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박현철 기자] “너무 부담은 갖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냥 편하게 생각하면서 보너스 게임처럼. 그렇게 뛰면 자연스럽게 우리도 좋은 결과를 얻을 거라고.”

시즌 초반 부상으로 주춤했을 뿐. 그의 2015년 후반기는 말하는 대로 되고 있다. 초보 마무리로 부담 가질 만한 데도 그는 빠르게 새 보직에 적응했고 소속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뒤 어느새 대표팀 '수호신'이 됐다. 부상과 뒤늦은 입대로 고개를 떨궜던 이현승(32, 두산 베어스). 그는 2015년 후반기 동료들과 함께 자신과 팀이 바라던 최고의 자리에서 마음껏 웃었다.

이현승은 올해 페넌트레이스에서 41경기 3승1패18세이브2홀드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하며 팀의 뒷문 불안을 해소했다. 그리고 막판 상승세를 이어 가며 포스트시즌 9경기 13이닝 1승1패4세이브 평균자책점 0.00으로 두산의 마무리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1일 한국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프리미어12에서는 선배 정대현(롯데)과 함께 대표팀 더블 스토퍼로서 한몫했다. 

올해 5선발로 캠프를 치렀으나 개막 직전 시범경기에서 왼손 중지 골절상을 입고 한동안 재활에 전념했던 이현승은 시즌 중반 1군에 합류한 뒤 마무리로 보직 이동했다. 초반에는 낯선 자리에서 블론세이브도 기록했으나 점차 영리한 수 싸움과 배짱, 안정된 제구력은 물론 시속 140km대 후반까지 포심 패스트볼 스피드가 올라가며 두산 뒷문도 튼튼하게 바뀌었다.

시간이 갈수록 마무리 이현승의 진가는 빛을 발했다. 친정팀 넥센과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2세이브 평균자책점 0.00으로 MVP가 된 데 이어 NC와 플레이오프,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도 모두 마무리로서 믿음직한 투구를 펼쳤다. 투수조 조장으로서 포스트시즌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우승해야겠다는 당위성보다 '보너스 게임이니 편하게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자'라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다”며 편한 형님 노릇을 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 돌입하자 이현승은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서 한국시리즈까지 왔잖아요. 끝까지 가자고 선후배 동료들과 달렸는데 여기서 미끄러져서 준우승하면 아까우니까. 시즌 동안 우리가 '어느 부분이 약하다, 어디가 단점이다, 두산이 강하지 않다'라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아니거든요. 특히 우리 팀은 분위기를 잘 타니까. 보세요. 마지막 경기에서 누가 이기는지." 동료들을 믿었던 이현승은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 마운드에서 자신을 이끈 양의지를 안고 마음껏 웃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까지 마친 여독이 풀리기 전 프리미어12 대표팀에 합류한 이현승은 어느새 대표팀 마무리로 자리 잡았다. 표본은 적을지 몰라도 5경기 2⅔이닝 동안 1세이브를 올리며 이현승은 세계 강호들에게 단 한 점도 주지 않았다. 누상에 주자가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공을 던지는 장면에 김인식 감독은 “마무리는 이현승이 할 테니까”라며 자연스럽게 믿음을 보였다.

대회 시작 전 “도쿄돔은 밟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웃은 이현승은 쿠바와 8강전을 마친 뒤 “도쿄 가니 우승도 해 봐야지요. 어차피 마지막 날까지 경기하니 기왕이면 결승에서 붙어야지”라며 가장 큰 목표를 바라봤다. 어차피 4강에 올랐으니 대회 최종일까지 일정이 있는 만큼 최고의 결과를 얻고 싶었다. 그가 '말하는 대로' 소속팀과 대표팀이 모두 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했다. 프리미어12 대표팀도 연이은 악재로 세계 주요 대회 대표팀 가운데 최약체라는 평까지 받았으나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한때 이현승은 4년 가까이 어깨를 움츠린 남자였다. 2009년 12월 말 '히어로즈 발 트레이드'로 많은 기대 속에 두산 유니폼을 입었으나 어깨-팔꿈치 부상으로 당장 기대치를 충족하는 데 실패했고 2011년 시즌 후 상무에 입대했다. 그때까지 이현승 트레이드는 '성공'으로 평가 받지 못했다. 상무 입대 전 회포를 풀며 "돌아오면 제가 2009년처럼 잘 던질 수 있을까요"라는 말로 좀처럼 웃지 못했던 이현승. 2013년에는 팔꿈치 수술까지 받으며 꽤 긴 터널 속에 있던 이현승. 그러나 이제는 '말하는 대로' 팀의 목표가 이뤄졌고 생각지도 못한 마무리 보직에서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이현승의 야구 성공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진] 이현승 ⓒ 한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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