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레버 바우어는 피치 디자인의 개념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투수로 꼽힌다.
[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지난해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공을 던졌다.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삼진을 잡았다. 덕분에 지난해 4.65점이던 팀 경기당 평균 득점은 4.45점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모든 투수들이 구속을 늘릴 수는 없다. 강속구 투수만 잔뜩 데려온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구종 추가가 대안이 될 수 있고, 많은 투수들이 새 구종을 오프 시즌 목표로 설정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구종을 추가한다' 자체보다 '효과가 있느냐'다. 

그래서 요즘 메이저리그에서는 '피치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떠오르고 있다. 타자가 구종을 쉽게 파악하지 못하도록 전략적인 투구를 하자는 얘기다. 

▲ 기쿠치 유세이. ⓒ 시애틀 매리너스
일본 매체 베이스볼 긱스가 기쿠치 유세이(시애틀)의 피치 디자인 과정을 뜯어봤다. 이 매체는 "투수는 공을 던진 감각을 말로 표현한다. 분석가들은 그 감각과 투구 결과가 어떻게 엮이는지 확인한다. 연구자는 바이오메카닉 이론에 따라 투수에 적합한 투구 폼과 그립을 설정한다"고 소개했다. 

기쿠치는 시애틀 합류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 세로로 떨어지는 공을 개선하는데 공을 들였다. 일본에서는 왼손 투수 가운데 가장 빠른 축에 속하는 직구와 슬라이더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올해는 체인지업을 실전에 쓸 수 있는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목표다. 

트랙맨으로 이유를 파악해 보니 우선 구속이 직구에 비해 너무 느렸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직구 구속의 약 90% 수준의 체인지업이 평균인데, 기쿠치는 86% 수준이었다. 공이 느리면 변화가 커지는데, 효율적인 무브먼트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는 오히려 '피치 터널' 구성에 방해가 된다. 피치 터널이란 홈플레이트에서 약 7m 지점에 있는 가상의 터널이다. 이 지점을 넘어서 공이 움직이면 타자가 구종을 파악하기 힘들거나, 알더라도 대응할 수 없다. 많이 움직이는 공보다 늦게 움직이는 공이 좋다는 얘기다.

공의 움직임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회전 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기쿠치가 트랙맨 데이터를 늘 곁에 두는 이유다. 미국 출국 전에는 체인지업의 구속을 높이면서 늦게 떨어지게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 

사실 이런 과정을 모두 공개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런데 기쿠치는 베이스볼 긱스에 "야구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면(괜찮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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