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민호 베어스포티비 PD ⓒ 스포티비뉴스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북극의 눈물 찍어요?"

2015년이었다. 차민호(30) 베어스포티비 PD는 늘 그랬듯 멀찍이 떨어져 조용히 두산 베어스 선수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억지로 무언가를 연출하는 건 적성에 맞지도 않고, 원하는 방향도 아니었다. 꿋꿋하게 소신을 지키고 있을 때 오재원(32, 두산)이 말을 걸었다. '북극의 눈물(다큐멘터리)' 찍냐고. 

차 PD는 3년 동안 우직하게 두산을 담아 냈다. 그라운드 안팎의 선수들, 코치진, 구단 직원들, 응원하는 관중까지. 두산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카메라에 담았다. 차민호표 다큐멘터리가 하나씩 쌓이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출근 도장을 찍으면서 두산과 깊은 정이 들었다. 차 PD는 "지금은 좋아하는 선수가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이 됐다"고 표현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지난 3년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Q. 베어스포티비 PD가 된 계기가 있다면?

27살에 제대하고 영화 쪽에서 2년 정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KBO 구단 VJ를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야구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터라 지원하게 됐다. 야구를 많이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이 일을 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경기장에 5번도 안 갔을 거다.

Q. 3년 동안 일을 하면서 야구, 또 구단을 향한 애정이 생겼을 거 같은데.

지금은 좋아하는 선수가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이 됐다. 2번(2015년, 2016년) 우승했을 때는 마냥 좋았다면, 올해 준우승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진정한 두산 팬이 된 거 같다. 같이 분한 마음도 들었고, 한국시리즈 5차전이 끝나고 더그아웃에서 나도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Q. 시작할 때만 해도 구단 TV라는 게 생소한 분야였다. 어떻게 방향을 잡아 나갔나.

지금은 출근하면 어떤 촬영을 해야하는지 시스템이 잡혀 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2015년 전반기에는 잠실야구장 외야석에 앉아 있었다. 외야 쪽에 1인 치킨 탕수육 세트가 있다. 그걸 먹으면서 야구와 두산에 대해서 생각하고, 관중석에서 팬들 이야기 들으면서 '내가 뭘 해야 할까' 생각하는 시간을 보냈다.

사실 두산 베어스에 선수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프런트, 응원단, 구단 직원 분들까지 계신다. 쭉 지켜보면서 고민하다가 확실한 방향을 잡은 계기는 2015년 시즌을 마치고 단상 인사를 할 때 정진호 선수가 본인 응원가를 불렀다. 그걸 보면서 재미있고, 선수들의 야구 외적인 면을 보여 드리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 이후로 야구와 선수들의 일상을 함께 보여 드리려고 노력했다.

▲ 차민호 베어스포티비 PD ⓒ 차민호 PD
Q. 일상을 담으려면 선수들이 카메라와 친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을 거 같다.

오재원 선수가 2015년에 촬영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북극의 눈물 촬영하는 사람 같다'고 했다. 재미있는 질문을 준비하거나 다양한 상황을 연출해서 화면을 담는 PD들도 있는데, 나는 멀리서 선수들 있는 그대로를 찍고 싶었다. 흔히 말하는 선수들의 '케미'를 깨고 싶지 않아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상황에서 화면을 담고 싶었다.

베어스포티비가 2015년 한 해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 차츰 차츰 가까워지자고 생각했다. 2016년에 한 발짝, 2017년에 한 발짝 더 들어가자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일부러 두산 유니폼 입고 다니고, 같은 팀처럼 행동하려고 했다. 콘텐츠가 필요할 때만 촬영하고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Q. 천천히 가까워지자는 마음가짐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 때가 있다면.

2015년 우승하고 세리머니 장면을 찍고 있었다. 그때 김현수 선수가 '수고했다'고 와서 안아주면서 카메라 잠깐 내려놓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날 좀 '짜릿하다'는 기분이 들었고, 한 팀이 됐다는 생각을 했다.

Q. 지금 구단 TV 콘텐츠들을 보면 선수들이 '적극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선수 본인이 영상을 보는 것보다 주위 분들이 많이 챙겨 보시는 거 같다. 선수들, 코치님들, 감독님까지 가족 분들이 보셔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Q. 베어스포티비가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를 꼽아보자면? 

베어스포티비가 지난 2년 사이 구독자 수가 크게 늘었다. 우선 팀 성적이 좋아서 반응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또 생각해보면 두산 홍보 팀에서 한번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어떤 콘텐츠를 제작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실패를 해도 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100% 신뢰를 주셨다.

▲ 차민호 베어스포티비 PD ⓒ 차민호 PD
Q. 3년 동안 수많은 콘텐츠를 제작했을 텐데, 차민호 PD가 꼽은 'BEST 3'는?

가장 의미 있었던 영상은 2015년에 만든 '승리를 위하여' 전광판 영상이다. 전광판 영상을 처음 만들어 보는 거라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경기장에서 상영되는 걸 지켜보면서 스스로 전광판 영상 제작의 기준점을 잡을 수 있었다.

2번째는 선수들이 인터뷰한 내용을 하나씩 모아서 만든 올해 한국시리즈 티저 영상이다. CG 처리 거의 없이 자막만 넣어서 만들었는데, 만들면서 울컥했다. 눈물이 많은 편이라(웃음). 이 영상은 1~2시간 만에 뚝딱 만들어서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올해 스프링캠프 티저 영상이다. 지난해 찍어 둔 소스를 모아서 어떻게 보면 재활용 영상이었다. 그 영상을 상영하고 호주에 갔을 때 박건우 선수가 '정말 멋있었다. 고맙다'고 해줘서 기분 좋았다.

Q. 선수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영상은?

2016년 우승하고 전광판에 상영됐던 '같이 걸을까' 영상이다. 끝나고 퇴근길 촬영할 때 다들 '잘봤다'고 이야기해 줬다. 제작자로서 뿌듯했다. 관중석에 팬 분들, 그라운드에 선수들이 다 서서 전광판에 나오는 영상을 보는 걸 뒤에서 지켜볼 때 '이래서 영화 감독을 하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날따라 그라운드가 무대처럼 보였고, 선수들은 배우 같았다. 

Q. 다음 시즌 베어스포티비 구상은? 

선수들을 인터뷰하거나 연출된 환경에 선수들을 담는 걸 잘 못한다. 그래서 계속 우리가 잘하는 걸 할 생각이다. 단순히 선수들 플레이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메시지가 있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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