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고 2학년 좌완투수 한지웅이 2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서울고와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독특한 투구폼과 더불어 안정적인 구위를 뽐낸 한지웅은 우수선수상을 차지했다. ⓒ목동, 곽혜미 기자
-인천고 우승 이끈 2학년 좌완투수 한지웅
-초4 때 운명적인 계기로 왼손으로 공 던져
-“주키치와 같은 투구폼과 등번호, 모두 우연”

[스포티비뉴스=목동, 고봉준 기자] “저 친구 볼은 웬만하면 못 치겠다.”

제48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이 한창인 2일 목동구장. 인천고와 서울고의 경기 후반부를 지켜보던 프로 스카우트들은 한 선수를 바라보며 모두 이렇게 말했다. 주인공은 독특한 투구폼과 종잡을 수 없는 타이밍 그리고 안정적인 제구력을 고루 겸비한 인천고 2학년 좌완투수 한지웅(17)이었다.

한지웅은 이번 대회에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투구폼으로 이름을 알렸다. 오른발을 1루쪽으로 끝까지 끌고 간 뒤 왼팔을 뻗으며 공을 뿌리는 이색적인 동작. 2011년부터 2013년까지 LG 트윈스에서 뛰었던 벤자민 주키치(38)와 흡사한 투구폼이었다.

◆前 LG 주키치 떠올리게 하는 투구폼
독특한 동작으로 눈길을 끈 한지웅은 이번 봉황대기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투구폼만큼이나 인상적인 성적을 남겼다. 인천고가 치른 6경기를 모두 나와 평균자책점 1.93(14이닝 3실점)으로 호투했다. 특히 2일 열린 서울고와 결승전에선 3-2로 앞선 7회말 구원등판해 2.1이닝 동안 무안타 6삼진 무실점으로 자기 몫을 다했다.

인천고는 이날 선발투수로 나온 뒤 9회 다시 마운드를 밟은 윤태현의 6.2이닝 4안타 5삼진 2실점 역투와 한지웅의 호투를 앞세워 1905년 창단 후 처음으로 봉황대기 정상을 밟았다.

▲ 한지웅의 투구 장면. 공을 뿌리면서 오른발이 1루쪽으로 더 향해있음을 알 수 있다. ⓒSPOTV 중계화면 캡쳐
경기 후 만난 한지웅은 “고교 진학 후 첫 전국대회 우승이라 정말 기쁘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3학년 형들이랑 2학년 친구들 그리고 1학년 후배들과 함께해 더욱 감격스럽다”고 활짝 웃었다.

이어 “경기 마무리까지 하고 싶었는데 9회 들어 힘이 떨어져서 제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뒤이어 다시 등판한 (원)태현이를 끝까지 믿었다. 9회 1사 1·2루 위기를 멋진 투구와 수비로 막아준 태현이와 2루수 (노)명현이 형한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LG 시절의 벤자민 주키치. ⓒLG 트윈스
한지웅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야구공을 잡았다. 당시 SK 와이번스에서 활약하던 김광현(32)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그런데 오른손잡이였던 한지웅이 좌완투수로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조금 색달랐다.

한지웅은 “김광현 선배님처럼 멋진 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 글러브를 사기 위해 집 근처 대형마트로 갔는데 때마침 우완 글러브가 모두 팔려나간 뒤였다. 혼자 고민하다가 그냥 좌완 글러브를 구매하고는 무작정 왼손으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좌완투수가 됐다”고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렸다.

◆운명과 우연의 연속이었던 야구
이번 봉황대기에서 한지웅을 상대한 타자들은 모두 어려움을 겪었다. 스트라이드를 1루쪽으로 뻗는 동안 한 타이밍이 느려지는 데다가 왼팔마저 뒤에서 나오면서 타자들이 쉽게 타이밍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지웅은 “원래 투구폼은 이렇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 동계훈련에서 동작을 바꿨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시도를 하다가 현재 투구폼이 나와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전까지 주키치란 선수는 잘 몰랐는데 주위에서 주키치와 투구폼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영상을 접하게 됐다. 이후에는 주키치 영상을 보면서 부족한 점을 고쳐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인천고로 온 뒤 남은 등번호 중 무엇을 고를까 하다가 비어있는 54번을 택했다. 그런데 이 번호가 주키치의 LG 시절 등번호더라. 이 사실도 주키치 영상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좌완투수로 야구를 시작한 계기도, 주키치와 투구폼은 물론 등번호까지 같아진 계기도 모두 운명처럼 느껴진다”고 웃었다.

▲ 한지웅이 2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목동, 고봉준 기자
이번 대회에서 최고구속 139㎞의 직구와 120㎞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뽐내며 우수투수상을 수상한 한지웅은 앞으로도 지금의 투구폼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인천고 계기범 감독 역시 “몇몇 선수들이 구속 향상이나 제구력 보완을 위해 무리하게 투구폼을 바꾸려다가 실패를 맛본다. (한)지웅이는 현재 동작으로도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의도적으로 투구폼을 바꾸지 않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판 주키치’를 뛰어넘어 좌완 에이스를 꿈꾸는 한지웅은 끝으로 “결승전을 뛰면서 많은 점을 느꼈다. 일단 투구수가 많아질수록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더라. 올 동계훈련에서 이 부분을 보완하려고 한다. 또, 구속도 140㎞ 이상으로 늘려서 타자들이 내 공을 쉽게 치지 못하도록 하고 싶다. 물론 이 투구폼을 고칠 생각은 아직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스포티비뉴스=목동, 고봉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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