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영상 한희재 기자] "나도 저기(그라운드) 안에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죠."

두산 베어스 마무리 투수 이형범(25)은 2016년 가을 잠실야구장 관중석을 처음 찾았다. 당시 소속팀 NC 다이노스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형범은 더그아웃 밖에서 경기를 지켜보면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한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이형범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못 들었지만, 경기장은 왔었다. 잠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처음으로 봤는데 아쉽더라. 내가 저(그라운드) 안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날의 다짐 덕분일까. 이형범은 3년 만에 1군 마무리 투수로 성장했다. 올겨울 FA 포수 양의지(NC)의 보상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올 시즌 48경기에 등판해 5승1패, 11세이브, 8홀드, 43⅓이닝, 평균자책점 1.87을 기록했다. 이형범은 빼어난 제구력에 강한 멘탈까지 갖춰 김태형 두산 감독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이형범은 "이런 성적을 낼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두산에 처음 왔을 때는 롱릴리프나 선발에 구멍이 나면 빈자리를 채울 것으로 생각했다. 한 번씩 위기를 막으니까 좋은 보직을 밭았고, 정신없이 경기를 나가다 보니까 기록이 쌓였다"고 이야기했다. 

NC 시절에도 제구력은 좋았다. 팀을 옮긴 6개월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이형범은 "긴장감의 차이 같다"고 추측하며 "NC에서는 이미 넘어간 경기나 점수 차이가 나는 경기를 많이 나갔다. 두산에서는 이겨야 하고, 막아야 하는 경기에 나가니까 더 끓어오르고 힘도 생긴다. 응원해 주는 팬들도 많으니까 나도 모르게 120% 힘이 나오고 결과도 좋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원형, 정재훈 투수 코치의 조언도 큰 힘이 됐다. 이형범은 "내 장점이 뭔지 알려주시는 게 정말 도움이 된다. 네 투심 패스트볼은 오른손 타자가 치기 힘들다고 말해주시니까 나도 믿고 던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시즌 11번째 세이브를 챙겼던 지난 13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형범은 4-2로 앞선 9회말 1사 1, 2루에서 대타 배성근을 투수 병살타로 돌려세우는 듯했는데, 2루 송구 실책을 저지르는 바람에 점수는 4-3으로 좁혀지고 1사 2, 3루 위기가 계속됐다. 이형범은 다음 타자 신본기를 자동고의4구로 내보내 만루를 채운 뒤 민병헌과 오윤석을 연달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경기를 끝냈다. 

이형범은 아찔했던 그 날을 다시 떠올리며 "수비 실수를 잘 안 하는데, 처음 했던 것 같다. 내가 저지르고 나 때문에 질 뻔했는데, 막아서 가장 힘들었던 세이브였다. (배성근의 타구를) 잡고 더블 플레이를 하면 끝이란 생각이 앞서서 악송구가 나왔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이미 저질러진 거니까. (1사 만루에서) 볼카운트가 유리해서 삼진을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아웃에서는 더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위기가 또 올 텐데, 그때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어린 시절 집과 가까운 광주 무등구장을 찾을 때마다 라면을 챙겨줬던 이형범의 부모는 요즘 아들의 활약을 뿌듯하게 지켜보고 있다. 

이형범은 "잠실에 한 번 오셨는데, 사람들도 많고 응원가도 재미있어서 같이 따라불렀다고 하더라(웃음). 요즘 전화하며 부모님 목소리가 좋다. 내가 여름에 약한 걸 아니까 체력 관리 잘하고, 잘 먹고, 에어컨 끄고 자란 말을 많이 하신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경기마다 뜨거운 응원을 보내준 팬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형범은 "9회 2아웃에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기 전에 팬들께서 '삼진'을 외칠 때 가장 힘이 난다. 그러면 진짜 삼진을 잡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후반기에도 뒷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겠다고 다짐했다. 이형범은 "야구를 하면서 최고의 전반기를 보냈다. NC에서는 빛을 많이 못 봤는데, 두산이라는 좋은 팀에 와서 필승조로 나갈 것이라 생각 못 했다. 중요한 상황에 나가면 믿어주신 만큼 책임감 갖고, 블론 세이브를 하지 않고 이길 수 있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영상 한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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