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UFC 특별취재팀 이정수 기자] "안 자고 뭐해? 난 집에서 오늘 배운 주짓수 기술들 복습하고 있어."

지난해 말 즈음으로 기억한다. 별일 없이 안부를 물었고 답장이 왔다. 시간은 새벽 2시 30분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있지도 않았는데 그 시간에 기술 복습이라니? 그것은 열정일까, 강박관념일까, 혹 그냥 잠이 오지 않았던 걸까? 

"요즘 들어서야 니킥을 어떻게 차는 건지 조금 감이 오는 것 같아. 무에타이가 재미있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이건 지난 봄 UFC 필리핀 경기를 앞두고 나눈 대화 가운데 그의 얘기였다. 데뷔 후 줄곧 국내 경량급의 왕으로 군림해 온 선수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수줍고 겸손했다. 그가 이미 니킥으로 아시아 정상급 선수들의 다리를 휘청거리게 만든 적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더.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선수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 선수의 태도나 기질이 파악될 때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격투기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 남의철의 한마디 한마디는 존경심을 넘어서, 듣는 것만으로도 피로감이 들 정도로 강인하다. 본인에게 무서울 정도로 철저해서다. 훈련 스케줄에 관한 대화를 할 때는 그런 분위기가 더욱 두드러진다.

남의철은 정식 소속팀 없이 여러 곳의 체육관을 훈련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준비한다. 본인을 채찍질하고 이끌어 줄 헤드코치가 없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어지간한 선수라면 정신적으로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훈련을 건너뛰고 싶을 수 있고, 미트를 칠 때도 집중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가 본인의 헤드 코치가 된 남의철은 색색으로 인쇄한, 직접 짠 수험생의 시간표 같은 훈련 스케줄표를 따라 움직인다. 무에타이, 주짓수, 종합격투기, 요가, 체력 훈련, 4-5군데 체육관을 찾아 서울을 누빈다. 누구도 그의 훈련 스케줄을 관리하고 독려하지 않아도 그런다. 

어쩌면 10년 전 데뷔해서 ‘헝그리’ 할 때의 스케줄보다 더 자신을 극한으로 내모는 스케줄. 다만 지금은 차가 생겼기에, 지하철에서 땀 냄새 나는 가방에 쏟아지는 눈길을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덜어졌겠지만.

남의철은 제대한 후에 종합격투기를 수련하기 전까지 별다른 운동을 수련한 적이 없다. 그런 그가 데뷔 첫해 국내 최초의 종합 격투기 대회였던 KPW를 시작으로 최초의 프로 종합격투기 대회이자 메이저 대회였던 스피릿 MC, 그리고 아시아 종합 격투기의 맹주로 떠오른 로드FC를 석권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현재 UFC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 난 ‘기적’이라는 단어 말고는 이를 설명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이 1981년생의 과묵한 파이터가 이룬 기적의 원동력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한다면, 개인적으로 그의 강인한 정신보다 더 좋은 대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의 정신력이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질, 일찍이 한국 종합격투기 선수들에게 찾아볼 수 없었던 KO 능력과 결합되면서 만들어 낸 치열한 전투들은 한국 종합격투기의 결정적 장면들이다. 

남의철은 지금까지 경기장을 들썩대게 만드는 명 경기를 너무도 많이 만들어 왔고, 16전 전승 안방 불패로 국내에서 매우 강력했고, 너무도 꾸준하게 많은 것을 희생하며 치열하게 훈련하고 싸워 왔다. 

한국 격투계가 너무도 기다려 온 최초의 서울 UFC 대회, 10년 간 국내 종합격투기 경량급의 기둥으로 굳건히 지켜 온 그의 일전이 '코리안 불도저'의 위대한 커리어 가운데 또 하나의 역사적 승리가 되기를 기원하며 본인의 격투 인생에 결정적인 획을 긋기 위해 발을 내딛는 그에게 무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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