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SK 1군 불펜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좌완 김정빈 ⓒSK와이번스
[스포티비뉴스=캔버라(호주), 김태우 기자] “이상하네, 그렇게 제구가 안 좋을 만한 투구폼은 아닌데… 왜 그렇게 소문이 나 있었던 거지?”

손혁 키움 감독은 SK 투수코치 시절 한 투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투수는 좌완으로 공이 빠르고, 체인지업은 당장 1군에서도 최정상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제구가 좋지 않다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타자의 등 뒤로 던진다”, “마운드에 서면 볼 때문에 경기가 안 끝난다”는 말이 많았다. 그런데 손 감독의 시선은 달랐다. 그렇게 제구가 나쁠 만한 폼이나 메커니즘이 아니었다. 

SK 좌완 김정빈(25)은 지명 이후부터 줄곧 그런 선입견과 싸운 선수다. 그 선입견을 깨부수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다. 항상 투구폼에 신경을 썼고, 던질 때마다 제구를 신 모시듯 했다. 볼이 선언될 때마다 고민을 하기 일쑤였다.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올해 10월에도 같은 과제와 싸우고 있었다. 김정빈은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제구만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김정빈을 틀에 가두고 있었다. 

호주 캔버라 유망주캠프에 참가했지만 고민은 이어졌다. 첫 연습경기 당시 다른 투수들은 호투했지만, 오직 김정빈만이 좋지 않은 결과를 냈다. 답답한 마음에 최상덕 투수코치를 찾아가 속을 털어놨다. 김정빈은 “방에 찾아갔다. 이제 나이가 26인데, 언제까지 폼만 생각하고 던져야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다. 차라리 투심패스트볼을 던져보겠다고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 최 코치의 조언이 김정빈에게 큰 힘이 됐다. 최 코치는 코치들의 방법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는 좋은 공과 뛰어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투구폼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말을 하지 않을 테니, 던지고 싶은 대로 던져라”고 다독였다. 홀가분해진 김정빈은 “포수 미트를 뚫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던지겠다”고 다짐하고 방을 나왔다. 새로운 목표가 생긴 셈이었다.  

염경엽 감독도 그런 김정빈의 생각을 밀어줬다. “제구에 신경을 쓰고, 폼에만 신경을 쓰면 언제 공을 앞으로 던질 것이냐”고 했다. 좌완으로 140㎞대 후반의 공을 던질 수 있는 김정빈의 장점을 살리겠다는 요량이었다. 이처럼 지도자들의 지원사격을 받은 김정빈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힘껏 공을 던지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제구와 구위가 더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굴레를 벗어나니, 날아갈 공간이 생긴 덕이다.

김정빈은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 최고 148㎞의 공을 던졌다. 그것도 선발로 나선 경기였다. 작은 체구지만 공을 때리는 감각이 좋기에 가능하다. 호주 캠프에서도 145㎞를 쉽게 던지고 있다. 불펜에서 뛴다면 150㎞도 가능한 선수라는 평가다. 군 복무 중 팔꿈치인대접합수술을 받았지만, 지금은 모두 회복했다. 군 문제, 팔꿈치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 이제는 달릴 일, 그리고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코칭스태프는 슬라이더 혹은 커브 장착을 주문했다. 김정빈의 체인지업 위력은 이미 1군 선배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하지만 왼손타자를 상대할 만한 구종이 필요하다. 김정빈이 그간 “보여주는 식으로” 던졌던 슬라이더 연마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돌려 말하면, SK 코칭스태프는 김정빈을 원포인트가 아닌 1이닝을 던질 투수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내년 1군 불펜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할 투수로 낙점했다. 기대치를 엿볼 수 있다. 

물론 볼이 많아 무너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빈은 “이전에는 볼을 던지면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한다. 스스로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면서 “힘껏 내 공을 던져보고 싶다. 그 다음에는 불만을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줄곧 선발로 뛰었지만 상무 시절 이승호 코치를 찾아가 불펜 루틴을 배우기도 하는 등 준비도 철저히 했다. 볼을 던져도 된다는 역발상이, 이 유망주를 깨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스포티비뉴스=캔버라(호주),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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