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육진단③] 메달개수보다 학교 운동장 활성화가 먼저다… 한국체육의 미래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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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배정호 기자] 메달 숫자만으로 한국 스포츠의 현재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의 국가주도형 선수 육성 시스템과 일본의 탄탄한 스포츠 저변이 경쟁력을 입증했다. 반면 한국은 학교체육의 위축과 선수 육성 기반의 약화, 변화하는 선수들의 특성에 맞는 지도자 육성 체계의 필요성, 부처별로 나뉜 스포츠 정책의 조정과 실행 등 여러 과제를 확인했다. 스포티비뉴스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국 체육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다각도로 진단하고, 국민의 체육활동 확대와 안정적인 선수 육성 기반 구축을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배정호 기자] 한국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종합 3위에 올랐다.
국제대회 성적을 분석하고 메달의 의미를 되짚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메달 숫자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한국 체육이 직면한 본질적인 문제를 놓칠 수 있다.
지금 한국 스포츠가 돌아봐야 할 것은 메달을 몇 개 더 따고 덜 따느냐가 아니다. 대한민국 체육의 근간인 학교체육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체육의 위기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엘리트 스포츠의 출발점인 학교운동부의 위기다.
학교운동부가 줄어들고 학생선수도 감소하면서 한국 스포츠의 인재 육성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
과거 학교운동부가 담당했던 선수 발굴과 육성의 기능이 점차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당장의 국제대회 성적보다 앞으로 10년, 20년 뒤 한국 스포츠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다.
두 번째는 모든 아이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학교체육 환경의 문제다.
운동선수가 아닌 평범한 학생들은 과연 학교에서 충분히 뛰고, 놀고, 땀 흘릴 기회를 보장받고 있을까. 체육수업의 내실화는 물론 운동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할 기회가 충분한지 돌아봐야 한다.
학교운동부의 위기가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미래를 위협한다면, 일반 학생들의 체육활동 환경 문제는 다음 세대 전체 나아가 대한민국의 건강과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두 문제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 학교에서 스포츠를 접하고 즐기는 아이들이 많아져야 우수한 선수도 발굴할 수 있고, 건강한 스포츠 문화도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 학교운동부의 위기 - 비참한 현실, 3년간 109곳 순감
학교체육의 포괄적 의미 위기는 이미 숫자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9월 2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제출받은 '최근 3년간 학교운동부 창단·해단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전국 학교운동부는 109곳 순감했다.
교육부 통계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된다. 전체 학교 가운데 운동부를 육성하는 학교 비율은 2018년 38.3%(4453곳)에서 2024년 32.7%(3898곳), 2025년 31.5%(3744곳)까지 떨어졌다.
학교운동부 학생선수도 감소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생 가운데 선수 비율은 2018년 1.35%(6만3029명)에서 2024년 1.02%(4만4723명)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학교운동부 지도자도 5809명에서 5413명으로 줄었다.
오랫동안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출발점이었던 학교운동부의 기반이 점차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학교운동부는 어린 학생들이 재능을 발견하고 전문적인 지도를 받으며 선수로 성장하는 한국 스포츠의 뿌리였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에 이르는 시기는 선수 육성의 중요한 단계다. 이 시기에 체계적인 훈련과 경기 경험을 제공해 온 학교운동부가 줄어든다는 것은 한국 체육의 미래 경쟁력에도 적신호가 켜졌다는 의미다.
유승민 회장과 김택수 선수촌장은 나고야 결산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뼈있는 발언을 남겼다.
"엘리트 체육, 특히 학교체육의 엘리트 육성은 과거에 비해 굉장히 많이 축소됐고 위축돼 있다. 어떻게 보면 눈칫밥까지 먹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고등학교, 중학교 선수들이 있다. 어떻게 보면 스포츠 영재다. 이 영재들이 앞으로 국가대표 훈련원에 계속 들어와서 훈련도 같이 해야 하는데 수업일수 등의 문제 때문에 훈련에 굉장히 애로사항을 많이 느낀다”
■ 학교체육환경의 위기 - 더 심각하다, 뛰어 놀 기회부터 부족하다
학교운동부의 감소보다 더 근본적으로 살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아이들이 운동을 시작하고 스포츠를 접하는 환경이다.
과거 학교 운동장은 스포츠 인재를 발견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방과 후 친구들과 뛰어놀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스포츠에 흥미를 느꼈다. 지도자가 운동장에서 재능 있는 학생을 발견해 운동부로 이끄는 일도 있었다.
출발점은 거창한 선수 육성 정책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일상에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학생들의 신체활동 수준은 우려스럽다.
질병관리청의 2025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하루 60분 이상, 주 5일 이상 신체활동을 실천하는 중·고등학생 비율은 남학생 24.5%, 여학생 8.5%에 그쳤다.
남학생은 약 4명 중 1명, 여학생은 10명 중 1명도 해당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셈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운동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다. 운동을 좋아하고 일상적으로 즐길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고 있느냐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공을 주고받으며 협력하고, 경쟁과 패배를 경험하는 과정은 단순한 체력 향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신체활동은 성장기 건강은 물론 사회성과 정서 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할 학교 운동장마저 민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학교의 대표적인 체육행사인 운동회조차 소음 민원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나타났다. 일부 학교에서는 주민 민원 등을 이유로 정규 수업 외 체육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이 문제는 지난 4월 국회에서도 제기됐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4월 기준 전국 초등학교 6189곳 가운데 312곳이 민원 등을 이유로 정규 교과시간 외 스포츠 활동을 제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학교 운동회와 관련한 112 신고는 350건에 달했고, 이 가운데 345건은 실제 경찰 출동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고 환호하는 일조차 민원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다.
모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환경마저 위협받고 있다.
■ 학교체육진흥법이 있지만 교육부·문체부의 엇박자
대한민국에는 이미 '학교체육진흥법'이 존재한다.
이 법은 교육부장관이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협의해 학교체육 진흥에 관한 기본 시책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학교운동부의 위기와 학생들의 체육활동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취지가 모두 이 법에 담겨 있다.
법의 목적은 학생의 체육활동 강화와 학교운동부 육성 등을 통해 학생들이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신체와 정신을 갖도록 하는 데 있다. 학교체육은 우수선수를 길러내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필수 교육이라는 의미다.
그동안 학교체육 정책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개별 학교를 중심으로 운영됐다. 반면 전문체육과 생활체육, 국가대표 육성은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종목단체가 주도했다.
그러나 두 부처가 각자의 영역에서 정책을 추진해 온 결과는 냉정하다.
학교운동부 운영 학교 비율은 떨어지고 학생선수는 감소했다. 저체력 학생 비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충분한 신체활동을 실천하는 청소년도 소수에 그쳤다.
학교체육진흥법이 지향하는 선수 육성 기반 유지와 학생 건강 증진이라는 두 가지 목표 모두에서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학교체육 정책은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법은 존재했고 부처 간 협의 체계도 마련돼 있었지만, 학교운동부의 감소와 학생들의 신체활동 부족이라는 현실을 바꾸지 못했다.
이제는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원인을 냉정하게 진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부처 간 협의에만 머물러 온 정책 추진 방식에서 벗어나 책임과 실행을 명확히 하는 행정체계가 필요하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5월 열린 '2026 대한민국 체육인대회'에서 학교체육에 대한 교육부의 책임을 더욱 강조했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체육수업과 학교운동부 운영, 학생들의 체육활동 환경은 기본적으로 교육행정의 영역이다. 문체부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학교 현장의 제도와 운영을 직접 바꾸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학교체육의 위기를 체육계만의 과제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 교육부가 학교체육을 교육정책의 핵심 과제로 인식하고 문체부와 함께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제는 체육인들도 문체부에 와서 항의할 것이 아니라 교육부에 가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 교육부·문체부 '교통정리' 나서야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가 주목받는다.
「스포츠기본법」에 따라 국무총리 소속으로 설치된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는 국무총리와 민간위원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국가 스포츠 정책의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며 관련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기구다.
단순한 자문이나 협의기구가 아니라 법률에 따라 심의·의결권을 부여받은 국가 차원의 정책조정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위원회의 역할은 학교체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을 비롯한 국가 스포츠 정책 전반을 다루는 만큼 교육부와 문체부 등 관계 부처의 정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역할을 조정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법에 명시된 권한이 실제 정책 실행으로 이어지고 있느냐다.
현재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는 심의·의결과 정책 총괄·조정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부처별 예산을 직접 편성하거나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은 아니다. 위원회에서 아무리 중요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관계 부처가 실행계획을 마련하고 예산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현장의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학교체육 진흥법」 제4조 제1항은 교육부장관이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협의해 학교체육 진흥에 관한 기본 시책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미 법률상 부처 간 협의체계가 마련돼 있지만 학교운동부는 감소하고 학생들의 신체활동 부족 문제도 계속되고 있다. 협의만으로는 학교체육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제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가 실질적인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
학교운동부 육성은 누가 책임지고, 학생들의 신체활동 확대는 어느 부처가 주도할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교육부와 문체부뿐 아니라 시·도교육청과 체육단체의 역할까지 구체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위원회에 이미 부여된 정책 총괄·조정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심의·의결 결과가 관계 부처의 실행계획과 예산에 반영되도록 제도적 연계 장치를 강화하고, 정책 추진 실적과 학교 현장의 이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무총리실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가 국무총리 소속의 법정 기구인 만큼 위원회에서 결정된 정책이 부처별 업무로 연결될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의 조정과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학교체육은 이러한 국가 차원의 정책 조정 기능이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할 대표적인 영역이다. 나아가 이를 계기로 국가 스포츠 정책 전반에서 부처 간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협의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결정과 실행이다.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가 법적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부처 간 책임 공백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학교체육의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 본질적인 해답…학교체육의 목표는 '건강한 대한민국'
한때 점심시간은 학생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운동장에서는 축구가, 체육관에서는 농구가 펼쳐졌다. 친구들과 공 하나를 두고 뛰어다니는 일은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정책이 없어도 가능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그 평범했던 풍경을 지금의 학교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한국 체육은 오랫동안 국제대회 성적으로 발전을 증명해 왔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획득한 메달은 한국 스포츠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체육의 성공을 평가하는 기준을 넓혀야 한다.
국가대표가 얼마나 많은 메달을 획득했는지만큼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충분히 뛰고, 놀고, 운동을 즐기고 있느냐다.
더 많은 학생들이 스포츠를 경험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 그 속에서 뛰어난 선수도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다.
학교체육은 소수의 우수선수를 길러내기 위한 제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모든 학생이 운동의 즐거움을 경험하고 건강한 삶의 기초를 다지는 교육의 영역이어야 한다.
결국 한국 체육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메달 숫자를 넘어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학교 운동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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