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UEFA 슈퍼컵 전술분석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지네딘 지단의 레알 마드리드는 플레이가 훨씬 더 자연스러웠다. 이미 두 번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룬 레알 선수들은 경기 내내 자리와 임무를 바꿔 가며 상대의 허점을 만들고, 공략했다. 

부임 두 번째 시즌을 맞은 주제 무리뉴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로멜루 루카쿠, 네마냐 마티치, 빅토르 린델뢰프로 구성한 새로운 척추 라인은 유기성이 부족했고, 틀 안에 갇혀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눈짓만으로 서로 생각을 간파해야 템포를 살릴 수 있다. 시간이 더 필요했다.
 
두 팀 모두 경기 전 유럽축구연맹이 공개한 4-3-3 포진도와 다르게 움직였다. 레알은 카림 벤제마와 가레스 베일이 투톱으로 나서고, 이스코가 이들의 옆과 뒤, 중앙 미드필더 영역을 넘나 들며 자유롭게 뛰었다. 지단 감독이 부임 후 기조로 삼아 온 다이아몬드형 4-4-2 포메이션에 더 가까웠다.
 
맨유는 다르미안-스몰링-린델뢰프를 스리 백으로 두고, 마티치를 그 앞에 세운 3-1-4-2 포메이션이 기반이었다. 스리 백으로 투톱에 대응하고, 마티치가 2선의 이스코에 대응하는 동시에 빌드업 미드필더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맨유의 계획이 어그러진 첫 번째 이유는 레알 선수단의 역량과 조직력이다. 레알 선수들은 허리와 전방에 많은 숫자를 둔 맨유의 전방 압박을 쉽게 풀어냈다.
 
#전방 압박 실패, 맨유 스리 백의 구조적 허점
 
전방 압박이 무위에 그치자 스리 백과 4명의 미드필더 사이에 마티치가 자리한 양 옆 공간이 위협에 노출됐다. 좌우 윙백 포지션에 배치된 제시 린가드와 안토니오 발렌시아는 스리 백과 마티치를 수비적으로 커버하는 움직임이 현저하게 부족했다. 특히 발렌시아는 두 차례 실점 과정에서 빌미가 됐다. 카세미루의 침투, 이스코의 돌파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따라붙어야 했다.
 
스리백과 마티치, 그리고 네 명의 미드필더에게 많은 공간이 생기면서 레알은 굳이 짧은 패스로 빌드업할 필요 없이 이 지역으로 공을 투입했다. 이스코는 이 영역과 2선 중앙, 전방 배후 지역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공격 상황을 만들었다. 이스코 혼자였다면 견제가 가능했겠지만, 레알은 공격 옵션이 다양하다. 좌우 풀백 마르셀루와 다니 카르바할이 전진해 이 지역을 점유하거나, 둘이 안으로 좁혀 들어오면 크로스와 모드리치가 벌려 이 영역을 괴롭혔다.
 
린가드와 발렌시아의 부실한 수비력은 공격 과정에 집중해야 할 포그바와 에레라의 수비 부담을 가중했고, 투톱으로 배치된 루카쿠와 미키타리안의 기회를 제한했다. 이스코는 정해진 자리 없이 맨유 중원 공간을 이곳저곳 누볐고, 그 곁에서 모드리치와 크로스까지 적극적으로 전진했다. 포그바와 에레라가 수비에 급급한 상황에 놓이고, 마티치가 안정감을 잃으면서 맨유 중원의 유기성과 안정감이 떨어졌다. 
 
맨유는 선제 실점 이후 심리적으로 몰렸다. 발 밑이 좋은 센터백 린델뢰프가 좋은 지점 패스를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전방으로 공을 직접 투입하는 단순한 공격 시도 외에 좋은 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갓 맨유에 입단한 마티치는 공수 양면에 걸쳐 주어진 막중한 임무를 온전히 수행하기 어려웠다. 카세미루는 적절한 수비 커팅과 전방 공격 가담으로 공수 양면에 걸쳐 빛나는 경기력을 보여 대조가 됐다. 카세미루의 경우 크로스, 모드리치, 이스코가 빌드업 임무를 맡아 판단 과정이 더 간결하기도 했다. 

▲ 이스코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맨유의 구조적 허점을 공략했다.

레알이 전반전 볼 점유율을 60% 이상 확보하고, 두 번째 골을 넣을 때까지 일방적인 경기를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배경은 유연성이다. 구조 안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며 맨유의 약점을 공략한 레알과 달리, 맨유는 기본 구조에서 드러난 허점을 능동적으로 보완하지 못했다. 맨유도 헨리크 미키타리안이 이스코처럼 2선과 측면을 오가며 뛸 때 좋은 장면을 만들 수 있다. 문전에서 넘어지며 무산된 한 차례 돌파 상황 외엔 없었다.
 
무리뉴 감독은 왼쪽 측면에서 극도의 부진을 보인 린가드를 후반전 시작과 함께 마커스 래시포드로 교체했다. 래시포드가 개인 능력으로 존재감을 보이면서 루카쿠와 미키타리안의 상황도 개선됐다. 맨유의 만회 골도 왼쪽 측면에서 마티치에게 래시퍼드가 넘겨 준 패스가 기점이었다. 에레라 대신 마루안 펠라이니를 투입한 것은 중원 전투력을 강화해 포그바의 수비 부담을 덜어줬다. 처방은 적절했지만 이미 전세는 두 골을 넣은 레알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포지션에 갇히지 않은 레알, 유기적 위치 이동으로 맨유 공략
 
레알의 두 골 모두 선수들이 자기 영역을 벗어나 움직이며 만들었다. 전반 24분 라이트백 카르바할이 중원 우측으로 좁혀 들어와 문전 왼편 배후로 로빙 스루 패스를 찔렀다. 이때 원래 자리인 포백 앞 지역인 카세미루가 투톱 지역으로 올라갔다. 베일은 오른쪽 측면으로 벌려서 있었고, 벤제마가 중앙 지역에서 수비 견제를 끌어 놓고 있었다. 카세미루는 맨유 수비의 시선 밖에 도사리고 있다가 카르바할의 패스를 원터치로 마무리했다.
 
두 번째 골은 마르셀루의 긴 스로인을 ‘9번’ 벤제마가 왼쪽 측면으로 이동해 이어받은 뒤 수비를 몰아둔 채 이스코에게 밀어주며 시작됐다. 이스코는 베일과 2대1 패스를 시도하며 문전으로 파고들어 마무리 슈팅으로 득점했다. 카세미루의 득점 상황과 마찬가지로 투톱이 미끼 노릇을 해 줬다. 이 경기에서 벤제마와 베일은 이타성이 빛났다. 공 간수와 위치 이동, 스크린 플레이와 패스 연결로 전술적 플레이에 집중했다.
 
BBC 트리오가 처음 결성됐을 때는 이 선수들에게 득점으로 연결되는 모든 플레이가 집중됐다. 지난 시즌에는 좌우 풀백 마르셀루와 카르바할의 공격 과정 영향력이 커졌는데, 올 시즌에 주목할 점은 이스코와 카세미루의 플레이를 위한 주변 동료의 도움이다. 카세미루는 이미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공격 본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스코와 카세미루는 새 시즌 레알의 새로운 득점 루트로 기능할 것이다.

▲ 카세미루의 공격 본능이 살아나면서 레알 공격 옵션은 훨씬 더 확장됐다.

이들이 상대의 견제 대상이 되면 크로스나 모드리치가 전진해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 마테오 코바치치도 프리 시즌 경기에서 가능성을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레알은 옵션이 많고, 그 어떤 선수도 대체할 수 있다.
 
#BBC 트리오에게 의존하지 않는 레알
 
레알은 맨유의 루카쿠처럼 골 기회를 집중시켜 줄 ‘9번 자원’이 부족하지만, BBC 트리오가 모두 측면과 전방, 2선에서 폭 넓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공 관리 능력과 결정력을 겸비한 특급 공격수다.
 
BBC 트리오는 최근 신체적으로 전성기에 비해 떨어졌고, 상대 집중 견제에 시달리는 상황에 처했다. 지단 감독은 이들의 전술적 이타성을 강화해 다른 선수들과 시너지를 내면서 팀으로 성과를 내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스코는 플레이 자유도를 높여줄 때 최고의 기량을 낼 수 있는 선수로, 맨유와 슈퍼컵은 레알이 BBC 트리오에 얽매이지 않고 화끈한 공격을 만들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줬다.
 
세부적인 플레이 성향은 다르지만, 이스코 외에 아센시오와 세바요스도 공격수와 미드필더의 경계에서 뛸 수 있고, 베일도 이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윙어 스타일인 루카스 바스케스는 공격 과정의 다른 옵션이 될 수 있다.
 
알바로 모라타가 떠난 자리에 영입이 없다면, 보르하 마요랄에게 기회가 올 것이다. 마요랄은 프리 시즌 경기에서 마무리 파괴력의 숙제를 보였다. 다만 전방 압박을 비롯한 이타적인 움직임으로 2선 공격수들이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임무는, 어쩌면 기존의 다른 공격수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 레알은 스타군단이지만 팀으로 강하다

아직 이적 시장이 열려 있지만, 현재 스쿼드로도 레알은 충분히 강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모라타는 더 많은 기회를 찾아 떠났지만, 지단 감독이 만드는 레알은 특정 선수의 의존도를 줄이고자 하는 목표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레알은 이름에도 전술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지단호는 징크스에도 자유롭다. 챔피언스리그 출범 후 첫 2연속 우승을 이룬 레알은, 유러피언컵 시절인 1970년대 아약스와 바이에른 뮌헨이 이뤘던 3연속 우승 역사에 도전한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래픽=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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