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릴리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 경기하는 정성일(왼쪽) 현 피겨스케이팅 코치 ⓒ 정성일, 2010년 피겨스케이팅 승급 심사에 나선 차준환 ⓒ 피겨포토 성대우

[스포티비뉴스=강릉, 조영준 기자] "저는 고 3때 처음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6위를 한 뒤 1988년 캘거리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는데 큰 무대에 처음 서보니 주눅이 들었어요. 그 대회에는 브라이언 보이타노(미국)와 브라이언 오서(캐나다)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출전했죠. 이런 점에 흔들리지 않고 빙판에서 스스로 풀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차)준환이는 올림픽 3차 선발전에서 큰 점수 차를 뒤집었는데 그걸 보고 대단한 선수라고 생각했죠."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간판 차준환(17, 휘문고)이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선전하고 있습니다. 16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 출전한 차준환은 클린 경기에 성공했습니다. 쿼드러플(4회전) 점프가 없었지만 83.43점을 받으며 국제빙상경기연맹(ISU)가 인정한 개인 최고 점수인 82.34점(2017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을 1.09점 높였습니다.

차준환은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홀로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2016년 12월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죠. 이듬해 열린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한국 남자 싱글 역대 최고 성적인 5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럼 차준환 이전 한국 남자 싱글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던 이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정성일(49) 피겨스케이팅 코치입니다. 그는 김연아(28)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피겨스케이팅 선수 가운데 국제 대회에서 가장 선전한 선수였습니다. 1991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습니다. 이것이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국제 대회에서 나온 첫 메달이었습니다.

1991년과 1992년에는 당시 존재했던 아시안컵에서 우승했죠. 정 코치는 한국 피겨스케이팅 선수 가운데 처음으로 트리플 악셀을 뛴 선수이기도 합니다.

▲ 1994년 릴리함메르 올림픽에서 경기를 마친 뒤 관중들의 환호에 답례하는 정성일 ⓒ 정성일

차준환은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동메달을 거머쥐었습니다. 지난해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5위에 오르며 정 코치가 보유했던 이 대회 한국 선수 역대 최고 성적(6위)을 넘어섰죠.

아직 한국 남자 싱글 올림픽 최고 성적은 정 코치가 1994년 릴리함메르 올림픽에서 기록한 17위입니다. 차준환은 17일 열리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역대 한국 남자 선수 올림픽 최고 성적에 도전합니다. 정 코치가 보유한 기록 가운데 여전히 깨지지 않은 것은 올림픽 3회 출전입니다. 그는 1988년 캘거리 1992년 알베르빌 1994년 릴리함메르 올림픽 무대에 섰습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 선수 가운데 올림픽 무대에 세 번 섰던 이는 정 코치가 유일합니다.

차준환이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새 역사를 쓰는 장면을 가장 대견하게 바라보는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정 코치입니다. 그는 지난 9일 평창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팀 이벤트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이 열린 강릉 아이스아레나를 찾았습니다. 첫 주자로 나온 차준환의 경기를 직접 관전했죠. 이제 겨우 17살인 차준환이 올림픽 무대에 경기하는 장면을 목격한 정 코치는 자신이 처음 출전했던 1988년 캘거리 동계 올림픽을 회고했습니다.

"제가 올림픽에 처음 출전했을 때가 고 3때 였습니다. 그때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6위를 하고 올림픽에 갔는데 큰 무대를 처음 경험하니까 주눅이 들었어요. 그 올림픽에는 브라이언 보이타노와 브라이언 오서가 경쟁했던 대회였습니다. 훈련할 때 워낙 잘하는 선수들이 많다 보니 위축됐습니다. 이번 올림픽 남자 싱글에서는 네이선 천(18, 미국)과 패트릭 챈(28, 캐나다)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도 실수했는데 준환이는 트리플 악셀도 깨끗하게 뛰고 실수 없이 경기했죠. 지금은 쿼드러플 점프를 뛰는 선수들이 많아졌지만 트리플 악셀도 쉬운 기술이 아닙니다."

정 코치는 처음 출전한 캘거리 동계 올림픽에서 22위에 올랐습니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는 21위를 차지했고 1994년 릴리함메르에서는 17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성적은 여전히 한국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사상 최고 성적입니다.

정 코치는 올림픽에 세 번 출전해 모두 프리스케이팅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후배들이 올림픽 무대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이규현(38) 피겨스케이팅 코치는 1998년 나가노(24위)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28위)에 참가했습니다. 이후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은 올림픽 무대에 서지 못했습니다.

▲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경기를 마친 차준환 ⓒ GettyIimages

이런 상황에서 차준환이 등장했죠.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발휘한 차준환은 2016년 ISU 주니어 그랑프리 2개 대회(일본, 독일 대회)에서 우승합니다.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동메달을 딴 차준환은 지난해 3월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위에 오르며 정 코치가 세운 이 대회 최고 성적인 6위를 뛰어넘었습니다.

그러나 올림픽 시즌을 앞두고 차준환에게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사실 차준환은 올림픽 출전을 대비해 기존에 뛰었던 쿼드러플 살코(기초 점수 10.5점)에 쿼드러플 토루프(기초 점수 10.3점)를 추가합니다. 여기에 쿼드러플 루프(기초 점수 12점)까지 간간히 연습했죠. 많은 대회 출전과 다양한 쿼드러플 연습을 한 그는 고관절과 발목에 부상이 생겼습니다. 여기에 발에 맞는 부츠를 찾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지며 최악의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한 피겨스케이팅 관계자는 "부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준환 측은 별별 일을 다 해봤다. 올림픽이 열리는 시즌에 가장 힘든 일이 닥쳤고 출전도 쉽지 않은 상황에 몰렸는데 그걸 이겨내더라"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올림픽 3차 선발전이 열리기 전 차준환의 올림픽 출전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대회 쇼트프로그램이 끝날때까지 차준환과 이준형(22, 단국대)의 점수 차는 20점이나 됐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차준환은 이 점수를 뒤집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정 코치는 감탄했습니다.

"제가 볼 때 지난 시즌 준환이의 경기력은 매우 좋았습니다. 올 시즌에는 쿼드러플 점프를 2개에서 3개 정도 넣으려고 했는데 부상과 부츠 문제로 고생했죠. 이번 올림픽 쇼트프로그램에서는 쿼드러플 점프를 넣지 않고 무리하지 않았는데 정말 좋은 경기를 했습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이번 올림픽에서 경험을 쌓아 차기 무대를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올림픽 3차 선발전이 열리기 전까지 점수 차가 워낙 벌어져서 쉽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뒤집는 것을 본 뒤 정말 대단한 선수라고 생각했습니다."

▲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뒤 키스앤크라이전에서 점수를 확인한 뒤 기뻐하는 차준환(가운데)과 브라이언 오서 코치(왼쪽) 이수경 대한빙상경기연맹 피겨 이사 ⓒ GettyIimages

쇼트프로그램에서 15위에 오른 차준환과 10위권 안에 진입한 선수들의 점수 차는 크지 않습니다. 10위 키건 메싱(26, 캐나다, 85.11점)과 점수 차는 불과 1.68점입니다. 변수가 큰 프리스케이팅에서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점수입니다.

문제는 쿼드러플 점수를 비롯한 프리스케이팅 기술 난이도입니다. 차준환은 프리스케이팅에서 쿼드러플 점프를 한 번 뛸 예정입니다. 반면 10위권 진입은 물론 상위권 도약을 노리는 선수 가운데 4회전 점프를 2회 이상 뛰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부진했던 네이선 천은 차준환과 같은 2그룹에서 경기합니다.

"쇼트프로그램의 경우 4회전 점프가 1~2개 밖에 없어서 하나만 실수를 해도 치명타가 큽니다. 반면 프리스케이팅은 쿼드러플 점프가 많은 선수가 유리할 수 있어요. 준환이는 등수에 크게 신경 쓰지 말고 후회 없는 경기를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번 올림픽 프리스케이팅은 지난 시즌 했던 프로그램입니다. 당시 준환이는 경기력은 매우 좋았는데 그때의 느낌을 살려서 한다면 좋은 결과도 따라올 거라고 봅니다."

차준환은 17일 열리는 프리스케이팅에서 11번째로 무대에 등장합니다. 프로그램은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위를 차지할 때 연기했던 '일 포스티노'입니다. 차준환은 강릉에 도착한 뒤 지도자인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프리스케이팅 연습에 집중했습니다. 그가 다시 한번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새 역사를 전해줄 '우편 배달부'가 될지는 이번 프리스케이팅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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