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영화 '우리집'의 주예림, 김시아, 김나연.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존중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세요."

'우리들'에 이어 '우리집'을 선보인 윤가은(37) 감독의 현장에는 특별한 수칙이 있었다. 데뷔작에 이어 2번째 영화까지를 어린이 배우들과 함께한 윤가은 감독이 느끼고 깨달았던 점들을 제작사 ATO와 고민하며 정리한 것이다. 어린이 배우를 향한 존중과 배려가 가득한 9가지 수칙들은 '우리집' 시사회와 동시에 알려지며 잔잔한 감동을 안기고 있다. 

최근 스포티비뉴스와 만난 윤가은 감독은 그러나 "너무 부끄럽다. 회자가 좀 되는데 너무 미안하다"면서 "우리 배우들이 보면 '100% 안 지켜졌는데' 생각할 거다"며 난감해 했다."'우리들' 찍고 미안한 게 많았다. 저도 까먹고 이렇게 하려고 했는데 급할 때 막상 못지키고 했던 걸 문서화하면 누구라도 보고 체크하면 좋겠다 싶어 기록했다. 선언문처럼 보이지만 꼭 하고싶다는 약속, 다짐 같은 것이었다"는 게 윤 감독의 설명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향해 '예쁘다', '귀엽다'고 칭찬할 때조차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우리집'의 촬영수칙은 곱씹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빠듯한 현장에서 작품을 완성하기 바쁜 와중에도 어린 배우를 오롯이 배우로 대하겠다는 의지, 작품만큼 의미있는 현장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도 느껴진다. 얼마나 섬세하게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지도 알 수 있다. 

▲ 영화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윤가은 감독 조차도 칭찬조차 주의해야 한다는 수칙을 지키기가 가장 어렵단다. 윤 감독은 "절로 나올 때가 있다. 아이들을 북돋아주고 싶을 때도 있고. 너무 예쁘다 귀엽다가 미적인 가치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존재에 대한 감탄처럼 나오기도 한다"면서 "아이들이 받아들일 때는 늘 예쁘다고 하다가 오늘은 안 들으면 그게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아니면 '왜 자꾸 나한테 예쁘다고 하지' 고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배우라 외적으로 보여지는 역할을 계속 수행하지 않나. 성인한테 하며 안되는 말을 아이에게도 하면 안되는 구나 했어요."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촬영을 이어가던 어린이 배우들이 조금씩 의사를 표현할 때, 빠듯하게 진행되던 촬영을 잠시 멈춰야 할 때조차도 드디어 제 목소리를 낸 아이들이 너무 대견해 뿌듯했다는 윤 가은 감독. 그녀의 영화는 그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ATO가 만든 '우리집' 현장의 촬영수칙을 그대로 옮겨본다.

▲ 왼쪽부터 영화 '우리집' 현장의 배우 김나연, 윤가은 감독.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우리집' 촬영 수칙

: 어린이 배우들과 함께 하는 성인분들께 드리는 당부의 말

0.

'우리집'의 현장은 어린이와 성인이 서로를 믿고, 존중하고, 도와주고, 배려하는 것을 제1원칙으로 합니다. 어린이 배우들을 프로 배우로서 존중하며, 성인과 동등한 인격체이자 삶의 주체로서 바라봐주세요. 항상 어린이 배우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시고,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는 동료이자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세요.

1.

어린이 배우들과 신체 접촉을 할 때는 주의해주세요.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거나 손을 잡는 행위 등의 가벼운 접촉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혹시 진행상 필요한 부분들(의상과 헤어 정리, 와이어리스 마이크 착용 등)이 있을 때도 어린이 배우들 본인 혹은 보호자와 스태프에게 미리 공지하고 사전에 동의를 구해주시기를 꼭 부탁드립니다.

2.

어린이 배우들 앞에서는 전반적인 언어 사용과 행동을 신경 써주세요.

자신도 모르게 쓸 수 있는 욕설과 음담패설 등을 자제해주시는 것은 물론, 어린이들의 외모나 신체를 어른의 잣대로 평가하는 단어는 신경 써주시기 바랍니다. 못생겼다, 뚱뚱하다, 키가 작다, 같은 부정적인 표현들뿐만 아니라, 얼굴이 부었다, 뾰루지가 났다, 같은 묘사들조차 어린이 배우들에게는 큰 영향을 줍니다. 어린이들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고민하더라도, 괜찮다고,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좋다고 가볍게 넘겨주세요.

3.

어린이 배우들을 칭찬을 할 때는 외적인 부분보다는 배우로서의 태도와 집중력 등에 더욱 초점을 맞춰주세요. 예쁘다, 날씬하다, 말랐다, 귀엽다 같은 외모적 칭찬 시에도 어린이들이 집착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셔야 합니다. 또한 여러 배우들이 함께 있을 때에는 서로 비교되어 상처받지 않도록 모두 고루 칭찬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별과 연령대, 주조연의 위치와 상관없이 성실한 태도와 집중력, 건강한 생각 등을 칭찬해 자존감을 높여주세요.

4.

어린이 배우들이 촬영장에서(대기 시간과 셋업 시간 포함) 혼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어린이들의 경우 종종 프로 배우로 인식되지 않아 성인 스태프들이 되려 잡담을 유도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 본인들도 배우로서 촬영을 준비하고 집중해야 할 때를 놓쳐 산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런 때는 가볍게 주의를 주시고 정신을 흐트러뜨릴 수 있는 대화를 피해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5.

어린이 배우들이 하루 10시간 정도의 촬영 시간만큼은 오직 촬영 자체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대화를 나눌 시에도 자극적인 요소가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주세요. 촬영 중에는 보호자로서 옆에 가만히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배우들에게는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사담은 최대한 촬영장 밖에서 나눠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때에도 물론 대화 내용은 꼭 점검해주세요.

6.

어린이 배우들의 건강 문제에 늘 신경 써주세요. 무더운 여름이라 특히 어린이들의 체력과 건강이 염려됩니다. 아주 작은 문제라도 언제든 감독과 피디, 연출제작부, 혹은 보호자 등께 반드시 공유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어린이들이라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에 눈치를 많이 보고 큰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생리현상이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님을 알려주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더욱 신중하게 물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7.

어린이 배우들의 안전 문제를 각별히 신경 써주세요.

특히 외부 촬영이나 이동 시 정신없을 때 어린이 배우들이 스태프나 보호자 없이 홀로 남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어린이들이 혼자 있는 일이 없어야 하며, 항상 스태프나 보호자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 외부인들의 접근, 각 스태프들과의 사적인 관계 또한 각별히 신경 써주시기 바랍니다.

8.

어린이들은 항상 성인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매 순간 여러분의 모든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주 작은 말과 행동 하나까지도 어린이들에게 아주 훌륭하거나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멋진 거울이 되어주세요. 존중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세요.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