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난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행복한 사람이었어^^ 니들이 있었으니까^^

KIA 이범호(38)는 모바일 메신저 대문에 이런 문구를 써 놓았다. 아들 사진이 크게 걸려 있고, 그 아래에는 팀 동료인 김주찬(38) 나지완(34)과 함께 오래 전 라커룸에서 찍은 추억의 사진을 올려놨다.

▲ KIA 이범호(가운데)가 은퇴를 결심한 뒤 자신의 모바일 메신저 대문에 친구 김주찬(왼쪽), 후배 나지완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 놓았다. 2013시즌을 앞두고 김주찬이 FA 계약으로 처음 KIA 유니폼을 입었을 때 찍은 빛바랜 사진이다. ⓒ이범호 모바일 메신저
‘꽃범호’로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범호가 은퇴를 선언했다. 2000년 한화에 입단한 뒤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2010년)를 거쳐 2011년부터 KIA 유니폼을 입고 20년간 프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18일 구단의 공식 은퇴 발표가 난 뒤 이범호는 이날 밤 방송된 스포츠타임 베이스볼과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달에 은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구단과 상의를 했다”면서 “현역 생활을 많이 했다. 오래 했으니까 나한테 어떤 선택이 가장 좋을지 고민도 많이 했다. 후배들도 워낙 잘하고 있고, 그래서 지금 시기가 가장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모바일 메신저 대문에 걸린 문구는 5월 15일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범호는 “그 즈음에 최종적으로 은퇴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범호는 ‘난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행복한 사람이었어’라는 문구에 대해 “선수로서 슈퍼스타도 아니고, 빼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은퇴를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나니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사랑을 받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행복한 나날이었다”고 고마워했다.

김주찬 나지완과 함께 찍은 사진이 정겹다. 약간 빛 바랜 추억의 사진이다. 이범호는 “사진으로 뽑아서 간직하고 있던 것을 휴대폰으로 다시 찍으니까 더 빛이 바랜 것 같다”며 웃더니 “주찬이가 KIA에 처음 왔을 때 나지완과 함께 찍었던 사진인데 선수 생활을 돌이켜보면서 이 친구들과 추억이 많아 대문에 사진을 바꿔 올렸다”고 말했다.

김주찬은 2012년 11월에 FA(프리에이전트) 계약으로 KIA 유니폼을 입었다. 2년 전에 자신이 KIA에 입단했을 때 나지완이 팀 적응에 도움을 많이 준 것처럼, 그 역시 김주찬이 빠르게 KIA에 녹아들 수 있도록 큰 힘이 돼 줬다. 그러면서 2017년 우승을 함께 엮어내기도 했다. 이범호는 당시 우승 반지 사진을 모바일 메신저에 올려놓고 “나도 반지 있다”며 생애 처음 간직하게 된 우승 반지를 자랑하기도 했다.

막상 이날 KIA 구단에서 은퇴 공식 발표를 하고, 은퇴 기사가 나오자 또 다른 감정이 밀려드는 듯했다. 이범호는 “은퇴 공식 발표가 나기 전에는 실감이 안 났는데, 이제 그라운드에서 뛰고 이런 것들을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심적으로 아쉬운 게 있다”면서 “내가 결정하고 선택을 한 것이니까 후회는 없다. 다행히 5경기가 남아 있다. 2000경기를 하고 난 뒤에 은퇴를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몇 경기 정도는 야구장에서 팬들을 뵙고 은퇴할 수 있어서 괜찮은 것 같다”며 구단과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범호는 지난해까지 통산 328홈런을 기록해 KBO리그 개인통산 홈런 부문 역대 5위에 이름을 올려놨다. 그리고 올해 1개를 추가해 329개까지 늘렸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햄스트링 부상의 여파로 제대로 뛰지 못한 것이 아쉽다.

KBO리그 역대 1위인 이승엽의 467홈런은 불가능해도, 양준혁(351홈런)을 넘어 역대 2위 자리까지는 갈 수도 있었다. 2017년 25홈런, 2018년 20홈런을 기록한 페이스를 보면 올 시즌 부상만 없었다면 적어도 그가 처음 프로생활을 시작한 한화의 장종훈이 기록한 340홈런까지는 다다를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결국 329송이를 피워냈던 꽃은 여기서 지게 됐다. 남은 5경기에서 역대 4위인 이호준(337홈런)을 넘어서는 것도 어렵다.

아쉽지 않을까. 이범호는 “어쩌겠나. 여기까지인가 보다”며 웃었다. 대신 2000년에 프로에 데뷔한 뒤 20년을 뛰었고, 구단의 배려로 통산 2000경기까지 뛰게 된 데 대해 만족했다.

‘이범호’ 하면 떠오르는 것이 ‘만루홈런의 사나이’다. 통산 17개의 만루홈런을 뽑아내 이 부문에서 독보적 기록을 쌓아올렸다. 역대 2위가 심정수의 12개이며, 현역 선수 중에는 강민호(삼성)가 11개로 가장 많다. 당분간 이범호의 만루홈런 기록이 깨지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이범호는 자신을 ‘만루홈런의 사나이’로 기억하는 팬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항상 내가 타석에 나오면 ‘칠 것 같다’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던 팬들이 많았다. 선수 생활을 할 때 너무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런 기록들 때문에 타석에 들어가는 내 자신이 너무 행복했고 즐거웠던 것 같다. 그래도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많은 팬분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도록 하겠다. 그동안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

마지막 약속마저 이범호의 품성이 드러난다. 야구계 선후배들 사이에서 이미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지만,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 은퇴를 결심한 뒤 이범호는 모바일 메신저 대문에 '난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행복한 사람'이라는 문구를 써 놓았다. ⓒ이범호 모바일 메신저
이범호는 모바일 메신저에 스스로를 “난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행복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범호는 ‘훌륭한 야구선수’이자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있어서 팬들도 충분히 행복했다.

다만, 은퇴 전 만루홈런 한 방만 더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 이범호가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 1-0으로 앞선 3회초 2사 만루에서 두산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터뜨린 뒤 그라운드를 돌며 환호하고 있다. 이범호는 KBO리그 정규시즌에서만 통산 17개의 만루홈런을 날려 이 부문 1위에 올라 있다. ⓒ한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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