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한 이진영이 스포츠타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또 하나의 별이 졌다. 올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은 '국민 우익수' 이진영(38). 1999년 쌍방울에 입단한 뒤 SK와 LG를 거쳐 2018년 KT에서 선수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약육강식의 정글 속에서 20년을 버텨온 그는 통산 3할대 타율(0.305)과 2000경기, 2000안타의 위업을 달성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2006년 제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제2회 WBC 등 숱한 국제무대에서 맹활약하면서 한국야구 르네상스 시대의 한 축을 이뤘던 '국민 우익수'는 '야잘잘'이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기고 정든 무대를 퇴장했다.

한 해를 마무리를 하는 시점에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손님을 만났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20년간의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이진영. 팬들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안겨준 '국민 우익수'이기에.

#1. 근황

한가롭게 느껴지면서도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데 익숙했던 비시즌의 12월. 그러나 이제 직장을 잃은 은퇴선수로서 12월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는 “은퇴하고 두 달 정도 시간이 지났다. 20년 동안 하지 못했던, 가족들한테 소홀했던 부분이 많아서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진영은 평소 “야구만큼 자신 있는 것이 요리”라고 스스로를 자랑하곤 했다. 그렇다면 요즘 가족들을 위해 어떤 음식들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그렇잖아도 지금도 집에서 사골을 끓이다가 인터뷰를 위해 뛰어왔다”는 대답이 튀어나온다. 그는 음식 맛이 좋기로 소문난 전라북도 군산 출신. 어머니 손맛이 보통이 아닌데, 그 역시 어머니를 닮아 음식에 소질이 있다.

그러나 사골국물이라면 아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입맛만 생각한 ‘이기적인 요리’ 아닐까. 그러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 사골국물을 되게 좋아한다. 아침에 학교 갈 때 한 그릇 밥 말아먹고 가는 걸 좋아해서 사골을 올려놓고 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새해에 딸은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고, 아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쌍방울의 마지막 현역 선수로 남아 있던 그도 어느새 나이가 들었다. 1980년생으로 우리나이 마흔 줄에 접어들었고, 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학부형이 됐다.

#2. 은퇴

갑작스러운 은퇴였다. 그도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고, 팬들도 이별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의 아내 역시 남편의 은퇴를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은퇴한다”고 했을 때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진영은 “당시 와이프한테 얘기를 하자 옆에서 눈물을 보이는데, 나도 솔직히 울컥했다”면서 “내가 그런(우는) 모습을 보이면 아내에게 더 큰 상처가 되기 때문에 애써 아내 앞에서 눈물은 안 보여줬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성급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차피 결정이 난 것을 시간을 갖고 다시 생각해봤자 힘들 수밖에 없다. 집사람도 언젠가는 겪어야할 일이었다. 나 혼자만의 빠른 결정이라서 좀 서운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성훈도 올 시즌을 끝으로 20년간의 프로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정성훈은 1999년 해태에 데뷔해 현대와 LG를 거쳐 KIA에서 유니폼을 벗었다. 그리고는 지도자로 새롭게 출발한다. LG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더욱 절친해진 사이다.

정성훈은 통산 2223경기로 KBO리그 역대 최다경기 출장 부문 1위, 이진영은 2160경기 출장으로 역대 2위에 올랐다. 양준혁(2135경기)을 3위로 밀어냈다. 통산 최다안타 부문에서도 정성훈은 2159안타로 역대 3위, 이진영은 통산 2125안타로 역대 5위에 이름을 올려놓았다(1위는 박용택 2384안타, 2위는 양준혁 2318안타, 4위는 이승엽 2156안타).

이진영은 “성훈이하고는 LG 있을 때부터 대화를 많이 했는데, 그 당시에는 잘 하고 있을 때 은퇴를 하자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며 “나도 마찬가지고 성훈이도 마찬가지고 어렸을 때부터 좋은 혜택을 받고 이 순간까지 운동을 하고 마쳤는데, 선배로서 분명 시기가 되면 자리를 비워 줘야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KBO리그 전체가 급속한 세대교체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이진영도 이런 분위기를 이해한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아쉬움은 있다. "KBO리그에서는 베테랑들에 대한 대우가 아직까지는 좀 미흡한 것 같다"며 "20년간 야구를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팬들에게 사랑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야구를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마지막 시즌인 올해도 규정타석에는 미달됐지만 0.318의 고타율을 올렸다. 그럼에도 현역 선수생활을 끝내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련이 남지 않을까. 그는 “(시즌 후) 면담을 통해서 구단이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더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나도 구단의 방향이 그런 쪽이라고 하면 선배로서 걸림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후배들의 좋은 성장을 방해하는 선배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게 (은퇴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마지막 시즌에 3할대 타율로 마무리했다. 그는 “좋을 때 내가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도 되게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잘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은퇴인 만큼 진로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을 터. 각 팀 코칭스태프도 이미 꾸려졌고, 방송사 해설위원 자리도 구하기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그는 “시간이 조금 더 주어졌다면 (미래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했을 텐데 현실적으로 (은퇴를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좀 짧았던 것 같다. 지금 역시도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건 많은데 정해진 건 없다”고 다소 답답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프로야구 데뷔 후 어린 시절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 ‘장래 꿈’에 대해 “은퇴 후에는 고향 군산에 가서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귀거래사(歸去來辭)의 꿈은 여전히 유효할까. 짓궂게 질문을 던지자 이진영은 “다 옛날 얘기”라며 웃더니 “각자 잘 하는 분야가 있지 않나. 현실적으로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농사도 지어본 사람이 잘 짓는 법. 어린 시절 꿈과는 달리 현재 그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 야구에서 길을 찾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②편에서 계속>

▲ 이진영(오른쪽)이 스포티비뉴스 이재국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