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원더우먼 1984'.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원더우먼'이 돌아왔다. 전쟁의 신이 휩쓴 제1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서 탄생했던 DC 첫 여성히어로의 2번째 무대는 66년이 흐른 1984년의 미국. 제목부터 '원더우먼 1984'으로 지어 시간적 배경을 분명히 했다. 왜 하필 1984년일까. 1984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1984년과 함께 먼저 떠오르는 것은 '원더우먼'보다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일 것이다. 1949년 출간된 이 소설에서 작가는 빅 브라더가 모든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전체주의 디스토피아로 1984년을 그렸다. 하지만 조지 오웰이 상상한 1984년은 오지 않았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84년의 미국은 보수와 레이건의 시대다. 경제적 풍요 속에서 핵무기 등 군비 경쟁이 한창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마이크가 켜진 지 모르고 러시아에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농담을 했던 일이 기사화돼 곤욕을 치렀지만, 71세 나이로 재선에 성공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해 제 23회 LA올림픽은 소련이 불참한 채 열렸다. 이란 이라크의 전쟁도 계속되고 있었고, 미국 역시 중동의 화약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 영화 '원더우먼 1984'.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하지만 기술과 문화는 융성했다. 1984년 슈퍼볼 광고부터 대박을 친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가 시판을 시작했고, 인간은 처음으로 연결선 없이 우주를 유영했다. 대중문화는 폭발했다.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 웨스 크레이븐의 '나이트메어'가 이 해에 첫 발을 디뎠다. '고스트 버스터즈'도 빼놓을 수 없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앨범 'Born in the U.S.A.'가 나왔고, 빌보드에선 스티비 원더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가, 마돈나의 'Like a Virgin'이 대박을 쳤다. '보헤미안 랩소디'에 담긴 자선 공연 '라이브 에이드'의 시발이 된 '밴드 에이드'가 이 해 출범했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되기도 했다.

▲ 영화 '원더우먼 1984'.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원더우먼 1984'의 패티 젠킨스 감독은 '왜 1984년이었냐'는 질문에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각자의 시대정신이 있고 이를 대표하는 해가 있다. 1984년은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잘 보여주는 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전편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서 캐릭터의 다른 면을 표현하고 싶었다"면서 "어두운 시대 대신 풍요롭고 밝은 시대와 작용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 했다. 시대상을 잘 구현하며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감독의 야심은 '원더우먼' 곳곳에 그대로 담겨 있다. 보다 나은 삶을 꿈꾸던 사람들의 낙천적 분위기는 그 시절 알록달록한 원색의 거리와 의상에도 고스란히 옮겨가 있다. 전쟁의 포와 탓에 잿빛이었던 '원더우먼' 1편과는 색감부터 딴판이다. 시대의 불안 역시 이야기에 중요하게 활용됐다. 감독은 여기에 더해 백악관까지 쳐들어간 허풍선이 사업가 빌런 맥스 로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은유하기도 한다.

게다가 '레트로'가 어딜 가나 유행이다. 올해는 흥미롭게도 '원더우먼 1984' 외에도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9가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1984'를 선언해 1984년을 주목하게 했다. 휴대전화도, 삐삐도 없던 1984년은 아날로그 감성을 담는 데도 딱이다. 1975년생 신원호 PD가 '응답하라' 시리즈로 1997년과 1994년에 이어 1988년을 추억했듯, 1971년생 패티 젠킨스 감독 역시 13살이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향수를 담은 게 아닐까.

▲ 영화 '원더우먼 1984'.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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