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6년 베를린 대회에서 당시 기준 올림픽 최고 기록(2시간29분19초2)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손기정은 1934년과 1935년 2시간24분대의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6일 밤 런던에서 열린 2017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마라톤에 ‘혹시나’ 하고 기대했다가 ‘역시나’라며 실망한 스포츠 팬들이 많을 듯하다.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새삼 떠올리기도 했을 것 같다. 

100명이 출전 신청을 해 71명이 완주한 이날 레이스에서 한국은 김효수(31·영동군청)가 2시간25분08초로 59위, 유승엽(25)이 2시간29분06로 64위, 신광식(24·이상 강원도청)이 2시간29분52초로 65위를 기록했다. 

케냐와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의 초강세에 아시아 마라톤이 밀려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일본은 가와우치 유키가 2시간12분19초로 9위, 나카모토 겐타로가 2시간12분41초로 10위를 기록해 체면치레를 했다.

한국은 꼴찌나 다름없는 성적이지만 그래도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같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긴 했다. 한국은 리우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 두 명의 선수가 출전했는데 2시간36분21초, 2시간42분42초의 기록으로 완주자 140명 가운데 131위와 138위에 그쳤다. 아시아 나라 가운데 일본은 제쳐 두고 중국과 북한은 물론 인도, 스리랑카, 대만, 몽골 같은 나라에도 밀렸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바레인(2명) 인도 몽골(3명)에 밀렸다. 아시아 선수 가운데 3위로 전체 15위(2시간15분08초)인 바레인의 수미 데카사는 에티오피아 출신 귀화 선수이긴 하다.

1958년 도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이창훈이 금메달을 차지한 이후, 1960년대 후반 세계 마라톤이 고속화 시대에 접어든 가운데 한국 마라톤이 긴 침체기에 빠졌을 때에도 이와 같은 극심한 부진은 겪지 않았다.

1968년 멕시코 시티 올림픽에서 이명정은 완주자 57명 가운데 29위,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이홍렬은 완주자 78명 가운데 37위를 기록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성화 점화자인 김원탁이 98명의 완주자 가운데 18위로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 들어왔다. 2시간15분44초로 메달권과는 5분 정도 차이였지만 최선을 다해 역주한 결과였다.

김원탁은 3년 뒤인 1991년 9월 열린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6명의 완주자 가운데 19위를 차지했다. 황영조가 1992년 2월 오이타~벳푸 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2시간10분 벽을 무너뜨리고 2시간8분47초로 한국 최고 기록을 세운데 이어 그해 8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2시간13분23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하기 바로 전의 일이다. 그 사이인 1991년 11월 김완기는 춘천 코스에서 열린 제45회 조선일보대회에서 2시간11분2초의 한국 최고 기록을 세우며 2시간10분 벽에 바짝 다가섰다.

이번 대회 순위는 물론 기록도 충격적이다.

1935년 11월 베를린 올림픽 파견 마라톤 일본 대표 2차 선발전을 겸한 제 8회 메이지신궁경기대회가 도쿄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 손기정은 2시간26분42초의 공인 세계 최고 기록을 수립했다. 그해 4월 일본의 이케나가가 세운 세계 최고 기록 2시간26분44초를 2초 단축했다.

손기정은 서울에서 이미 여러 차례 마라톤 세계 최고 기록을 마크했으나 일본육상경기연맹은 그때마다 자기네가 공인한 코스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기정의 세계 최고 기록을 인정하지 않았다.

손기정은 1934년 4월 22일 경수(京水, 서울~수원) 코스에서 열린 제 2회 풀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24분51초 그리고 1935년 5월 18일 제 3회 풀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24분28초의 엄청난 세계 최고 기록을 각각 작성했다. 그러나 조선체육회가 주최한 풀 마라톤대회는 일본육상경기연맹이 공인한 코스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기정의 기록은 공인되지 않았다.

런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은 80여년 전 손기정보다 느리게 달렸다. 

1935년 4월 27일 손기정은 일본인 경기 단체인 조선육상경기협회가 주최한 제 1회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2시간25분14초의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조선육상경기협회는 서울에서 치르는 마라톤이 공인되지 않은 짧은 코스라는 일본육상경기연맹의 주장이 마땅치 않아 이 대회는 정규 코스 길이 42.195km보다 520m를 더 잡았다. 정규 코스보다 520m나 더 긴 코스에서 세운 세계 최고 기록인데도 일본육상경기연맹은 공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체육협회가 도쿄에서 개최한 올림픽 파견 선발전이나 메이지신궁대회의 공인 코스에서 손기정이 수립한 마라톤 세계 최고 기록을 공인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므로 손기정의 세계 최고 기록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세계 최고 기록과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을 누리던 한국 마라톤, 언제까지 거꾸로 달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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