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올 여름 한국영화 빅4의 첫 주자로 꼽힌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제작 ㈜영화사두둥)가 뜻밖의 암초를 만났습니다. 바로 역사 왜곡 논란입니다. 소헌왕후 역으로 출연한 배우 고 전미선의 갑작스러운 사망, 출판사가 제기한 상영금지가처분 소송 등 개봉에 앞서 여러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던 영화이기에 이같은 상황이 더 안쓰럽습니다. 이 와중에 개봉 첫 날 '라이온킹'을 꺾고 1위에 올랐던 '나랏말싸미'는 이튿날 순위가 2위로 하락했고, 이후 반전하지 못한 채 첫 주말을 보냈습니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는 자막과 함께 시작합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홀로 만들었다는 게 인정받는 정설입니다. 혹은 몇몇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만들어냈다고도 하고, 훗날 문종이 되는 세자와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이 조력자가 됐을 거란 설도 있습니다. 놀랍고도 위대한 언어에 대한 관심이 큰 만큼 다양한 설이 있고, 이를 다룬 픽션도 여럿 만들어졌습니다.

▲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그런데 '나랏말싸미'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인물을 주요하게 다룹니다. 세종이 나라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했으며 지혜를 깨우쳐 반열에 오른 자라는 뜻의 '우국이세 혜각존자'란 칭호를 내렸다는 스님 신미입니다. 숭유억불의 조선, 스님이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했으나 유학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기록에 남기지 않았다는, 신미대사 조력설이 영화 '나랏말싸미'의 바탕입니다. 2019년 개정, 출간된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의 '훈민정음의 사람들' 등에 주요하게 등장합니다. 사대부들이 문자를 독점하고서 새 글자같은 건 오랑캐나 만드는 것이라 믿던 시대이니, 스님 조력설이 그럴듯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설인 데다, 반론도 상당한 가설입니다.

영화는 백성들이 쉽게 익혀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들고자 했던 왕 세종이 신하들의 반대, 냉소를 무릅쓰고 한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한글 창제에서 세종이 기획자가 되고 신미가 실행을 맡은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한국사를 통틀어 최고의 슈퍼스타나 다름없는 세종대왕, 그리고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을 건드렸다는 데 대한 반감도 상당한 듯 합니다. 일부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깎아내렸다며 역사 왜곡을 지적했습니다. 허구마저 믿게 만드는 송강호 박해일 그리고 고 전미선 등 묵직한 배우들의 열연이 되려 논란을 가중시키는 모양새입니다.

▲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영화의 상상력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는 있습니다. 종교적 색채가 불편함을 더했을 수도, 왕을 대하는 신하나 스님의 태도가 낯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 폄하 혹은 폄훼라는 주장은 반감에 더해진 오해에 가까워 보입니다. '나랏말싸미'의 주인공은 눈이 보이지 않는 마지막 순간까지 진정 백성을 생각하며 새 문자를 만든 성군 세종이며, 영화는 쉽고 간단한 문자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실행시킨 한글창제의 주역이 세종임을 분명히 합니다. 왕이 백성을 위해 만든 애민정신의 결정체이자 한국사 최고의 발명품인 한글의 빛나는 가치 또한 바래지 않습니다. 세종대왕의 위대함은 물론 한글의 위대함도 또렷하게 전해집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 다큐멘터리가 아니라는 뻔한 이야기를 또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다만 사극의 장인들도 피해가지 못한 '나랏말싸미' 역사 왜곡 논란은 여러 생각할 거리를 남깁니다. 영화는 실존인물, 실제 사건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어디까지가 파격적 재해석이며, 어디까지가 상식에 대한 도전일까요. 그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놓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지난 24일 개봉한 '나랏말싸미'는 첫 주말 누적관객 75만 명을 불러모았습니다. 100억대 제작비가 든 여름 대작인 '나랏말싸미'가 이대로 손익분기점 350만 명을 넘기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흥행 성적보다 더 안타까운 건 영화에 담긴 뜻이 절하되고 오해받는 현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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