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4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극동육상대회에 출전한 양정고보 선수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청년 손기정’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일제 강점기 질곡의 시대에 일장기를 달고 달려야 했던 손기정 선생의 한(恨)을 조금이나마 풀어 드릴 수 있는 소식이 13일 아침 베를린에서 날아왔다. 

베를린발 연합뉴스에 따르면 현지 시간 12일,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주 경기장 주변 마라톤 코스 인근 글로켄투름 거리에서 가슴에 태극기가 새겨진 손기정 선생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손기정 선생의 동상이 그곳에 세워지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글쓴이는 2006년 11월 6일 손기정 선생의 외손자로 선생의 위업을 오늘에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재단법인 손기정기념재단의 이준승 사무총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 총장은 그 무렵 한국노총의 도움을 받아 선생의 동상 두 개를 제작했다. 하나는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 세워 놓고 하나는 독일로 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베를린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한국인의 기개를 펼쳐 보여야 할 동상은 그때 운송 비용이 없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출국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4년 뒤인 2010년 손기정 선생의 동상이 독일로 갔지만 독일 관계 당국과 합의점을 찾지 못해 베를린 올림픽 주 경기장이 아닌 주독 한국 대사관 안에 보관돼 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손기정기념재단과 베를린스포츠협회는 지난 10월 주 경기장 코스 인근 대지로 옮기기로 합의하고 지난 2일 동상을 옮겼다. 양측은 2026년까지 전시하되 마지막 해 3개월까지 어느 한쪽의 이의가 없다면 자동으로 5년씩 전시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한다.

8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손기정 선생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떼고 태극기를 붙여 드린 것이다. 

10년 전 그날, 1958년 도쿄 아시아경기대회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이창훈(2003년 작고)의 아들이기도 한 이준승 총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믿기 어려운 비화 하나를 들었다. 손기정 선생이 2000년쯤 일본에서 투병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일본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할아버지, 건강하세요”라는 편지를 보내 왔고 두 박스 정도 되는 편지를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손기정 선생이 돌아가신 이튿날인 2002년 11월 16일, 기사 한 꼭지만 달랑 쓰고 만 명색이 ‘한국의 스포츠 기자’인 나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때 쓴 졸고의 일부를, 이제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후배들의 역주를 독려할 선생을 되새겨 보는 마음으로 옮겨 적는다. 

‘손기정 선생은 지난 세기 한국 스포츠의 큰 어른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암흑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한국 마라톤이 세계 정상의 희망을 끝내 버리지 않은 것은 오직 선생의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선생은 1992년 8월 9일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 경기장에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 나오셨습니다. 스탠드의 대형 전광판에는 손자뻘 되는 황영조, 김완기, 김재룡이 케냐 일본 등 마라톤 강국 선수들과 함께 달리는 장면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황영조의 우승 뒤 “국적을 되찾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 때 성화 주자로 나서 어린아이처럼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던 선생의 모습에서 베를린 올림픽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식민지 청년의 울분은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의 고향은 평안북도 신의주입니다. 이제 선생은 편안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달려가실 것입니다. 선생의 뜻을 받들어 세계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후배 마라토너들을 내려다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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