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날두 없으면 어떤가. 세징야(오른쪽)가 있고, 김보경(가운데)과 에델(왼쪽)이 있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팀 K리그는 떠났지만 K리그는 여전히 우리 옆에 있다. K리그 선수들이 실망했을 축구 팬들의 마음을 달랠 준비를 하고 있다.

즐거운 축제를 예상했지만 배신감만 안고 쓰린 속을 달래야 했다. 지난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팀 K리그와 유벤투스의 친선전에 대한 소회다. 급히 모인 팀 K리그와 프리시즌을 보내는 유벤투스의 경기는 결과가 그리 중요한 경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유벤투스의 지각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무책임한 출전 거부로 한국 팬들은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 유벤투스는 먼 나라 한국이 중요하지 않았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엔 K리그의 유니폼보다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더 많았다. 경기 전엔 유벤투스 응원가도 나왔고, S석에선 한국인 유벤투스 팬들이 카드 섹션까지 하며 한국을 찾은 '꿈의 클럽'을 응원했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참담하기만 했다.

유벤투스 그리고 호날두의 '제멋대로' 행태는 전후 사정이 어떻든 결국 한국 시장을 무시한 결과다. 이렇게 팬들을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한국이 머나먼 동아시아의 국가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 팬들이 직접적으로 유벤투스를 곤란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역사 문제에서 시작해 경제적 보복까지 이어진 일본의 태도에 뿔이 난 한국에선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났다. 항의라도 하려면 '한 방' 먹일 거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유벤투스로선 한국 팬들은 전 세계 팬들 가운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 반대편 한국 팬들보단 슈퍼스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 이제 시즌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몸 상태와 컨디션 관리가 더 중요했을 것이란 얘기다.

▲ 응답하지 않은 호날두 ⓒ한희재 기자

◆ '우리 동네' K리그는 최선을 다했다

역설적이게도 유벤투스와 호날두의 방한은 '우리 동네' 축구의 가치를 보여줬다. 팀 K리그 선수들은 한국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울산 현대의 미드필더 믹스는 "K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다. 우리는 K리그를 대표한다는 것에서 압박감을 느끼진 않았지만 매우 흥분됐다. 모든 선수들이 K리그를 대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이것은 정말 큰 영광이다. 우리는 한 번의 태클, 한 번의 질주에 100% 힘을 쏟았다. 팬들은 유벤투스와 우리를 함께 응원하는 것 같았다. 유벤투스처럼 큰 팀을 상대로 겁먹지 않고 싸우려고 했다"고 밝혔다.

경기력에서도 합격점이었다. 팀 K리그는 '수비 축구의 나라' 이탈리아 최강 클럽 유벤투스의 골문을 3번이나 열었다. 프리시즌이라고 해도 대단했다. 급조된 팀 K리그는 유벤투스 못지 않은 경기력을 냈다. 오스마르는 전반 7분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슛으로 보에치에흐 슈쳉스니의 거미줄 수비를 뚫었다. 오스마르는 중원에서 패스를 좌우로 뿌리고 전방 압박도 효과적으로 풀어내 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기력도 올라왔다. 전반 41분 홍철에서 시작해 김보경과 세징야가 패스를 주고받으며 유벤투스의 견고한 수비진에 공간을 만들었다. 이동국을 거쳐 윤빛가람의 슛까지 나왔다. 팀 K리그도 발이 맞아들어간다는 증거였다. 팀 K리그가 끝내 전반 종료 직전 1골을 다시 만들었다. 김보경이 밀어준 패스를 세징야가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연결해 유벤투스의 골망을 두 번째로 흔들었다.

후반전 경기력이 더 바짝 올랐다. 팀 K리그는 유벤투스의 공격을 차단한 뒤 속도를 살려 반격했다. 후반 4분 김진야의 크로스가 애덤 타가트의 머리에 맞지 않고 지나갔다. 하지만 팀 K리그는 전열을 가다듬은 뒤 다시 공격했다. 박주호의 크로스를 타가트가 잡아두고 내주자 믹스가 슛을 시도했다. 수비의 몸에 맞고 굴절되자 타가트가 강력한 슛으로 득점했다. 

호날두는 떠나고 난 뒤까지 팀 K리그의 놀라운 경기력에 관한 이슈마저 집어삼킬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홍철이 '인터풋볼'과 인터뷰한 홍철이 "저희도 K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저희보다 유벤투스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쉽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유벤투스를 뚫은 타가트(오른쪽)와 외국인 선수들. 완델손, 발렌티노스, 믹스(왼쪽부터)

◆ '팀 K리그'는 떠나고 K리그가 돌아온다

이제 팀 K리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K리그는 돌아온다. 30일엔 모두 4경기가 열린다. 2위 울산 현대와 3위 FC서울의 경기는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빅매치다. 서울이 패한다면 3강 구도는 2강 구도로 재편될 수도 있는 상황. 지난 맞대결에서 2-2로 치열하게 싸웠던 두 팀의 경기 결과는 어떻게 될까.

인천 유나이티드와 경남FC가 강등권 탈출을 걸고 한판 대결을 펼친다. 대구FC와 수원 삼성도 중위권에서 도약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맞붙는다. 성남FC와 상주 상무 역시 강등권 팀들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31일에도 2경기가 열린다. 강원FC와 포항 스틸러스는 춘천 송암스포츠타운에서 다시 만난다. 두 팀의 지난 맞대결에서 강원이 0-4에서 5-4로 극적인 역전 승리를 따내면서 외신에서도 보도됐다. 두 팀의 리턴매치에선 또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선두 전북 현대는 바쁜 이적 시장을 보낸 제주 유나이티드와 격돌한다. 

한국 팬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K리그 선수들이다. 지난해 K리그1의 평균 관중은 5444명. 유료 관중만 집계한 것이라지만 절대적으로 많은 수는 아니다. 그래서 K리그 선수들은 팬들의 사랑에 감사할 줄 안다. 팬들에게 사인하고 함께 사진 촬영하는 것은 이제 K리그 선수들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상이다. 경기장을 찾아오는 팬들의 목소리에 울고 웃는 이는 축구를 제일 잘한다는 호날두가 아니라, 바로 우리 동네에서 뛰는 K리그 선수들이다.

대구FC의 황순민은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 "힘들 때 스로인하러 가면 박수도 쳐주시고 '힘내라, 황순민' 해주신다. 그럴 땐 힘들어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뒤에서 가족들이 밀어주시는 느낌"이라며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호날두 때문에 실망했을 팬들에게 K리그는 말을 걸고 있다. "새로운 가족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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