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우리집' 포스터 및 스틸.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우리들'(2016)의 윤가은 감독이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사려깊게 포착해낸 아이들의 세계가 여전히 말갛고 생생하다. 그러나 그에 머물지 않는다. 아이들도, 영화도 더 당차고 씩씩해졌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날카로운 이야기들이 오간다. 토끼눈을 뜬 하나(김나연)가 안절부절한다. 엄마 아빠의 싸움이 또 시작됐다. 아이는 불길한 조짐을 간파한다. 직접 밥상을 차리고 식구들을 불러모아 보지만 여의치 않다. 너털너털, 여름방학 숙제 준비로 마트에 들른 하나는 늘 둘뿐인 유미(김시아)와 유진(주예림) 자매를 만난다. 먼 곳에서 도배일을 한다는 자매의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세 아이는 매일같이 함께 논다. 그러나 하나 부모님의 갈등은 더 격해지고, 유미·유진은 또 이사를 떠날 처지에 놓인다. 세 아이들은 소중한 우리집을 구하러 나선다.

▲ 영화 '우리집' 포스터 및 스틸.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2016년 데뷔작 '우리들'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했던 윤가은 감독이 다시 아이들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초등학교 소녀들에게도 관계 맺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포착했던 윤 감독은 이번엔 아이들이 바라본 '가족' 문제에 주목했다. 단 두번째 영화지만, 감독의 인장이 꾹 눌러놓은 듯 찍혀 있다. 눈부신 여름 햇살 아래 수채화처럼 채색된 화면에는 부모의 불화 속에 불안해하는 하나, 잦은 이사가 너무 싫은 유미의 이야기가 꾸밈없는 시선으로 담겼다. 

어린시절 구구절절 써놓은 일기장 속 고민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일까. 감독은 꽤 오랜시간 잊고 지냈던, 아이의 삶을 뒤흔든 고민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담아낸다. 디테일한 에피소드가 하나하나 실감난다. 김나연 김시아 주예림, 세 배우도 그 곳에 사는 아이들처럼 생동감 있다.

복잡하게 꼬인 '우리들' 소녀들의 관계야 애초에 부모들 관심사 밖이었겠으나, 세 소녀의 이번 고민은 부모로부터 비롯한 일일 텐데도 어른들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는 부모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그저 애처롭게 그리지도 않는다. 대신 아이를 가족의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민하는 주체로 표현한다. 아이들은 서로 고민을 나누고 연대하며, 나름의 방안을 고심해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부모의 갈등이나 집안의 경제적 문제가 뚝딱 풀릴 리 없다. 어른스러운 아이들조차 아이일 뿐이어서, 한숨나는 선택도 거듭된다. 하지만 영화는 뻔히 보이는 실패를 향해 애쓰는 순간조차도 기특하다는 듯 듬뿍 애정을 담아 아이들을 바라본다. 좌절하고 다투고 다시 화해하는 사이,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성장한다. 가족의 형태나 물리적 거리 너머에도 진짜 애정이 있음을 알아서 깨친다. 마지막 울림이 꽤 묵직하다. '우리집'이 '우리들' 이후의 성장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저마다의 문제로 고심하던 아이들이 길을 떠나는 중후반부, 극사실주의나 다름없던 영화는 로드무비를 거쳐 잠시 판타지로 변모한다. 다소 급작스럽지만 딱 거기까지다. 하룻밤의 일탈을 끝낸 아이들을 기다리는 건 "우리집은 왜 이럴까" 싶던 현실일 테니. 그 꿈결같은 시간을 두고 윤가은 감독은 "아이들에게 이 여정 끝에 선물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기억의 페이지에 고이 간직될 순간이 반짝반짝 빛나다 먹먹하게 남는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P.S. 감독의 전작 '우리들'을 본 관객들을 위한 선물같은 이스터에그는 덤이다.  

▲ 영화 '우리집' 포스터 및 스틸.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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