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티비뉴스=서울, 곽혜미 기자] 2019년 KBO 신인 드래프트가 10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지명된 선수들이 정운찬 KBO 총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0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19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대졸 선수 20명이 프로 구단 유니폼을 입게 됐다.

1,027명이 참가한 이번 드래프트에 나선 대졸 선수가 256명이니 '취업률‘이 10% 미만이다. 그나마 최근 몇 년 사이 높은 수치라고 하는데 문제는 취업률 이후인 듯하다. 20명 가운데 11명이 하위 라운드에서 뽑혔다. 8라운드에 4명, 9라운드에 3명, 10라운드에 4명이다. 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프로 무대에서 활동하게 될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스포티비뉴스 김건일 기자 기사에 따르면 이날 드래프트에 참석한 한 프로 구단 스카우트는 “(대졸 선수 가운데에선) 뽑을 선수가 마땅치 않다. 전체적으로 (대졸) 선수들 기량이 많이 떨어져 있다. 대학(야구)을 살리자’는 뜻에서 구단별로 이번 드래프트에서 대학 선수를 많이 뽑은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루가 다르게 침체하는 대학 야구를 ‘봐 줬다’는 얘기다.

대학 야구 선수가 프로 구단의 외면을 받는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야구를 하러 대학에 갔는데 야구를 못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가 운동과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며 C학점 이하 선수들의 대회 출전을 금지하는 바람에 선수들은 공이 아닌 펜을 잡아야 했다고 한다.

게다가 평일 경기가 사라지고 주말에만 리그가 열리게 되면서 야구부 선수들은 주중엔 공부하고 주말에만 야구를 하게 됐다. 드래프트에서 한 스카우트는 “수업하고 야구를 같이 해야 하는데 그러면 야구가 되겠나. 선수들 기량이 올라올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지명 받은 한 대학 선수 얘기는 최근 대학 야구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시간표를 짜야 하는데 운동(야구)부 안에서도 과가 다르잖아요. 다들 시간을 맞춰서 짜기가 힘들어요. 야구가 단체 운동인데 단체로 할 수 있는 스케줄을 못 짜다 보니 운동을 시작하기조차 어렵고요. 그리고 야간 운동 끝나면 과제를 하고 새벽에 잠들어야 해요. 그게 가장 힘들어요. 또 주말엔 경기를 하기 위해 지방을 가야 합니다. 4~5시간 걸리죠.”

한국의 NCAA(미국대학스포츠협회)를 표방한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는 대학 스포츠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데 철저한 학점 이수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리그제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야구는 농구와 배구, 축구 등과 달리 경기장 문제 때문에 홈 앤드 어웨이 방식에 문제점이 있긴 하다.

이런 움직임과 관련해 글쓴이가 10년 전 취재한 내용을 소개한다.

연세대는 2007년 4월 김해체육관에서 열린 MBC배대학농구대회에서 3위를 했다. 양희종 김태술 등 주력 선수가 졸업한 연세대는 애초 우승 후보가 아니었다. 그러나 연세대는 이들이 졸업하지 않았어도 우승하기가 어려웠을지 모른다.

연세대는 그해 4월 23일 “2007년 1학기부터 농구부 전원을 대상으로 일반 학생과 똑같이 수업에 참여하면서 운동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선수들은 학교의 지원 아래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대학 스포츠 정상화 프로젝트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연세대 선수들은 MBC배대회 출전을 앞두고 정상 수업을 했고 대회 기간에는 PC방에서 수강 과목 교수가 올려놓은 동영상으로 수업을 했다.

연세대 체육위원회 체육지원부 관계자는 당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과 관련해 “종목별 협회(연맹)에서도 앞으로 정상적인 학사 일정을 위해 대회 숫자를 줄이거나 방학 기간에 대회를 집중적으로 여는 쪽으로 협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KBS 시사 기획 프로그램 '쌈'은 2007학년도 1학기 동안 연세대 농구부를 동행 취재하며 기존 학원 스포츠계 문제점과 대안점을 찾아 본 뒤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라는 제목의 2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한국 스포츠의 변혁'이라는 주제로 2, 3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로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든 KBS 보도국 체육부 정재용 기자는 당시 기획에 대해 "미국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 공부를 할 때부터 구상했다. 학원 스포츠는 대학 입시로 모든 게 연결되고 대학이 (운동선수 입학과 관련한) 원칙을 정하면 중·고교는 따라오게 된다는 생각으로 연세대 운동부를 프로그램 대상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정 기자는 당시 프로젝트를 위해 2006년 9월 시사보도팀으로 파견을 자청했다. 다큐멘터리의 제목 '죄송합니다~'는 실제로 운동부 학생들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시험지에 써 놓는 말이다.

이번 프로 야구 드래프트 관련 기사를 보면서 한국 대학 스포츠가 제대로 된 길을 가려면 여전히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10일 프로 구단 지명을 받지 못한 90% 이상 대졸 미 취업자는 초등학교 3, 4학년 때부터 10년 이상 해 온 야구 외에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 유소년 지도자로 활동하거나 일부 활성화돼 있는 직장 야구부에 입단하는 방안도 있으나 취업 문이 그리 넓지 않다.

미국에도 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학생 선수[college athlete]’가 한국처럼 있다. 그러나 이들은 철저한 학사 관리를 받는다. 그래서 에릭 하이든처럼 대학에서 운동을 하면서 올림픽 챔피언[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겨울철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전관왕(500m 1000m 1500m 5000m 이상 올림픽 신기록 1만m 세계신기록)]이 되고 졸업한 뒤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는 사례가 가능한 것이다.

가까이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아이슬란드 동화’를 쓴 헤이미르 할그림손 감독은 19살 때부터 10년 동안 고향 축구 클럽에서 뛰었다고 한다. 이후 여러 클럽에서 활동했는데 그사이 고향에서 치과 의사로 환자를 돌봤고 유로 2016에 출전한 대표 팀 사령탑을 맡은 이후에도 짬짬이 치과 일을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런 사례를 만드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서도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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