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베이징 대회 남자 50m 권총에서 정상에 오른 진종오는 이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까지 이 종목 올림픽 3연속 금메달의 대기록을 세웠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90년 베이징 대회 이후 1998년 방콕 대회까지 중국이 독주하는 가운데 한국과 북한은 사격 종목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어 갔다. 그러나 2002년 부산 대회에서 한국(금 6 은 12 동 11, 2위)과 북한(금 2 은 4 동 5, 4위)의 순위가 역전됐고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한국이 2위(금 13 은 8 동 7)에 오르고 북한(금 3 은 4 동 5)이 3위를 하긴 했지만 메달 숫자의 격차가 워낙 커 아시아 무대에서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사격 남북 경쟁은 사실상 끝났다. <3편에서 계속>

사격은 국제 대회 메달 획득 외에 한국 스포츠 발전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사격은 종주국인 태권도(1973년 제 1회 대회 1975년 제 2회 대회, 이상 서울)를 빼고 1978년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를 한국에서 열었고 이 대회를 계기로 한국도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대한사격연맹은 1978년 9월 24일부터 10월 5일까지 태릉국제사격장에서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동서냉전의 국제적인 정세로 말미암아 소련 등 공산권 나라들이 불참하긴 했지만 68개국에서 1,5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했고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렀다.

박종규 대한사격연맹 회장은 대회 기간을 전후해 내한한 국제 스포츠계 거물급 인사들로부터 ‘앞으로 한국은 올림픽도 개최할 수 있는 저력을 지녔다’는 찬사를 듣고 고무돼 박정희 대통령에게 올림픽 유치 구상을 밝히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마치고 1979년 2월 제25대 대한체육회 회장에 취임한 박종규는 취임과 동시에 올림픽 유치의 꿈을 실현코자 대사 출신 인사들을 부회장으로 영입해 스포츠 외교 진용을 구축하는 한편 기획과 외국어에 능통한 전문 위원들을 스카우트해 실무 추진팀을 가동했다. 그러나 당시 체육계 분위기는 스포츠와 관련이 없는 인사들을 불러들여 허황된 올림픽 유치의 꿈을 꾸고 있다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나 이들 3명의 전문 위원들은 뛰어난 기획력으로 올림픽 유치 작업을 준비해 나갔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와 제5 공화국의 출범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1981년 9월 30일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84차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서울은 나고야를 52-27로 누르고 1988년 제24회 하계 올림픽을 유치했다. 사격에서 비롯된 결실이었다.

1988년 서울 대회 50m 소총 복사에서 차영철이 은메달을 차지하면서 올림픽 메달의 물꼬를 튼 사격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한꺼번에 2개의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1956년 멜버른 대회 이후 36년 만에 금메달의 한을 풀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 다음 날인 7월 26일, 260개 세부 종목 가운데 가장 먼저 벌어진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당시 서울체고 2학년에 재학하고 있던 18살의 소녀 여갑순이 금메달 과녁을 명중했다. 이 종목에서 올림픽에 앞서 2년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지켜 금메달 후보 0순위로 꼽혔던 불가리아의 베셀라 레체바에게 2.9점이나 앞선 498.2의 좋은 기록이었다. 여갑순은 결선에서 10발을 쏘는 동안 레체바에게 단 한번도 리드를 빼앗기지 않고 독주를 거듭한 끝에 대회 1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갑순의 '금메달 바통‘은 50m 소구경복사의 이은철이 이어받았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 이후 3번째 올림픽에 출전한 관록의 이은철은 본선에서 다소 부진해 최하위로 8강에 올랐지만 결선에서 역전극을 펼치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독립국가연합(금 5 은 2 동 1)과 중국(금 2 은 2), 독일(금 2 동 1)에 이어 사격 종목에서 일약 4위로 올라섰다.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는 ‘노메달’에 그쳤으나 2000년 시드니 대회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강초현이 은메달을 차지해 올림픽 메달의 맥을 이어 놓았다. 강초현은 본선을 1위로 통과해 금메달이 유력시됐지만 결선에서 마지막 1발을 놓쳐 미국의 낸시 존슨에게 0.2점 뒤진 497.5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강초현은 언론으로부터 금메달에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어 2004년 아테네 대회 남자 50m 권총에서 진종오가 은메달을 차지했고 여자 더블 트랩과 트랩에서 이보나가 은메달과 동메달을 잇따라 쐈다.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진종오가 남자 50m 권총 금메달과 10m 공기권총 은메달을 획득하며 2012년 런던 대회 2관왕을 예고했다. 런던 올림픽 관련 내용은 1편에 서술한 바 있다.

이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진종오가 남자 50m 권총에서 3회 연속 금메달의 대기록을 세우는 등 금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로 종목 순위 공동 4위에 올랐다. 한때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사격이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메달 종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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