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베어스 고영민 작전 코치 ⓒ 스포티비뉴스DB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주루 플레이를 할 때 선수들이 보고 판단해 플레이하라고 강조해요. 홈에 들어갈 때만 나를 믿고 뛰라고 했어요."

고영민 두산 베어스 작전 코치의 말이다. 고 코치는 선수 시절 빼어난 주루 센스와 과감한 시도로 주목을 받았다. 야구팬들은 뻔하지 않은 고 코치의 주루 플레이를 '변태 주루'라고 칭했다. 그리고 지금,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후배들이 한 베이스 더 뛰는 야구를 하며 고 코치의 현역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안권수와 조수행이 23일 잠실 NC 다이노스전에서 보여준 주루 플레이가 그랬다. 안권수는 2-0으로 앞선 7회말 1사 2루 김재환 타석 때 2루주자였다. NC 2루수가 우익수 앞까지 빠진 상황에서 김재환이 2루수 땅볼을 때렸고, 안권수는 뒤도 보지 않고 홈까지 뛰었다. 정석대로면 홈까지 쇄도하는 것은 무리수였다. 실제로 2루수→1루수→포수까지 빠르게 중계 플레이가 이뤄져 타이밍 상으로 아웃이었다. 안권수가 홈으로 슬라이딩할 때 양의지의 미트를 피해 왼손을 빼면서 오른손으로 홈플레이트를 터치하는 재치를 발휘하지 않았다면 득점으로 연결될 수 없었다. 덕분에 두산은 3-0으로 달아나며 NC를 흔들 수 있었다. 

고 코치는 "감독님 사인이 나온 상황은 아니었고, 무리수라고 생각하고 돌렸다. 죽고 살고는 일단 지난 다음에 나오는 결과니까. (안)권수가 달리기도 빠르고, (김)재환이가 땅볼을 치면 홈까지 돌릴 수 있다고 제스처로 미리 알려줬다. 스타트를 빨리해서 홈까지 갈 수 있게 하라고 미리 준비해서 실행할 수 있었다. 권수가 천천히 뛰었으면 그렇게 돌리지 못했을 것이다. 선수가 열심히 뛰어준 덕분에 과감히 돌려도 되겠다는 확신이 있어서 돌렸다"고 이야기했다. 

▲ 2루에서 홈까지 뛴 안권수 ⓒ 두산 베어스
조수행은 3-0으로 앞선 8회말 선두타자로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다음 타자 김재호는 희생번트를 시도했고, 조수행은 별안간 2루를 지나 3루까지 뛰었다. 상대 투수 류진욱은 조수행이 당연히 2루까지만 가겠거니 생각한 듯 천천히 1루로 공을 던졌다. 1루수 이원재가 빨리 3루로 송구했으나 조수행이 이미 3루를 터치한 뒤였다. 이후 8번타자 박계범과 9번타자 장승현의 연속 적시타가 나오면서 두산은 5-1로 승리할 수 있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고영민, 김주찬 코치가 둘이서 뭐를 많이 하더라. (조)수행이는 (김)재호한테 번트 사인을 냈는데, 고 코치한테 도루 가능하냐고 물어봤더니 재호한테 뭐라고 수군수군 하더라. 작전보다는 도루시켜놓고 그러려고 한 건데, 고 코치가 한술 더 떠서 대놓고 3루까지 가게 하더라"고 답하며 웃었다. 

고 코치는 "수행이는 준비한 플레이였다. 늘 감독님 사인을 받고 작전이 이뤄진다. 작전이 안 나왔으면 정직하게 한 베이스만 했을 텐데, 그 상황은 빨리 추가점을 내기 위해서 과감하게 했다. 그래도 좋은 결과 있어서, 죽었으면 이런 인터뷰도 못 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사실 두산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동안 발야구가 눈에 띄진 않았다. 뛰는 야구보다는 김재환, 박건우, 오재일(삼성), 최주환(SSG), 양의지(NC), 민병헌(롯데) 등 강타자들의 무게감이 더 돋보였다.

하지만 강타자들이 최근 하나둘 FA로 팀을 떠나면서 발야구의 부활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김 감독은 오재일과 최주환이 이탈한 뒤 "올해는 더 작전이 많아질 것"이라고 일찍이 예고했다.   

김 감독은 작전과 주루를 전담할 고 코치와 김 코치에게도 "우리 타선의 폭발력이 예전 같지 않으니까. 예전보다 작전 상황이 많을 테니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해둬라"라고 전달했다. 

▲ 1루에서 3루까지 뛴 조수행 ⓒ 두산 베어스
고 코치는 "거포가 많이 없으니까 감독님께서 한 베이스 더 갈 수 있는 베이스러닝을 생각하셨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김주찬 코치에게는 우리 팀에서 달리기 빠른 주자와 느린 주자가 누군지 등 지난해까지 1루 주루 코치를 하면서 쌓은 경험을 이야기했다. 김주찬 코치는 선수 때 투수들 보면서 도루했던 노하우를 공유해줘서 이야기를 계속 나눈다. 도루는 김주찬 코치가 알아서 잘해주셔서 나는 감독님 사인만 잘 전달하려 한다"고 이야기했다. 

모든 작전 상황은 김 감독의 사인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고 코치는 "1루에 있을 때 감독님의 야구를 많이 배웠다. 감독님 성향과 야구 스타일을 1루에서 많이 느껴서 3루에서 실행하는 게 편한 것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작전을 잘 실행해준 선수들에게도 공을 돌렸다. 고 코치는 "내 플레이를 선수들에게 전수했다는 의견은 조금 오해일 수 있다. 선수들이 준비가 안 되면 갑작스럽게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아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할 것을 대비하고 준비하자고 선수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또 선수들이 상황을 보고 판단하면서 플레이를 하라고 강조한다. 홈에 들어갈 때만 나를 믿고 뛰라고 했다. 1루에서 3루 가는 것, 타석에서 치고 2루 또는 3루까지 뛰는 것 다 선수들이 보고 뛰는 게 빠르고 정확하다. 다 선수들이 잘한 것"이라고 했다. 

두산은 이제 18경기를 뛰었다. 시즌을 완주하려면 아직 126경기를 더 뛰어야 한다. 고 코치는 "선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너무 뛰면 부상이 있을 수 있다. 몸 관리를 철저히 잘해서 끝까지 144경기 안 아프게 안 다치게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마음을 표현했다.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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