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트넘 vs 첼시 전반전 포진도, 첼시의 전방 4인 수비 블록이 핵심이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어야 한다. 잇몸으로 씹을 수는 없으니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지난시즌 첼시를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으로 이끈 3-4-3 포메이션은, 토트넘홋스퍼와 2017-18시즌 리그 2라운드 ‘런던 더비’에서 유효할 수 없었다. 


첼시 공격진에 에덴 아자르와 페드로 로드리게스가 부상 중이고, 중원에는 네마냐 마티치가 떠나고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퇴장 당했다. 수비 라인에도 게리 케이힐이 퇴장으로 이탈했다. 개막전에서 번리에 2-3으로 진 첼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안토니오 콘테 첼시 감독은 답을 찾았고, 토트넘을 2-1로 꺾고 시즌 첫 승을 거뒀다. 마르코스 알론소의 왼발 두 방이 결정타였지만, 적지에서 경기를 통제할 수 있었던 전략의 힘이 컸다.


#첼시: 전방에 친 그물, 4인블록+다비드 루이스 ‘리베로’


프리미어리그가 공식 발표한 첼시의 포진은 3-4-3이었지만, 실제 운영 형태는 3-1-4-2에 가까웠다. 윌리안과 알바로 모라타를 투톱으로 두고, 그 뒤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분류되는 티에무에 바카요코와 은골로 캉테를 높이 배치해 전방에 그물을 쳤다. 4인 블록으로 토트넘의 후방 빌드업을 괴롭히려 한 것이다. 4인이 라인을 높여 상대 지역에서 수비하고, 그 뒷공간을 다비드 루이스가 커버했다. 2017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독일 대표팀이 시도한 수비법과 구조가 유사하다.


중앙 전방 지역에 블록을 구축하면, 공은 측면으로 나오게 되는데 알론소와 빅터 모지스와 좌우 윙백으로 배치되어 이 루트를 차단했다. 토트넘은 결국 롱볼로 공을 전진시킬 수 밖에 없었고, 쉽게 첼시에 공 소유권을 내주게 됐다. 안정적으로 공을 소유하지 못하고, 자기 진영에서 공을 빼앗기는 경우가 발생하자 스리백으로 나선 토트넘의 좌우 윙백이 수비 지역으로 밀려내려오게 했다. 이는 크리스티안 에릭센, 해리 케인, 델레 알리 등 공격 삼인조가 나머지 선수들과 간격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1 영상설명: 전방에 4인의 수비블록을 형성해 토트넘이 부정확한 롱볼로 빌드업하게 유도한 첼시. 전방 압박이 통과되면 4-4-2로 촘촘한 간격을 맞춰 조직적인 수비를 펼쳤다.

루이스는 세 공격수의 사이 공간을 루이스가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잘랐다. 스리백 중앙에 자리할 때 종종 불안을 남겼던 루이스는 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과 안토니오 뤼디거가 자신의 뒤를 커버해주자 수비 지역의 리베로로 날아다녔다. 캉테와 바카요코 역시 전진 수비에 부담이 없어 전방 압박의 밀도가 높았다. 


첼시는 전반 4분 우측 센터백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가 전진해 시도한 얼리크로스가 모라타의 문전 헤딩슈팅으로 이어져 첫 번째 결정적 기회를 만들었다. 공격 상황에는 수비 지역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전진해 토트넘 선수들을 급하게 만들었다. 


전반 23분 페널티 에어리어 앞까지 치고 올라간 루이스가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었고, 알론소가 직접 왼발 슈팅으로 깔끔하게 득점했다. 첼시의 계획대로 돌아간 전반전이었다. 그물 수비로 따낸 공은 빠른 주력을 갖춘 모지스의 침투 동선으로 배급됐는데, 토트넘이 이 계획을 간파하고 철저히 끊었다. 첼시가 전반전에 결국 오픈플레이에서 득점하지 못한 이유였다. 모라타가 4분 만에 온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토트넘: 케인에게 보내고, 케인이 벌리고


토트넘은 첼시의 예상치 못한 전술적 움직임에 전반 20여분 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토트넘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 체제에서 다양한 전술을 경험하고 시도하며 대응력을 갖췄다. 토트넘은 전반 10분 케인이 첼시 수비 지역에서 개인의 힘으로 공을 지켜내고 슈팅까지 연결해 득점에 근접한 장면을 만들었다.


토트넘은 안정적으로 중원 빌드업이 이뤄지지 않자 케인에게 직접 공을 투입하고, 케인의 우수한 포스트 플레이 능력을 활용해 공격을 전개했다. 케인이 공을 쥐면 근방에서 에릭센과 알리가 적절하게 지원해 제한된 인원으로도 어느 정도 공격이 됐다. 첼시는 지공 상황에서 알론소와 모지스까지 뒤로 빠르게 내려가 대형을 갖췄으나, 전방 압박이 통과된 직후에는 배후 공간이 넓게 남아 불안요소가 있었다.


#2 영상설명: 토트넘은 첼시 전방 압박 뒷공간을 노렸다. 해리 케인의 포스트 플레이 능력을 십분 활용했다.

바카요코와 캉테, 루이스가 적극적으로 전진하며 수비한 것이 첼시 전략의 핵심이었는데, 이들이 1차 수비에 실패할 경우 틈이 생긴다. 루이스는 전반 38분 전방 수비에 실패하자 에릭센의 침투를 손으로 막다가 경고를 받기도 했다. 케인은 자신에게 투입된 공의 템포를 살리거나 잡고 전개할 때 모두 안정적이었다.


더불어 케인은 좌우 측면으로 넓혀 움직이며 에릭센과 알리가 좁혀 들어올 공간을 만들었고, 첼시의 전방 블록에 갇혀있던 뎀벨레는 윙백 영역으로 치고 나가며 자유를 찾았다. 이때 윙백이 오히려 좁혀 중원 공간을 커버했다. 토트넘 역시 첼시 전략에 적절히 대응했는데, 전반 41분 토트넘의 카운터어택은 케인의 결정적 슈팅으로 이어졌지만 결정력이 조금 아쉬웠다. 골키퍼 쿠르투아의 선방에 무산된 기회도 있었다. 첼시의 전략이 신선했으나, 토트넘이 완전히 무력하게 당한 것은 아니었다.


▲ 토트넘 vs 첼시 후반전 포진도, 첼시는 지키기에 나섰고, 토트넘은 공격 숫자를 늘렸다.

#분수령: 체력 떨어져 지키기 나선 첼시, 공격 숫자 늘린 토트넘


전방에서 승부를 거는 첼시의 전략은 체력의 한계로 인해 90분간 유지할 수 없다. 후반전 어느 시점에는 내려서서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두 번째 골을 통해 상대를 더 급하게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후반전 시작과 함께 토트넘이 전방에서 강하게 달려들며 전반전에 많은 체력을 소모한 첼시를 흔들었다. 첼시는 생각보다 더 일찍 라인을 내리고 지키기에 나섰다.


첼시는 좌우 윙백을 뒤로 내려 5-3-2 형태로 전환했다. 모라타를 꼭지점으로 바카요코 루이스 캉테를 다이아몬드 블록으로 배치한 뒤 공격진 중 윌리안에게만 자유를 줬다. 첼시의 전방 압박이 둔화된 이후 공 소유권을 확보한 토트넘이 조금씩 경기 리듬을 되찾았다. 토트넘은 지공을 펼치며 첼시 수비의 빈 공간을 한 번에 찌를 기회를 모색했다.


#3 영상 설명: 첼시는 후반전에 노골적인 선수비 후역습으로 토트넘을 괴롭혔다. 

후반 20분이 가까워 오면서 첼시는 전원 수비에 가깝게 움직였다. 모지스, 울리안, 모라타 정도를 활용한 간헐적인 역습으로 전진한 토트넘의 뒤통수를 조금 가렵게 했다. 쐐기골을 얻으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토트넘의 공격을 제어하며 시간을 소진할 수 있는 실리적 플레이 수준이었다.


토트넘은 후반23분 우측 센터백 다이어를 빼고 손흥민을 투입해 공격 숫자를 늘렸다. 에릭센 케인 알리 삼인조 안에 손흥민이 들어가 공간 창출에 나섰다. 역으로 토트넘의 수비숫자가 줄어들자 첼시의 역습 밀도도 높아졌다. 후반 25분 윌리안의 돌파에 이은 패스, 모라타의 돌파에 이은 슈팅만으로 코너킥을 얻었다. 


캉테가 뒤로 빠지면서 모지스와 윌리안이 수비부담을 덜고 전진했다. 두 세 명을 통한 부분 전술로 길을 만들수 있게 됐다. 경기 내내 답답하던 모라타도 공간이 열리자 공을 소유하고 전진하는 데 수월해졌다. 

▲ 콘테 감독의 변칙 전략이 원정에서의 런던 더비 승리로 이어졌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교체 카드의 역효과, 알론소의 집중력


토트넘의 선수 교체 오히려  선수 교체를 하지 않은 첼시의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후반 28분 윌리안의 중거리슛이 골포스트를 때려 토트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첼시는 문전에 항시 다섯명을 뒀고, 공격시엔 최대 다섯명만 가담하게 했다. 수비 안정에 기반을 두면서 공을 중심으로 선수 숫자를 꾸준히 확보했다.


첼시는 후반 33분 윌리안과 모라타를 빼고 페드로와 바추아이를 투입해 공격진의 체력을 보강했다. 전술 변화는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선택이 역효과를 냈다. 후반 36분 에릭센의 프리킥 크로스를 차단하려던 미키 바추아이의 헤딩이 첼시 골망을 흔드는 자책골이 됐다. 한 골 차 우위와 심리적 안정을 모두 잃게 만든 실책이었다. 양 팀의 교체 카드가 모두 상대팀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동점이 되면서 열린 승부가 됐고, 후반 43분 첼시가 다시 리드를 찾아왔다. 빅터 완야마가 잃은 볼을 페드로가 알론소에게 전달했다. 알론소가 문전 왼편까지 치고 들어가 득점했다. 바추아이의 자책골이 사고라면, 손흥민 투입 이후 발생한 토트넘의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었다. 


첼시는 잔여 시간 더 이상 실수하지 않았다. 토트넘은 벤 데이비스를 빼고 무사 시소코, 키어런 트리피어를 빼고 빈센트 얀선을 투입해 총공세에 나섰으나. 이 역시 공격수 증원일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카드는 아니었다. 전략 준비의 치밀성과 구현 완성도에서, 첼시가 승리할 자격이 있었다.


글=한준 기자(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영상] [EPL] 첼시의 4인 블록 전방 수비, [EPL] 케인 활용한 토트넘의 공격 대응, [EPL] 첼시의 후반전 플레이 형태 ⓒ스포티비뉴스 정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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