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윤가은(37) 감독이 돌아왔다. 소녀들의 관계맺기를 아이들의 시선에서 포착해 낸 데뷔작 '우리들' 이후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 뜨겁게 주목받았던 그녀가 3년 만에 다시 신작을 냈다.

새 영화 '우리집'(제작 ATO)은 여전히 아이들의 이야기다. 또래의 소녀들이 아니라 우연히 외로운 여름방학을 함께하게 된 세 아이가 주인공. 부모님의 불화로 불안해 하는 초등학교 5학년 하나(김나연)와 또 가야하는 이사가 지긋지긋한 유미(김시아), 그리고 세상 맑은 유미의 동생 유진(주예림)이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나선다. 그것이 설사 가족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달라진 가족을 받아들어야 한다 해도, 함께 손을 맞잡고 일어섰던 아이들은 그만큼 성장한다고 윤가은 감독은 가만가만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저 완성하는 게 목표였던 '우리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다음에 부담이 커졌지만, 윤가은 감독은 그저 차기작을 만드는 게 답이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새기며 묵묵히 작품을 완성해냈다. 알알이 박힌 유년의 기억을 꺼내어 사려깊게 다듬은 영화 '우리집'엔 고민과 성장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데뷔작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2번째 영화를 만들며 부담이 컸을 것이다.

"생각보다 부담이 되더라. '우리집'은 개봉을 목표로 하고 만든 영화도 아니었다. 결과가 저희의 예상을 뛰어넘어서 소화가 잘 안되기도 했다. 이런 반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나는 어떤 감독이 되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답이 안 나왔다. 선배 감독님들 조언을 듣고 빨리 만들어야겠다 했다. 그 다음부터는 만드는 데 집중하고 달렸다. '우리집'은 '우리들' 편집하던 2015년 말부터 혼자 개발하던 게 있었다. 가족 이야기이긴 한데 폭력과 학대에서 출발하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계속 발전시키다 보니 '가족'이란 테두리와 캐릭터가 남더라. 소재는 많이 바뀌었다."

-'우리들'과는 준비 과정이 달랐나.

"다른 고민들이 있었다. '우리들'은 이창동 선생님이 멘토셨다. 제자의 입장에서 선생님이 계시는 상태에서 배우면서 해야지 했다면, 이번엔 선생님 없이 혼자 잘 해야 하는 거다. 다행히 함께했던 영화사 ATO와 같이 했고, 같이 한 스태프를 멘토로 삼아 피드백을 받았다."

▲ 영화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생각이 많았을 2번째 영화다. 다시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다.

"'우리들'이 최근 5만명을 넘겼다. 제가 떼돈 번 줄 아는 사람도 계신데 전혀 아니다. 소정의 수익이 있긴 했지만 저 역시 개봉하고 나서도 아르바이트를 찾았고. 주위에서 '이제 상업영화 해야지' 하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고민을 안한 건 아니다. 아이들 나오는 영화 시나리오도 꽤 받았다. 하지만 규모나 이야기 자체도 제가 책임질 수 있어야겠더라. 이런저런 고민이 있고, 개발하던 게 있었지만 언젠가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다른 걸 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고, 다시 하고싶은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가 됐다. 빨리 하고 싶다는 생각도 영향을 미쳤고. 나름은 '우리들'도 '우리집'도 대중영화라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어른 아이가 같이 볼 수 있는 영화가 뭘까 생각한 것 같다. '우리들'에 비해선 제작비가 3배다. 영진위 예술영화제작지원 등 지원이 큰 몫을 해줬다."

-'우리들'에 이어 '우리집'에서도 어린 배우들의 연기가 두드러진다.

"가장 달라진 건 나이대. '우리들'은 5~6학년의 생활권도 비슷한 아이라면 이번엔 나이대가 전혀 다르니까. 나연이(하나 역)는 작년 실제 6학년, 시아(유미 역)는 4학년, 예림이(유진 역)는 1학년이었다. 같이 뭉쳐서 하는 이야기라 어떻게 조화롭게 이야기하면서 극을 만들어나갈까가 저의 고민이기도 했다. 저도 '어린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렸는데, 대학교 1학년과 4학년이 다르듯이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나. 제가 그걸 모르고 전전긍긍했다. 아이들은 그런 걱정조차 안했던 것 같다. 언니로서, 동생으로서 역할을 알아서 잘 하고 있다는 걸 리허설하고 한 달을 넘어 꺠달았다. 아이들이 자기가 이해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렉션을 준다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같이 만들어가는 느낌이 강했다. 조율하는 데 차이는 있다. 하나는 객관화가 잘되고 본인 연기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친구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 성인배우와 이야기하듯 했다. 유미는 '이럴 땐 어떨 것 같아 감정적인 이야기도 하면서 이럴 땐 어떻게 보게 될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유진는 아주 단순한 종류의 미션을 줬다. 이럴 땐 언니를 보고 이럴 땐 열심히 밥을 먹자. 그런 식으로.

-10대 초반의 이야기인데도 일기장이라도 뒤져서 찾은 듯 생생하고 섬세하다.

"가족 이야기는 일기장에도 안 썼던 것 같다. 기억 속에 알알이 박혀있다고 해야 하나. 아마 모두가 바꿀 수 없는 우리 가족 안에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을 때 느낀 감정을 조금씩 기억할 것이다. 저도 그런 게 많아서 오랫동안 가족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했다. 훨씬 더 저랑 연결된 이야기고 감정이고 사건들이라 지금까지 영화로 꺼내놓기가 무서웠던 이야기기도 하다. 그런 데서 한번 끄집어내다보니까 이것저것 생각이 났던 것 같다. 어제 일도 기억이 안 나는데 어렸을 적 이야기가 기억이 많이 난다. 성장문학, 성장 이야기를 좋아해 많이 읽었던 저의 취향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 주인공 선의 가족이 등장한다. '우리들'의 관객이 알아볼 수 있게 심은 이스터에그처럼 느껴졌다.

"저의 사심이다. 이스터에그로 봐주시면 좋겠다. 처음에 쓸 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도서관이 나왔으면 좋겠고, 찬이(안지호) 여자친구가 나왔으면 좋겠고, 이런 건 있었는데 하나하나 나오는 단역이 허투루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희 친구들이 생각났고, 그 역할로 나왔으면 좋겠다 했고, 그러다 가족까지 나왔다. '우리들' GV를 개봉한 뒤에도 종종 다녔는데. '이 아이들 어떻게 돼요?' 질문도 많이 받았다. 이렇게 잘 크고 있어요, 하고 보여드리고 싶었고 저도 보면서 안심하고 싶었다. 저도 영화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리집' 친구들도 '우리들' 친구처럼 잘 자란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이유가 있어보이지만 사실은 같이하고 싶었던 나의 팬심이다."

-봉준호 감독이 '우리들'에서 선의 엄마로 걸 보고 장혜진을 '기생충'에 캐스팅하지 않았나. 감독으로서 기뻤을것 같다.

"장난 아니었다. 난리가 났다. 심지어 칸 가서 상 받고 그랬을 땐 국경일 같았다. '우리 큰언니가~' 우리 영화처럼 기뻐했다. 뿌듯하기도 했다.너무나 좋은 배우님이시고 누군가는 당연히 알아봐 주실 거라고, 저만 그분의 위대함을 발견하지 않을 거라 생각도 했다. 이렇게 가까운 미래에 좋은 감독님과 좋은 영화를 하셔서 너무 뿌듯했다. 자랑도 많이 했다. 심지어 축하도 받았다.(웃음)"

-윤가은 감독의 '우리' 시리즈가 나오는 것 아닌가 기대도 해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해야하나.(웃음) 처음부터 시리즈로 가야지 하는 건 아니었다. 하면서 그런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취향이기도 하고 관심이기도 하다. 이 안에서 이룰 수 있는 가치를 찾고 성취를 얻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이것이 다음 작품이 아니더라도. 모든 다양한 것을 동시에 생각하고 있다. 또 물어보고 다녀야 한다. 주인공이 아이든 어른이든.

평소에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이기보다는 일상 안에 들어와 있는데 개인을 뒤집어놓은 사건에 관심이 많다. 세번째 작품은 또 다들 어떻게 하시는지 모르겠다. 만들수록 쉬워져야 하는 것 아닌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늘 새롭게 하는 느낌인데, 어떻게 예전의 실수를 반복하지않을까 고민한다."

▲ 영화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후반부엔 극사실주의가 판타지로 넘어가는 듯한 대목도 있다.

"제일 많이 고민했다. 팀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맞느냐, 간다면 어떻게 가느냐, 어떻게 표현하느냐. 이 시나리오가 어려웠던 게 친구들끼리 문제라면 그 안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부분이 있다. 가족 문제는 애들이 어떻게 해도 해결이 안 되는 거다. 하지만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쌓인 오해가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여정 끝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은데, 그것이 가족화합 같은 것일 수는 없고, 이 친구들에게 모멘트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어른들이 없는 상태에서 친구들만 온전히 1박을 했으면, 아무도 모르는 소중한 시간을 아이들끼리 나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따. 저의 바람이 들어간 대목이다. 팀 안에서도 판타지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때로는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나. 믿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정도의 현실 감각을 살려보면 좋겠다 하며 찍었다."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

"어렵다. 내일 문자로 드리면 안되나.(웃음) 진로에 대한 고민을 아직 하고 있다. 영화를 찍고 있는데 내가 감독이 될수 있나, 정말 감독인가 이런 질문을 계속 하게 된다.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다. 꾸준히 하는 게 너무 중요하구나. 지치지 않고. 그게 제일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창동 감독님에게도 여쭤봤다. 욕을 섞어 '나도 어려워, 그냥 하는거지' 하시더라. 어려움이 묻어나서 더이상 질문으 못했다. 그분도 어려우신면 나도 어려운 게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고."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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