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 시내 중심부로 향하는 길, 동아시안컵을 홍보하는 대형 전광판 ⓒ한준 기자


[스포티비뉴스=도쿄(일본), 한준 기자] 도쿄의 12월은, 한국의 11월 늦가을 정도의 날씨라던데. 6일 저녁 도쿄 나리타 공항 제2터미널 북측 게이트에서, 문 밖의 찬 공기가 들이닥치자 곳곳에서 “사무이(춥다)”라는 일본어가 터져 나왔다. 

대표 선수들은 남쪽 끝에 자리한, 비교적 따듯한 울산에서의 소집 훈련에서도 막바지 일정은 추위와 싸웠다. 도쿄로 넘어오기 전 서울의 기온도 영하로 떨어졌으니, 도쿄는 ‘춥지 않다’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래도 체온은 상대적이라, 외투까지 걸쳐 덥다고 느낄 만큼 오랜 시간 실내에 있다가 맞은 도쿄의 저녁 공기는 찼다. 

선수지급용 여행가방을 카트에 싣고 선수단 버스로 향하던 선수들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도쿄는 한국 보다는 덜 춥다”고 하는 주장 장현수는, 사실 좀 추워 보였다. 보온성이 부족한 집업 하나 달랑 입고 공항 밖을 나섰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롱 패딩’으로 무장할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코트 정도는 입어야 감기를 피할 수 있는 날씨다.

국제축구연맹이 클럽 팀에 선수 의무 차출 규정을 적용하는 ‘캘린더’에 포함하지 않은 동아시안컵(E-1 풋볼챔피언십)이 차지하는 위상도 그렇다. 지면 목이 날아가는 단두대 매치는 아니지만, 대비 없이 나섰다가는 호되게 당할 수 있다. 만만하게 보고 나섰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대표 팀 지휘봉을 잡은 뒤로 꾸준히 시험대 위에 올라 있던 신태용 감독은 그래서 본선 참가 4개국 가운데, 정보를 얻기 어려운 북한을 제외하면 가장 이른 시간 소집 훈련을 시작했다. 11월 27일 울산을 시작해 12월 5일까지 장장 9일. 중국이 12월 1일, 일본이 12월 4일에 소집했으니 조직력에서는 앞설 것이다. 일본과 비교하면 월드컵 본선에 나설 선수 비중이 훨씬 높고, 유럽파가 많지 않은 중국도 신예 선수를 많이 포함시켰다.

▲ 집업 차림으로 공항 밖까지 나간 장현수 ⓒ연합뉴스

한국 대표 팀을 응원한다며 나리타 공항에 나온 축구팬 아사쿠라 케이 씨는 이번 대회를 개최하는 일본의 현지 관심에 대해 묻자 “미묘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표가 거의 다 팔린 경기도 있고. 관심이 있기는 해요.” 

유럽파가 한국 보다 많은 일본은, 아시아 챔피언이 된 우라와레즈 선수들도 FIFA클럽월드컵 참가로 빠졌고, 리그 득점왕 스기모토 겐유까지 대회 직전 부상으로 이탈했다.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응원한다는 축구 마니아 유키 씨는 “일본은 대표 팀에 처음 오는 선수가 많아 전력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일본 대표 팀의 전력도, 이번 대회에 대한 관심도 도쿄의 겨울 날씨처럼 애매하다. 공항을 빠져 나와 시내로 향하는 길에 고층 빌딩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동아시안컵을 홍보하는 광고 영상을 자주 목격했다. 일본의 수도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가 무심하게 지나가지는 않는 것 같다. 

스포티비뉴스 취재진이 여장을 푼 지역은 도쿄 나가노 구. 노가타 역 근처 거리는 FC도쿄의 엠블럼 깃발이 가로등마다 걸려 있었다. 이번 대회 남자부 경기는 도쿄의 홈 경기장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모두 열린다. 도쿄는 2017시즌 J1리그를 13위로 마쳤다. 1999년 창단한 구단 최고 성과가 2011년 일왕배와 J2리그 우승을 이루며 승격한 것. 리그 내 강호는 아니다. 

동아시안컵에는 도쿄 선수 세 명이 참가한다. 한국의 주장 장현수가 지난 여름 이적 시장에 중국에서 도쿄로 ‘복귀’했고, FC서울에서 2017년 초 도쿄로 이적한 미드필더 다카하기 요지로가 선발됐다. 여기에 니시 다이고가 부상 당하면서 도쿄의 만 22세 유망 수비수 무로야 세이가 대체 발탁됐다. 

▲ 12월 6일 도쿄의 밤 기온은 6도라고 표기됐다. 6도보다 훨씬 춥게 느꼈다. ⓒ한준 기자


2017년 동아시안컵은 한일전으로 시작해 한일전으로 끝난다. 여자부에서는 8일 첫날 일정에 한일전이, 남자부는 16일 마지막 날 일정에 한일전이 열린다. 가늠하기 어려운 일본의 전력은, 두 경기를 치른 뒤 한국과 경기 즈음에는 기틀이 다져졌을 가능성이 높다. 

장현수는 새로 발탁된 무로야가 어떤 선수인지 묻자 “수비수인데 젊고, 많이 뛰고 활동량이 많다”며 어리지만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잘 모르니 어렵고, 열심히 달려들 선수들이 많이 뽑혔기에 또 어려울 수 있다. 일본은 개최국이지만 잃을 게 없는 선수단이다. 오히려 현 전력이 무난한 우승권으로 꼽히는 한국에겐, 대비 없이 만나는 도쿄의 겨울 날씨처럼, 생각 보다 매서울 수 있다. 

신태용 감독은 동아시안컵에 대해 거듭 “우승하겠다”고 한다. 신 감독은 부임하고 처음 치른 최종예선 두 경기, 10월 유럽 원정 친선전 두 경기가 남긴 실망을 이번 대회를 통해 확실하게 지우고자 한다. 

한일전 자체가 신 감독에게 아픈 기억이기도 하다. 올림픽 대표 팀 감독을 맡아 카타르에서 열린 2016년 AFC U-23 챔피언십에 나서 결승전에서 졌다. 2-0으로 이기던 경기에서 3-2로 역전패했다. 신 감독의 축구가 공격에 치중하고, 수비는 약하다는 이미지를 깊게 남긴 경기다.

수비수인 주장 장현수는 “좋은 축구를 하고, 좋은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겐 본선 엔트리에 가기 위해 팀의 결과만큼, 개인의 경기력을 증명해야 하는 미션이 있다. 

▲ 대표 팀 입국을 기다리던 나리타 공항 제2터미널 북측 게이트 ⓒ한준 기자

동아시안컵과 기자의 인연도 길다. 2005년 한국 대회를 처음 취재했다. 2013년 한국 대회, 2015년 중국 대회에 이어 2017년 일본 대회를 취재한다. 남자부 경기 장소가 같은 지난 중국 우한 대회에 이어 이번 일본 도쿄 대회도 저녁 먹기에 일정이 애매하다. 오후 4시 30분에 한 경기, 저녁 7시 15분에 한 경기가 연 달아 열린다. 

대표 팀의 입국 취재를 마치고 기사까지 쓰고 나니 시간은 밤 9시를 향하고 있다.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도쿄의 교통 체증이 만만치 않다. 예상 도착은 1시간 반 남짓. 공항에서 끼니를 때우려고 보니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고 있었다. 

숙소로 가는 길, 도로에 번쩍이는 라멘 가게 간판을 보고 들어갔다. 면발을 둘둘 말아 크게 한 입 물었는데 소금을 씹은 듯 짜다. 잘못 들어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먹고 있는데, 담배 연기가 넘어왔다. 건너편 자리에 왁자지껄한 중국 말이 들린다. 

불현듯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가 한국에서는 일본 라멘이 인기인데, 일본에서 라멘은 중화요리로 여겨진다고 설명하던 이야기가 머리 속을 스쳐갔다. 한국에서 자장면을 중국 음식이라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한국 음식으로 여긴다고. 면 요리처럼, 한중일 축구도 서로의 스타일이 뒤섞이고 있는데, 그게 무슨 맛인지까지 생각이 미치기엔, 라멘이 너무 짰다. 대충 허기만 달래고 음식점 밖으로 나왔다. 

심야를 향하는 도쿄의 온도는 영상 6도. 체감온도는 6도 보다 훨씬 춥다. 숙소를 찾아 헤매는 길에 누적된 정신적, 신체적 피로 탓에 기자만 유독 춥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감각은 상대적이다. 

동아시안컵도 그렇다. 누군가에겐 월드컵 보다 중요한 무대고, 누군가에겐 열리든 말든 별 관계 없는 대회이기도 하다. 언젠가 동·서아시아가 분리되는 날이 온다면, 이 대회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꽤 커질 수 있다. 일단, 10박 11일에 달하는 긴 출장을 온 기자에겐 매우 중요한 대회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