아 출신이기는 하다. 

축구와 탁구 등 여러 종목에서 망명 또는 귀화 외국인 선수의 활약상은 이제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지만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이런 흐름이 한국 육상과 연결되는 일이 벌어졌다. 도하 대회 남자 마라톤에서 한국은 지영준이 2시간19분35초로 골인해 7위에 그치며 아시아경기대회 연속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이 대회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는 무바라크 하산 샤미(카타르, 2시간12분44초), 은메달리스트는 칼리드 샤말 야신(바레인, 2시간15분46초)이다. 둘은 케냐 출신 귀화 선수다. 하산 샤미는 2007년 파리 마라톤대회 1위,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위,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은메달 등 제2의 조국인 카타르에 많은 선물을 안겼다. 

도하 대회 육상 종목에서 바레인은 금메달 6개와 은메달 5개, 동메달 3개로 한국(금 1 은 1 동 3, 육상 종합 10위)은 물론 일본(금 5 은 9 동 13, 육상 종합 3위)과 사우디아라비아(금 5 동 2 육상 종합 4위) 등 아시아의 육상 강국을 제치고 중국(금 14 은 9 동 8)에 이어 육상 종합 2위에 올랐다. 2002년 부산 대회에서 육상 종합 7위(금 2 은 1 동1)에 그쳤던  서아시아의 작은 나라 가 어떻게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부산 대회 금메달리스트 2명이 모로코 출신 귀화 선수였는데 도하 대회에서는 6명(남 3 여 3)의 금메달리스트 가운데 1명만 자국 선수이고 다른 선수는 모두 케냐와 에티오피아 출신 귀화 선수였다. 

이런 흐름은 2010년  광저우 대회와 2014년 인천 대회로 이어진다. 인천 대회에서는 바레인이 육상 종합 2위(금 9 은 6 동 3), 카타르가 3위(금 6  동 3)를 차지했다. 아시아 지역 전통의 육상 강국 일본(금 3 은 12 동 7, 육상 종합 4위)을 가볍게 제친 것은 물론 ‘슈퍼 파워’ 중국(금 15 은 14 동 11, 육상 종합 1위)을 따라잡을 기세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지영준이 역주에 역주를 거듭해 2시간11분11초로 8년 만에 남자 마라톤 금메달을 되찾고 남자 멀리뛰기 김덕현, 여자 100m허들 이연경, 여자 멀리뛰기 정순옥이 금메달을 더해 육상 종합 순위 6위(금 4 은 3 동 3)로 나름대로 선전했다.

그러나 대회 사상 3번째로 홈그라운드에서 열린 인천 대회에서는 금메달 없이 은메달 4개와 동메달 6개로 육상 종목에서 메달을 딴 18개 나라 가운데 14위에 그치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남자 마라톤에서는 메달은커녕 몽골과 북한, 심지어는 스리랑카 선수에게도 뒤지는 10위(2시간23분11초)와 13위(2시간31분29초)로 골인했다. 이 기록은 손기정 선생이 양정고보에 다니던 때인 1935년 5월 조선체육회 주최 제3회 풀(코스) 마라톤대회에서 세운 당시 비공인 세계 최고 기록 2시간24분28초 수준이다.  

한국은 1988년 서울 여름철 올림픽과 2018년 열릴 평창 겨울철 올림픽,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 대회와 함께 스포츠 세계 4대 이벤트 가운데 하나인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2011년 대구에서 열었지만 육상 중흥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 

2016년 한국 육상은 리루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세계의 높은 벽에 막혀 쓴맛을 본 가운데 이웃 일본이 남자 4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따는 레이스를 씁쓸하게 지켜봐야 했다. 일본은 남자 경보 50km에서 아라이 히로키가 동메달을 추가했다. 중국은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 가운데 남녀 경보에서만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거둬들였다. 경보는 한국 육상이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전략 종목으로 꼽은 경기다.  중국의 사례를 봤을 때 그 선택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시아 나라들과 경쟁에서도 날이 갈수록 뒤처지고 있는 한국 육상, 선택과 집중 외에는 달리 답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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