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 ⓒ GettyImages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역사는 특정 선수의 독주와 춘추전국시대가 교차하며 진행됐다.

김연아(27)는 주니어 시절 당시 최고 기대주였던 아사다 마오(27, 일본)의 라이벌로 관심을 받았다. 2005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아사다가 우승을 차지했고 김연아는 은메달을 땄다. 그러나 2006년 김연아는 아사다를 넘어섰다. 2005~2006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는 아사다를 따돌리며 정상에 올랐다.

시니어 초기 시절 김연아와 아사다는 치열하게 우승을 놓고 경쟁했다. 그러나 2008~2009 시즌부터 김연아의 독주가 시작됐다. 김연아는 2008년 12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2위에 올랐다. 안방에서 아사다에게 우승을 내준 김연아는 2009년 4대륙선수권대회부터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까지 아사다와 8번 맞붙어 7승 1패를 기록했다.

2009년부터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까지 김연아는 여자 싱글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가 빙판을 떠난 뒤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됐다.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아사다가 우승했고 2015년에는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20, 러시아)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 ⓒ GettyImages

이런 상황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17, 러시아)다. 2014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그는 2014~2015 시즌 출전한 주니어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메드베데바는 2015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다.

시니어 첫 시즌 그는 그랑프리 파이널과 유럽선수권대회 그리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올 시즌 메드베데바의 독주는 한층 견고해졌다. 2개의 그랑프리 대회와 파이널에서 우승했고 유럽선수권대회에서는 2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메드베데바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150.1점을 받았다. 그는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기록한 프리스케이팅 최고 점수였던 150.06점을 넘어섰다. 지난해 12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쇼트프로그램에서 79.21점을 받으며 아사다가 세운 종전 쇼트프로그램 최고 점수인 78.66점을 경신했다.

그리고 28일(한국 시간)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열린 ISU 유럽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75.86점 예술점수(PCS) 74.93점을 더한 150.79점을 받았다. 자신이 세운 종전 프리스케이팅 최고 점수인 150.1점을 깼다. 쇼트프로그램 점수 78.92점과 합친 총점은 229.71점이다. 7년 전 김연아가 밴쿠버에서 기록한 228.56점보다 1.15점 높다.

▲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 ⓒ GettyImages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의 치밀성'

메드베데바의 '점수 고공 행진'은 치밀한 전략에 기반을 뒀다. 그는 쇼트프로그램에서 점프 대부분을 후반부에 배치했다. 점프를 프로그램 시작 후 1분 20초 이후에 뛰면 가산점(GOE)이 10% 더 붙는다.

쇼트프로그램에서 메드베데바는 플라잉 카멜 스핀과 스텝 시퀀스를 한 다음 첫 점프에 들어간다. 이런 방식은 러시아 선수들이 많이 시도했다. 국내에서도 유영(13, 문원초)과 김예림(14, 도장중) 등이 점프를 프로그램 후반부에 뛰고 있다.

이번 유럽선수권대회에서 메드베데바는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와 트리플 루프에서 1.6점의 높은 가산점을 받았다.

프리스케이팅은 메드베데바 코치진의 치밀성을 엿볼 수 있다. 메드베데바는 프리스케이팅 점프 7가지 요소 가운데 3+3 콤비네이션 점프를 2개나 뛴다. 이번 유럽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여자 싱글 선수 가운데 3+3 점프를 프리스케이팅에서 2번 뛴 이는 메드베데바밖에 없다.

메드베데바는 첫 점프로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뛴다. 이후 트리플 러츠를 뛴 뒤 플라잉 체인지 콤비네이션 스핀과 스텝 시퀀스를 시도한 뒤 다음 점프에 들어간다.

이때부터 뛰는 점프는 가산점이 주어진다. 메드베데바는 스텝에 이어 트리플 루프를 뛴 뒤 트리플 플립 그리고 더블 악셀+더블 토루프+더블 토루프를 시도한다.

그리고 트리플 살코+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 들어간다. 마지막 점프인 더블 악셀을 마치고 난 뒤 체인지 콤비네이션 스핀과 레이백 스핀으로 프로그램을 마무리 짓는다.

메드베데바는 후반부에 뛴 점프 5가지 요소로 받은 가산점이 무려 5.55점이다. 트리플 플립의 기초 점수가 5.3점이다. 트리플 플립을 하나 성공한 것과 마찬가지다.

유럽선수권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메드베데바는 마지막 점프로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뛰었다.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은 점프 7개 가운데 3개는 콤비네이션 점프로 뛰어야 한다. 메드베데바는 이런 규정을 어기고 4개의 점프를 콤비네이션으로 시도했다. 마지막 점프는 더블 악셀 뒤에 트리플 토루프를 불일 필요가 없었다.

자신감이 넘친 메드베데바는 더블 악셀 뒤에 트리플 토루프를 붙였다. 평범한 선수라면 시도하지 못할 일이었다.

▲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 ⓒ GettyImages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 집중력이 장점…치명적인 약점은 '플러츠'

메드베데바는 현역 선수 가운데 가장 실수를 하지 않는다. 콤비네이션 점프를 뛸 때 첫 점프가 조금 흔들리며 위기가 와도 이를 슬기롭게 이겨 낸다. 프로그램 클린 확률이 높은 것은 물론 위기 관리 능력도 뛰어나다. 여기에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는 러시아에서 나온 점도 그의 성장에 힘을 보탰다.

이러한 메드베데바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기초 점수 6점인 트리플 러츠를 제대로 뛰지 못한다는 점이다. 점프 에지가 러츠도 플립도 아닌 애매모호한 점프를 '플러츠'라고 한다. 메드베데바가 뛰는 점프는 정확한 러츠가 아닌 플러츠에 가깝다. 트리플 러츠는 여러모로 중요한 점프다. 그는 트리플 플립과 루프로 이를 극복하고 있지만 러츠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여전히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번 유럽선수권대회에서도 메드베데바가 뛴 트리플 러츠는 어텐션(!로 표시 : 점프의 에지가 애매모호하다는 판정)을 지적 받았다. 표현력이 물오른 '백전노장' 캐롤리나 코스트너(29, 이탈리아)와 비교해 그의 표현력은 아직 다양하지 못하다는 느낌도 있다.

그러나 메드베데바는 여자 싱글 무대를 평정했다. 현재 그와 겨룰 만한 라이벌은 없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메드베데바가 오는 3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 2017년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에 시상자로 등장한 김연아 ⓒ 곽혜미 기자

피겨스케이팅 점수는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을 기점으로 많이 올랐다. 이런 흐름에 편승해 메드베데바가 이익을 봤다는 시선도 있다. 또 7년 전 지금과 점수 체계가 달랐던 김연아의 시대와 비교해 두 선수의 기량을 비교하는 점도 문제가 많다.

최고 점수와 선수의 기량을 동일하게 보는 방법도 문제가 있다. 어느 시대건 최고의 선수는 있었다. 각기 다른 환경과 점수, 규정을 고려할 때 누가 최고의 기량을 지녔는지에 대한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분명한 점은 김연아의 최고 점수가 점수 체계와 규정이 바뀐 상황에서도 7년이나 유지됐다는 점이다. 메드베데바는 여러모로 뛰어난 선수고 김연아 이후 가장 독보적인 스케이터다. 그러나 러츠의 문제점과 점프 스케일, 그리고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살리는 표현력에서는 김연아보다 아쉬움이 남는다.

메드베데바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의 유력한 우승 후보다. 현재 157cm인 메드베데바는 중요한 성장기도 무사히 넘겼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가 평창 동계 올림픽까지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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