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500m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낸 네덜란드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중계방송사인 미국 NBC 앵커가 네덜란드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초강세를 보이는 데 대해 엉뚱한 해석을 내놓아 조롱을 받고 있다는 외신이 눈길을 끌었다.

12일 워싱턴 포스트 등에 따르면 NBC 앵커 케이티 쿠릭은 개회식 도중 한 발언 때문에 SNS에서 네덜란드인 등으로부터 놀림감이 됐다. 쿠릭은 개회식 중계를 하면서 네덜란드 대표 팀이 입장하자 "그들이 (동계 올림픽에서) 딴 메달 110개 가운데 5개를 제외한 모두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쿠릭은 이 같은 이유가 "저지대의 암스테르담과 같은 도시에서는 스케이팅이 중요한 운송 수단이기 때문"이라며 "겨울철에 많은 수로가 얼어붙으면서 네덜란드인들은 스케이트를 타고 곳곳을 누비며 서로 경주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설명이 나오자 SNS에서는 선수들의 노력을 간과한 터무니없는 해석이라며 조롱이 이어졌다.

캐나다 거주 네덜란드인이라고 밝힌 사진작가 조스 두지베스타인은 네덜란드의 수로가 자주 얼어붙는 것은 아니라면서 "하계 올림픽 때는 네덜란드인들이 수로를 이용해 수영해 일하러 가고 식료품점에 갈 것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며 비웃었다.

또 자신이 사는 캐나다에서는 사람들이 개썰매를 이용해 이글루 집에서 이글루 사무실로 이동한다고 다시 조롱했다. 그러자 호주에서 산다는 다른 SNS 이용자는 호주에서는 운송 수단으로 우버 캥거루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댓글을 달았다.

또 따른 SNS어 이용자는 '네덜란드의 러시아워'라며 무리를 지어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을 올려놓고 터무니없는 해설을 비웃었다.

쿠릭은 14일 트위터에 네덜란드 스케이팅에 관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쿠릭은 "네덜란드의 스케이팅 종목에 대한 역사적인 열정에 대해 경의를 나타내고자 했던 발언이 오해를 산 것 같다"고 썼다.

그런데 이렇게 조롱을 받은 내용을 과거형으로 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13일 현재 네덜란드는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2개로 독일(금 5 은 2 동 2)에 이어 종합 순위 2위에 올라 있다. 10개의 메달 가운데 8개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나왔고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에서 2개의 은메달을 보탰다.

네덜란드는 그리 큰 나라가 아니다. 국토 면적(41,543㎢)이 한국(99,720㎢)의 42% 정도다. 그런 그들이 1974년(서독), 1978년(아르헨티나), 2010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세 차례 월드컵 축구 대회에서 준우승했다.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에서 8위(금 12 은 9 동 4)에 오르는가 하면 수영, 사이클, 필드하키 등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스포츠 ‘강소국’이다.

네덜란드는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특별한 기록을 세웠다. 스피드스케이팅 남녀 개인전 10개(남 5 여 5) 세부 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땄다. 금메달 6개와 은메달 7개, 동메달 8개다. 남자 500m와 5000m, 1만m 그리고 여자 1500m에서는 금, 은, 동메달을 휩쓸었다.

모든 세부 종목에서 메달을 딴 나라는 이전에도 있었다. 1924년 제1회 샤모니(프랑스) 대회의 핀란드, 1928년 생모리츠(스위스) 대회의 노르웨이와 핀란드(이상 남자부만 개최), 1932년 레이크플래시드(뉴욕주) 대회의 미국과 캐나다(남녀부 개최), 1936년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독일) 대회의 노르웨이, 1948년 생 모리츠 대회와 1952년 오슬로(노르웨이) 대회의 노르웨이 등이다.

1956년 코르티나 담페초(이탈리아) 대회(이상 남자부만 개최)와 1960년 스쿼밸리(캘리포니아주) 대회(남녀부 개최)에서는 옛 소련이 모든 세부 종목에 걸쳐 메달을 휩쓸었다. 북유럽 나라들 잔치에 미국과 캐나다가 찬조로 출연한 모양새다.

옛 소련의 리디아 스코블리코바가 여자 전관왕(500m 1000m 1500m 3000m)에 오른 1964년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 대회에서는 남녀부 모든 세부 종목에서 메달권에 든 나라가 처음으로 없었다. 이런 현상은 2010년 밴쿠버(캐나다) 대회까지 이어졌다.

미국은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대회에서 에릭 하이든이 남자부 전관왕(500m 1000m 1500m 5000m 1만m)에 올라 기록을 세우는 듯했다. 그러나 여자부에서 에릭 하이든의 동생인 버스 하이든이 딴 3000m 동메달에 은메달 2개(500m 1000m)를 추가하는 데 그쳐 ‘대업’을 이루지 못했다. 아시아에서 한국 같은 신흥 세력이 등장하고 거리별 전문화가 이뤄지면서 특정 나라의 메달 독식과 특정 선수의 다관왕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소치 올림픽에서 뽐낸 네덜란드의 저력은 놀라운 성과다. 스피드스케이팅에 걸려 있는 모든 메달을 색깔을 가리지 않고 쓸어 담았다. 개인 종목뿐만이 아니라 2006년 토리노(이탈리아) 대회 이후 소치 대회에서 세 번째로 치러진 단체 추발(남자 3,200m 여자 2,400m)에서도 남녀가 함께 금메달을 땄다.

네덜란드는 소치 대회까지 역대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 36개와 은메달 36개, 동메달 34개로 2위 미국(금 29 은 22 동 16), 3위 노르웨이(금 25 은 28 동 27)를 제치고 선두다.

서유럽에 있는 네덜란드가 북유럽의 강호들을 제치고 세계적인 빙속 강국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네덜란드는 그리 넓지 않은 국토의 25% 가량이 바다보다 낮다. 그래서 제방과 수로가 발달했다. 소년이 물이 새는 제방의 틈을 막아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등 제방과 관련한 일화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수로는 좋은 낚시터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최고의 스케이트장이었다. 시제가 과거인 까닭은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로 수로가 스케이팅을 할 만큼 꽝꽝 어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케이티 쿠릭 앵커가 지나친 내용이다. 네덜란드인들은 수로가 얼면 너도 나도 스케이팅을 즐겼고 우수한 스케이터들이 줄지어 배출됐다.

우리나라 스포츠 초창기에 스피드스케이팅 우수 선수가 대동강이나 압록강 부근에서 많이 나온 것과 비슷한 일이다. 1920~1930년대 강에 얼음이 어는 결빙기는 서울 한강이 1개월 가량이었다. 평양을 가로지르는 대동강은 3개월, 신의주 부근 압록강은 5개월이나 됐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네덜란드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1909년 1월 2일 처음 열린 이후 1997년 1월 4일까지 15차례 벌어진 ‘엘프스테덴톡트(Elfstedentocht, 11개 도시 투어)’는 수로를 이용한 스피드스케이팅 마라톤이었다. 네덜란드 북부 지역 11개 도시를 이어 주는 수로에서 열렸다. 거리는 대회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120마일(약 190km)이었다. 모든 코스의 얼음 두께가 최소한 15cm가 돼야 경기가 진행됐다.

엘프스테덴톡트는 마지막 대회 이후 15년 만인 2012년 다시 열릴 수 있었다. 그해 불어 닥친 강추위가 매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회 예정일 사흘 전인 2월 8일 얼음이 안전을 보장할 만큼 얼지 않아 취소됐다. 지구 온난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1940~1950년대에는 1, 2년 간격으로 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 대회는 300여명의 선수와 1만6,000여명의 아마추어가 참가하는 네덜란드의 국민적인 축제였다.

이런 여건에서 빙속 강국으로 발전한 네덜란드가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는 또 어떤 기록을 세울지 궁금하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