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 하키 남자부 결승에서 인도를 3-2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선수들이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하루 뒤 곧바로 3차전에서 또 다른 세계적인 강호 파키스탄(1956년 멜버른 올림픽 은메달, 1960년 로마 올림픽 금메달)을 맞아 체력의 문제를 드러내며 0-8로 완패했다. 그러나 또다시 하루 뒤 만난 홈그라운드의 일본을 2-1로 누르고 골득실차로 순위를 가린 파키스탄과 인도(이상 3승1무)에 이어 3위(2승2패)에 올랐다. 일본은 1무3패로 꼴찌로 밀렸다. 하키는 모든 경기가 6년 뒤 올림픽 주 경기장으로 사용되는, 일본 스포츠의 심장으로 불리는 요요기국립경기장에서 열렸다. 한국이 일본을 물리쳤을 때 요요기국립경기장의 분위기가 어땠을지는 대한체육회 70년사에 잘 표현돼 있다. <2편에서 계속>

1958년 도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감격의 동메달을 획득한데 힘입어 1960년대에는 용산고 광주일고 춘천고 제천고 등 전국적으로 고교 팀이 두껍게 저변을 이루면서 연세대 경희대 한국외대 성균관대 등 대학 팀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국제 대회에서는 이렇다 할 승전보가 전해지지 않았다.

재일 동포 선수에 국내 선수 2명을 보태 출전한 1962년 자카르타 대회에서는 7위, 감독과 코치 그리고 선수 모두 재일 동포가 없는 팀을 꾸려 출전한 1966년 방콕 대회에서는 6위에 그쳤고 이후 아시아경기대회 등 주요 국제 대회에 나서지 못하는 암흑기가 이어졌다. 경쟁력이 없는 종목은 외화를 들여 가며 국제 대회에 보낼 수 없을 정도로 나라의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던 시절이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하키는 큰 시련을 겪게 된다. 1974년 서울에서 열린 제55회 전국체육대회 여고부 경기에서 스틱을 사용하는 싸움이 벌어져 1982년 제63회 대회에서 부활하기까지 여고부 종목이 없어진 것이다. 그때 사고로 크게 다친 선수는 없었지만 “여자가 어떻게 스틱을 휘두르며 싸울 수 있느냐”는 호된 비판이 일어 종목 폐지라는 전무후무한 중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한국 하키는 이 같은 어려움을 이겨 내고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남녀 동반 우승의 쾌거를 이뤘다. 여자 하키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정식 세부 종목으로 채택됐는데 한국은 그 대회에서 말레이시아와 일본을 따돌리고 강호 인도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서울 대회에서는 인도를 3-0으로 물리치는 등 5전 전승(45득점 2실점)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탄력을 받은 여자 하키는 이후 1998년 방콕 대회까지 아시아경기대회 4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세웠다.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중국에 3연속 패권을 내줬는데 중국은 지도자를 비롯해 ‘한국식 하키’로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하키에도 한류 바람이 분 것이다.

1982년 뉴델리 대회에 여자와 함께 출전해 중국을 3-1로 꺾고 5위를 기록하면서 워밍업을 한 남자는 1986년 서울 대회 결승에서 이 대회 전까지 아시아경기대회 통산 5회 우승에 빛나는 세계적인 강호 파키스탄을 2-1로 잡고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남자도 여자 못지않게 탄력을 받아 1994년 히로시마 대회 결승에서는 또 다른 세계적인 강호 인도를 3-2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2002년 부산 대회에서는 인도를 4-3, 2006년 도하 대회에서는 중국을 3-1로 꺾고 인도도 이루지 못한 아시아경기대회 2연속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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