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스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다. 추석 유일의 코미디보단, 추석 유일의 '힐링 드라마'다. 

동네 칼국숫집 수타면 담당 철수(차승원)는 탄탄한 남성미의 소유자이지만, 알고보면 어딘지 모자란 아저씨다. 가게와 헬스클럽을 오가는 게 전부였던 그의 일상을 흔드는 일이 생긴다. 처음 보는 백혈병 소녀 샛별(엄채영)이 그의 딸이란다. 딸 보러 병원에 간 철수, 병실 친구의 선물을 구하러 병원을 탈출한 샛별은 무작정 함께 대구행 버스에 오른다. 둘의 진짜 사연이 조금씩 베일을 벗는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철수와 샛별 부녀가 즐겨 보는 막장드라마를 타고 흐른다. 출생의 비밀, 바보 아빠와 영리한 딸, 아픈 아이와 이식수술, 숨겨진 과거, 코미디로 시작해 눈물로 마무리되는 명절 오락영화의 공식까지, 온갖 클리셰를 끌어안고 시작한다. 안 봐도 끝이 보이는 막장드라마 같다. 심지어 샛별이의 애절한 쇼에 울먹이는 사람들의 리액션도 막장드라마를 닮았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접어두길. 이계벽 감독이 곳곳에 끼워넣은 막장드라마의 하이라이트들은 '힘을 내요, 미스터 리'가 결코 뻔한 드라마가 아니라는 반어법의 위트다. 영화는 쉬운 예상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철수와 샛별이 대구를 향하고, 가족들이 그 뒤를 쫓아가면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스틸
초반의 엇박자 코미디가 아닌 후반의 드라마야말로 '힘을 내요, 미스터 리'의 진짜 힘. 착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철수씨의 세상엔 억지나 악다구니가 없다. 영화는 대구지하철 참사란 아직 아물지 않은 트라우마를 주인공의 사연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 절절하지만 사려깊은 묘사로 마음을 흔든다. 울 것을 강요하지 않는데도, 한번 울컥하면 눈물을 멈추기가 쉽지 않다.  

오랜만에 전공이나 다름없는 코미디로 돌아온 차승원의 원맨쇼는 가슴이 열려 폭소가 터지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부자연스런 각도로 꺾어 힘을 잔뜩 준 팔뚝처럼, 오묘한 톤을 잡은 멀끔한 중년의 바보 코미디가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고심을 거쳐 잡아낸 게 분명한 문제적 톤은 시간이 지나야 웃긴다. 그리고 결국엔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런 차승원은 참 오랜만이다. 무심한 듯 다가와 묵직하게 가슴을 친다. 먹먹한 여운이 오래 간다. 차승원이란 퍽 괜찮은 배우의 힘도 그렇게 전해진다. 영특하지만 되바라지지 않은 소녀 샛별 역의 엄채영, 허허실실 일상의 옷을 입은 박해준도 좋다. 

세상의 이름없는 철수들, 부디 꽃길만 걸으시길.

9월 11일 개봉. 러닝타임 111분. 12세 이상 관람가.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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