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레이튼 커쇼 ⓒ Gettyimages


[스포티비뉴스=박민규 칼럼니스트]클레이튼 커쇼는 올 시즌에도 기세등등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등 부상으로 인해 지난해 149이닝으로 규정 이닝에 조금 미치지 못했던 커쇼는 그 때문인지 올 시즌, 더욱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월 9일(이하 한국시간) 경기와 지난달 29일 경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경기에서 모두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고 있는 커쇼는 올 시즌에도 다저스의 확고부동한 ‘에이스’로서 마운드를 이끌고 있다. 4월 20일 콜로라도전과 지난달 23일 세인트루이스전에서 10개의 삼진을 잡으며 두 자릿수 탈삼진 경기를 만들어낸 커쇼는 특히 지난 3일 밀워키를 상대로 14탈삼진(한경기 최다 15탈삼진)을 기록, 통산 2000탈삼진을 달성하기도 했다.

커쇼의 탈삼진 페이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커쇼보다 더 빠른 탈삼진 페이스를 보여준 선발투수는 랜디 존슨과 페드로 마르티네스 뿐이다. 커쇼가 2000탈삼진을 달성하는데 사용한 1838이닝은 마르티네스(1715.1이닝)와 존슨(1734이닝)에 이어 세 번째로 적으며 등판한 경기(277경기)와 상대한 타자의 수(7,224명) 또한 각각 존슨(262경기)과 마르티네스(6,834명)에 이어 가장 적은 수준이다.

이렇게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커쇼지만 그의 올 시즌 성적은 이전과는 달리 조금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삼진을 잡기 시작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커쇼의 탈삼진 비율(K%)은 3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특히 2002년 존슨(334탈삼진) 이후 처음으로 300탈삼진을 넘겼던 2015년의 탈삼진 비율은 33.8%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였다. 더불어 탈삼진 비율 집계가 가능해진 1916년 이후 1995년 존슨(34.0%)에 이은 역대 8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 시즌 커쇼의 탈삼진 비율은 28.8%로 2014년 이후 처음으로 30%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 또한 삼진 14개를 잡은 밀워키전을 제외한다면 26.5%에 불과하다. 지난 3년간 커쇼가 기록한 5탈삼진 이하 경기는 10회(2014년 1회, 2015년 3회, 2016년 6회). 하지만 올 시즌 5탈삼진 이하 경기는 벌써 3회나 된다. 올 시즌 볼넷 비율(BB%)이 3.5%로 제구에 변화가 없고 삼진을 잡는 능력이 이전에 미치지 못하는 점으로 보아 구위가 떨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역시 해 볼 만하다.

탈삼진 비율의 하락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홈런 허용률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커쇼의 메이저리그 통산 9이닝당 홈런은 0.57개. 데뷔 첫해였던 2008년(0.92개)과 2012년(0.63개)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0.60개를 넘기지 않았다. 그러나 올 시즌 9이닝당 홈런은 1.2개이며 플라이볼 가운데 홈런이 차지하는 비율은 통산 기록(7.4%)의 두 배에 이르는 15.7%다. 지난 3년간 3피홈런 경기가 없었던 커쇼는 그러나 올 시즌에는 이미 두 번(4월 9일 콜로라도전, 5월 29일 컵스전)이나 허용했다.

이쯤 되면 커쇼의 2015년 시즌을 떠올릴 듯 싶다. 커쇼는 2015년 시즌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시즌 첫 9번째 경기까지 평균자책점은 4점대(4.32)였으며 6월에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3경기 연속 패전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커쇼의 슬라이더는 제대로 구사되지 못했다. 때문에 커브의 비중을 늘리고 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하이 패스트볼을 보다 적극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했다. 2015년의 초반 고전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응 단계였던 것이다. 하이 패스트볼에 대한 적응을 끝낸 커쇼가 한 시즌 300탈삼진이라는 대기록을 남긴 것은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커쇼는 2015년 초반 고전했을 때에도 올 시즌과는 달리 높은 탈삼진 비율과 낮은 홈런 허용률을 기록했다. 2015년 시즌 첫 12경기 동안 커쇼의 탈삼진 비율은 31.4%, 9이닝당 홈런은 0.8개였다. 플라이볼 가운데 홈런이 차지하는 비율은 15.9%로 올 시즌과 비슷했는데 이는 당시 플라이볼 비율이 22.8%로 지금(33.2%)과 비교해 10%p 가량 낮았기 때문이었다.

올 시즌 커쇼의 평균자책점은 2.28로 여전히 수준급이다. 그러나 2014년부터 1점대를 유지하고 있었던 커쇼의 FIP는 올 시즌, 그 수치가 2.96으로 2011년 첫 사이영상을 수상한 이후 가장 높다. 이와 같이 FIP가 높아진 원인은 낮아진 탈삼진 비율과 높아진 홈런 허용률에 있다.

▲ 커쇼의 2014-2017 시즌 첫 12경기 비교 ⓒ fangraphs


커쇼의 슬라이더는 여전히 위력적이다. 하지만 현재 그 위력이 과거와 같지는 않다. 커쇼의 통산 슬라이더 헛스윙율은 23.2%인데 이는 선발투수로서 슬라이더가 주요 변화구인 다르빗슈 유(18.2%)와 크리스 세일(15.7%)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또한 커쇼는 지난 3년간 29.6%, 25.6%, 25.7%를 기록하며 자신의 슬라이더의 위력을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올 시즌 슬라이더 헛스윙율은 19.2%로 이 비율이 20%를 넘지 못한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가장 큰 문제는 타자들이 앞선 시즌과는 달리 커쇼의 슬라이더에 대해 잘 속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년간 커쇼의 슬라이더는 40% 이상의 O-Swing%(스트라이크 존 바깥에 대한 스윙 비율)을 유지해왔으며 가장 뛰어난 슬라이더를 던졌던 2014년에는 이 비율이 52.4%에 육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 시즌 슬라이더의 O-Swing%는 38.3%로 그보다는 낮다. 타자들이 스트라이크 존 바깥으로 흘러 나가는 커쇼의 슬라이더를 꽤 쉽게 구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구’와도 같았던 이 슬라이더를 타자들이 비교적 확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 데에는 구속과 무브먼트가 변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커쇼의 슬라이더는 마치 패스트볼과도 같다. ‘팬그래프’에 따르면 올 시즌 슬라이더의 평균 구속은 지난해보다 1.3마일 증가한 89.1마일이며 수평 무브먼트와 수직 무브먼트 또한 각각 -1.3, 8.5이다. 지난해(-2.6, 4.5)에 비해 우타자 몸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각이 줄었으며 수직 무브먼트 값은 왠만한 투수들의 패스트볼을 상회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현재 타자들이 패스트볼을 상대하는 것과 같이 커쇼의 슬라이더를 상대하고 있다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 2011-2017 커쇼의 슬라이더 비교 ⓒ fangraphs


슬라이더는 커쇼가 가장 많이 구사하는 변화구이기도 하다. 올 시즌 커쇼는 포심 패스트볼(47.3%) 다음으로 슬라이더(36.3%)를 가장 많이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슬라이더가 과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 보니 그 영향이 패스트볼로 미치고 있는데 지난 2년간 패스트볼의 Z-Contact%(스트라이크 존 안에 대한 콘택트 비율)는 83.2%, 83.4%였던 반면 올 시즌에는 87.3%에 이르고 있다. 올 시즌 커쇼의 패스트볼 피홈런은 6개인데 이대로라면 2011년(11피홈런)을 넘어 더 많은 홈런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

메이저리그 데뷔 당시 커쇼는 샌디 코팩스를 연상시키는 커브와 함께 등장했다. 그리고 존슨을 연상시키는 슬라이더를 통해 리그 정상급 투수로 발돋움했다. 이후 커브와 슬라이더, 두 구종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커쇼는 다시 한 번 진화했다. 그동안 커쇼가 체인지업을 적극적으로 던지지 않았던 이유는 패스트볼과 커브 그리고 슬라이더가 너무도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커쇼 걱정이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말은 한국 메이저리그 팬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말 가운데 하나다. 사실 커쇼의 슬라이더에 관한 현재의 기록은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 남은 경기에 대해 영향을 주지 않는다 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과연 커쇼는 지금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그리고 자신에 대한 걱정을 다시 한 번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으로 만들 수 있을까.

※ 참조 : baseball-reference, fangraphs, baseball savant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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