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봉오동 전투'의 원신연 감독. 제공|㈜쇼박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1920년 6월, 우리 독립군이 일본의 대규모 정규군을 상대로 거둔 첫 승리를 영화화한 영화,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제작 빅스톤픽쳐스)는 뜨겁다. 나라 잃은 설움에 총을 든 무명의 용사들도, 목표를 향해 물러서지 않는 걸음을 옮기는 이야기도, 거침없는 묘사도… 심지어 오는 7일 개봉을 앞둔 시국도 뜨겁기 그지없다. 순 제작비 155억이 투입된 '봉오동 전투'는 올 여름 극장가에 출사표를 던진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제작비를 투입한 대작이기도 하다. 기대와 관심 역시 뜨거울 수밖에.

많지 않은 사료를 뒤지고 자문에 자문을 구하며 '시대정신'을 고민한 원신연 감독 역시 뜨겁고 치열한 마음이다. 개봉을 앞둔 심경을 묻는 질문에 "전투를 앞둔 독립군 같다"며 말문을 연 원감독은 "떨리고 긴장되고,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불타오르기도 한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투'에서 '봉오동 전투'로 제목을 바꿨다.

"보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영화를 만드는 어떤 감독이든 갖고 있는 생각일 거다. '전투'라는 제목이 싸움, 전투 위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었고, '봉오동'이란 지역색이 들어감으로서 지역과 시대가 묻어날 거라 판단했다. 블라인드 시사 때도 '봉오동 전투'가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제목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 영화 '봉오동 전투'의 원신연 감독. 제공|㈜쇼박스
-일본 반일 감정이 고조된 분위기에서 개봉을 앞뒀다.

"의도한 것이 아니기에 입장을 이야기하기가 너무 조심스럽다. 기획 기간이 길었고, 촬영도 작년에 시작해 올해 후반작업을 마쳤다. 지금의 현실을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는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지금 현실이 이렇게 된 게 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각색하면서 지금 관객과 만나는 게 오히려 너무 늦었다는 생각을 했다. 진작 만들어져서 관객과 만나고 많은 사람이 알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늦었다고 생각했다."

-시기가 맞아떨어졌다는 반응도 많다.

"전지전능하지가 않아서, 개봉 이후 국민들의 감정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저는 정말 영화를 통해서 이들이 왜 모든 것을 걸고 싸웠나, 제발 그 진정성을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봉오동전투 승리를 이끈 것으로 알려진 홍범도 장군이 아니라 무명의 용사들을 내세웠다.

"이유가 다양하다. 영웅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나.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무명 독립군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기억하기로는 한 번도 없었다. 정말 남아있는 기록이 없었다. 중요한 부분이다. 극중 일본군 대장이 '저들의 입으로 오늘이 기록되어서는 안된다'며 다 없애버리라 하지 않나.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전투였기에 기록을 다 없앴다. 청산리 전투도 마찬가지다. 기록이 거의 없다.

홍범도 장군 경우도 별명이 날아다니는 백두산 호랑이라고 소문이 파다할 만큼 전설적 이미지지만 알려진 게 많지 않다. 일지을 읽어봐도 언급이 많지 않으시다. 남아있지 않은 자료에 살을 붙이기보다는 아직까지 이야기되지 않은 무명의 독립군을 이야기하는 게 우리 영화의 '함께하는 승리'에 맞지 않겠느냐 했다.

무엇보다 봉오동에서 3면에 독립군들이 매복해 있다가 일본군들을 몰살시켰다. 철저하게 훈련되고 전문적 지식을 가진 일본군은 러시아 등의 전투에서 계속 승리했다. 궁금했다. 누군가의 희생이 없었다면 일본군은 절대 유인당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보니까 무명의 독립군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제게는 실존했던 분보다 이름도 없는 분들이 더 뜨거운 존재였다."

-평소에도 주요 캐릭터에 늘 사연을 만들어왔는데, 이번엔 어떻게 구성했나. 

"늘 주인공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든다. 이번에는 그걸 만드는데만 한달이 걸렸다. 그만큼 길다. 현대의 장르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실로 기록돼 있는 역사적 시각을 근거로 하는 영화기 때문에 시대의 특징이나 시대정신 이런 부분들을 알지 못하면 한 발도 나갈 수 없었다. 장면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부분 그 시대 특성을 알아야 했다. 그렇다보니까 한 인물을 만들 때도 '눈이 어쩌면 그럴까. 무엇이 너를 그리 만들었니'에 대한 과거가 있어야 했다. 여느 장르영화처럼 창작으로만 갈 수 없더라. 인물의 매력, 캐릭터의 특징보다 시대정신, '어떻게'보다 '왜'에 집중했다."

-그 '시대정신'이란 어떤 것인가.

"캐릭터마다 각각의 사연이 있다. 신파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선 사연에 집중을 해야한다. 인물의 사연에 집중하고 그에 반응하는 상대 캐릭터를 보여줌으로서 상대와 관객이 느끼는 울림의 감정이 커진다. 이 '봉오동 전투'는 각 캐릭터들이 기구한 사연도 있고 내면의 상채기가 있는데 반해 사연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소년병이 외치는 '우리가 왜 싸우는지를 잊었어요'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대의를 향해 달려간다. 대부분의 독립군이 그런 시대정신을 가져간다고 생각한다.

류준열이 연기한 이장하 캐릭터를 만들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장하에게 누이는 어머니이며 조국이다. 조국이 죽었다. 누이를 지키는 것이 조국을 지키는 것이다. 류준열 배우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 소름이 쫙 돋았다. 이 캐릭터에 대해서 더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 했다. '내가 조국을 지키는 것이 누이를 지키는 것이고 그것이 조국을 지키는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읽었는데 맞나요'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런 것이 '봉오동 전투' 속 캐릭터의 시대정신인 것 같다.

▲ 영화 '봉오동 전투'의 원신연 감독. 제공|㈜쇼박스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만큼 고민도 많았을 듯하다.

"왜곡에 대한 건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이를테면 이 인물이 여기 존재하는 것 자체. 외적 이미지든 내적 이미지든 관객은 쉽게 눈치챈다.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나? 옷을 저렇게 입을 수 있나. 저 머리칼의 마감은 미용실에서 한 것 아닐까?'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이 부분까지는 용인이 될 것인지 철저히 신경써서 만들었다. .

-영화에 담긴 건 어디까지가 진짜인가.

"명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상황을 재구성했을 등장하는 사건, 전투 그리고 봉오동에서의 대승리는 모두 기록된 부분이다. 독립신문에 기록돼 있다. 비슷한 시기 독립자금 운반도 기록에 있다. 이를 재조합했을 뿐 기록 없이 반영된 것은 없다. 이 정도면 근거에서 벗어나지 않는 상상력이라고 생각하며 조합한 것이다. 무기 등도 사료를 찾아 반영했다. 뭔가 설명을 해야 이해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아 아쉽기도 하다. 역사적인 사건을 근거로 한 영화는 고증 등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남아있지 않은 것이 많아 어쩔 수 없이 활용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의상만 해도 다 흑백사진이라 일본군 옷 색깔을 정확히 알 수 없다. 파트별 헤드 스태프와 이야기를 했고, 이분들도 무기 덕후, 역사 덕후, 의상 덕후 등도 만나 자문을 구했다."

-유해진이 감독님이 묵묵히 모든 고민을 감내했다며 모든걸 흠뻑 빨아들여 머금고 있는 스펀지에 비유하더라.

"고증이라든지 왜곡이라든지 감독으로서 감내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역사적인 실화를 근거로 하다보니까 공부도 해야 했다. 상상력을 통한 추상화를 그리는 영화가 아니라 세밀하게 인물화를 그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인물의 상처와 눈 속의 열망과 이런 걸 실제화시켜서. 사료들을 통해서 인물에 시대정신을 입혀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했다. 저는 대학 못가고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했는데, 이렇게 공부했으면 좋은 대학 갔을 것 같다. 유난히 전투 장면이 많다보니 안전해야 하기도 하고 고민이 됐다.

그래도 유해진 배우가 있어서 시름이 있으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유해진 배우가 배우들도 웃기고 스태프도 웃기고, 웃기려고 하는 거 아는데도 웃긴다.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독립군의 우두머리처럼, 황해철처럼 동생을 이끌고 하는 모습 때문에 제가 짊어지고 가야 할 마음의 무게감이 줄었다. 유해진이 황해철이란 친구를 해줌으로서 많이 내려놨다. 상당히 고마웠다. 배우가 돼준 것도 고마웠고, 이 작품을 선택해준 것도 고마웠고, 독립군처럼 생긴 것도 고마웠고, 다 고마웠다."

▲ 영화 '봉오동 전투'의 원신연 감독. 제공|㈜쇼박스
-필사의 유인작전에 참여한 용사들이 주인공이지만 희생보다 투지가 강렬하게 드러난다. 독립군이 아니라 일본군으 피로 '대한독립만세'를 쓴다는 게 인상적이다.

"그 시대를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이야기하지 않거나 이야기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이 '봉오동 전투'라는 영화는 그런 부분을 최대한 배제하고 대의를 위해 나아가는 캐릭터들의 투지와 열망이 더 드러나게 하자는 게 계획이자 목표였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표현의 수위 하에서는 가감없이 표현해 보자고 계획했다. 소재가 소재이고 작전이 작전이다보니까, 그들의 피로 대한독립만세를 쓰는 의지를 보여주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게 모두 그들을 유인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자극하고 유인하고 자극하고 유인하고 이런 부분이다."

-로케이션도 눈에 띈다.

"실제 봉오동 가서 찍고 싶었고, 알아보기도 했다. 사드 등 때문에 어렵기도 했고 방문하더라도 위험했다. 진짜 이름 나오는 그 곳에서 실제 독립군이 가서 뛰는 모습을 가장 가깝게 보여주는 게 의무라고 생각했다. '두만강 장면은 두만강 가서 촬영하자'고도 했다.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헌팅을 많이 다녔다. 앞으로 할 헌팅은 다 한 것 같다. 독립군처럼 다녔다. 산악지역이라 다 다니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마지막 장면은 울주 천왕산인다. 사륜구동 차로 가도 몇 대는 평크가 나는 그런 길을 한시간 반을 올라 차를 세우고 50분을 또 걸어 올라가야 한다. 주차장까지 사람과 장비 옮기는 데만 6시간씩 걸렸다."

-후속 '청산리 전투'도 나올 수 있을까.

"열망한다.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청산리를 열망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캐스팅 과정에서 한 배우가 물었다. 왜 이런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는 걸까요. '저들이 반성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계속 왜곡하고 반성하지 않으니까'라고 했다. 이런 측면에서 '청산리 전투'라는 영화를 열망한다. 하지만 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이 현실들이 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사실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보여지는 것보다 그 시대 사신 그 분들을 더 깊이 헤아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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