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80년대 폴란드 축구 전성기를 이끈 그레고시 라토.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은 중·장년 축구 팬들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TV로 국내에 처음 중계된 축구 월드컵이기 때문이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은 기록영화로 극장에서 상영됐다.

캐스터 이철원-해설 주영광(작고,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출전) 콤비가 멕시코-소련(오늘날 러시아) 개막전부터 브라질-이탈리아 결승까지 모든 경기를 생방송 또는 녹화로 중계했다. 당시 방송 화면이 선명하게 느껴졌던 건 멕시코에서는 컬러로 중계했으나 국내에서는 흑백으로 방영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월드컵 기록영화는 컬러판이었다.

이 대회에서 국내 축구 팬들은 소련을 비롯해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등 말로만 듣던,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 축구를 TV로나마 볼 수 있었다. 1962년 칠레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유고슬라비아가 한국 원정 경기를 치른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 경기를 본 축구 팬은 효창운동장에 모인 소수 인원뿐이었다.

동유럽 축구는 1952년 헝가리~1956년 소련~1960년 유고슬라비아~1964·68년 헝가리~1972년 폴란드~1976년 동독 등 1950~70년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쓸며 초강세를 보이고 있었다. ‘국가 아마추어’ 영향도 있었지만 상당한 수준의 경기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소련이 8강에 오른 것을 빼고 나머지 팀들이 모두 1라운드(16강)에서 탈락해 국내 팬들에게 동유럽 축구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기록영화로 본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소련이 4위를 차지하고 북한과 헝가리가 8강에 올랐기에 사회주의 나라 축구에 대한 이미지가 깨진 것이다.

그러나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주인공은 폴란드였다. 이 대회도 국내에 TV로 중계됐기에 적지 않은 축구 팬이 요한 크루이프를 앞세운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를 생생히 기억한다. 크루이프를 앞세운 네덜란드와 게르트 뮐러가 이끈 서독의 결승전은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듯한 흐름으로 국내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70년 창간한, 당시 국내 유일의 축구 전문지 ‘월간 축구’(베스트 11 전신)는 크루이프를 ‘21세기형 선수’로 평가했다.

이 대회에서 우승국 서독과 준우승국 네덜란드에 못지않은 주목을 받은 팀이 폴란드였다. 2년 전 뮌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폴란드는 이 대회 유럽 지역 예선 5조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제치고 본선에 올랐다.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아이티와 조별 리그 4조에 편성된 폴란드는 국내 축구 팬들 눈을 의심케 하는 놀라운 경기력을 보였다. 아르헨티나를 3-2, 아이티를 7-0, 이탈리아를 2-1로 잡고 파죽의 3연승을 달렸다.

이때 국내 축구 팬들 눈길을 끈 폴란드 선수가 있었다. 얼굴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할아버지’ 같은 외모의 이 선수가 1970~80년대 폴란드 축구 전성기를 이끈 그레고시 라토였다. 그때는 그냥 ‘라토, 라토’로 불렀다. 이때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라토는 아르헨티나, 아이티전에서 각각 2골을 넣었고 2라운드 B조 스웨덴과 경기에서 1-0 결승 골, 유고슬라비아와 경기에서 2-1 결승 골을 터뜨렸다. 이어 브라질과 3위 결정전에서 1-0 결승 골을 기록해 이 대회 득점왕(7골)에 올랐다. 폴란드 선수로는 2014년 브라질 대회 현재 유일한 월드컵 득점왕이다.

라토가 이끈 폴란드는 서독 월드컵 3위 이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은메달과 1982년 스페인 월드컵 3위 등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며 소련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과 함께 동유럽 축구를 대표하는 나라로 자리를 잡았다.

폴란드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16강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은메달 이후 이렇다 할 국제 대회 성적을 올리지 못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출전을 계기로 2006년 독일 월드컵 출전, 유로 2008(오스트리아+스위스) 유로 2012(폴란드+우크라이나) 출전, 유로 2016(프랑스) 8강 등으로 서서히 예전 명성을 되찾고 있는 가운데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올랐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은 스페인과 공동 6위다. 프랑스(9위) 이탈리아(4위)보다 위에 있다.

라토의 폴란드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28일 새벽(한국 시간) 한국-폴란드 경기는 자못 흥미로울 듯하다. 신세대 팬들은 2002년 한일 월드컵 2-0 승리 기억을 떠올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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