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현역 유니폼을 벗은 김재율을 10일 자신의 새 직장인 LBS아카데미에서 만났다. ⓒ삼성동, 고봉준 기자
[스포티비뉴스=삼성동, 고봉준 기자] 올해로 서른 둘이 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두 가지 이름을 떠올린다. 김남석 혹은 김재율. 지독한 부상 악령을 떨쳐내고자, 실타래처럼 엉킨 부진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이름까지 바꿔가며 힘찬 도약을 꿈꿨던 그가 프로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야구 인생을 그리고 있다.

최근 LG 트윈스에서 나와 유소년 야구 지도자로 변신한 김재율을 1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LBS아카데미에서 만났다. 선배 김성배(39) 대표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초중고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재율은 9년간 몸담았던 LG에서의 추억과 아쉬움을 먼저 떠올렸다.

“사실 은퇴 실감이 크게 나지는 않았었는데 함께 뛰던 동료들이 스프링캠프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미묘한 감정이 생겼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야구를 더 오래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LG 유니폼을 입는 동안 여러 감독님 밑에서 참 많은 기회를 받았다. 그러나 그 기회를 내가 살리지 못했다.”

▲ 김재율(왼쪽)과 김성배. ⓒ삼성동, 고봉준 기자
고려대 시절 주전 1루수로 활약했던 김재율은 2011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LG의 5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오른손 거포가 유난히 부족했던 LG로선 김재율에게 큰 기대감을 걸었다. 내야 한 자리는 물론 중심타선 한 축까지 맡아달라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2011년 퓨처스 올스타전에서 MVP를 수상하며 이름을 알린 김재율. 그러나 곧바로 찾아온 부상 악령이 김재율의 발목을 잡았다.

“퓨처스 올스타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2군 경기에서였다. 상대 타자와 1루에서 강하게 부딪혀 무릎 수술을 받았다. 결국, 이듬해 스프링캠프도 가지 못하게 됐다. 이제 막 출발하는 시점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부상이었다.”

결국, 김재율은 2012년 초 이름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22년간 불리던 ‘남석’이라는 이름을 과감하게 뒤로했다. 대신 잔부상을 털고 ‘스스로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의 ‘재율’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김재율은 “그래도 이름을 바꾼 뒤 전환점이 생겼다. 이듬해 5월 데뷔 후 첫 홈런을 때려냈는데 상대가 류현진 선배였다. 체인지업을 노리던 상황에서 슬라이더가 들어와 그대로 받아쳤는데 운 좋게 담장을 넘겼다.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짜릿한 순간이다”고 웃었다.

▲ LG 시절 김재율. ⓒ곽혜미 기자
그러나 이후 프로의 벽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스프링캠프마다 기대주로 꼽혔지만, 본 레이스로 들어가면 매번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다. 고비마다 찾아온 부상도 의지를 꺾곤 했다. 149경기 타율 0.253 73안타 7홈런 40타점. 김재율이 1군에서 남기고 간 최종 성적표다.

“방출 통보를 받은 날짜는 아직 생생하다. 지난해 10월 18일이었다. 이후 몇몇 팀에서 연락이 왔지만, 최종 입단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진로를 고민하던 찰나, 지인의 소개로 김성배 대표님을 알게 됐고 이곳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20년간 배트를 놓지 않았던 김재율은 마지막으로 자신을 응원해준 LG팬들을 향해 작별인사를 남겼다.

“그래도 데뷔부터 은퇴까지 LG 유니폼만을 입었다는 사실은 나 스스로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다만 LG에서 팬들의 기대를 성적으로 보답하지 못했다는 점은 너무나 죄송스럽다. 이 마음을 안고 이제는 나도 선수가 아닌 팬의 입장에서 LG를 응원하겠다.”

스포티비뉴스=삼성동, 고봉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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