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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진단②] '병역특례 폐지' 외치는 정치권…'여론몰이'에 가려진 선수들의 현실

작성일: 2026.10.08 16:53 정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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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 숫자만으로 한국 스포츠의 현재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의 국가주도형 선수 육성 시스템과 일본의 탄탄한 스포츠 저변이 경쟁력을 입증했다. 반면 한국은 학교체육의 위축과 선수 육성 기반의 약화, 변화하는 선수들의 특성에 맞는 지도자 육성 체계의 필요성, 부처별로 나뉜 스포츠 정책의 조정과 실행 등 여러 과제를 확인했다. 스포티비뉴스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국 체육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다각도로 진단하고, 국민의 체육활동 확대와 안정적인 선수 육성 기반 구축을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정형근 기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고 병역 부담을 덜었다며 기뻐한 선수들이 있다. 반면 세계 정상급 기량을 갖추고도 군 복무 때문에 선수생활을 중단하거나 은퇴를 고민하는 국가대표 선수들도 있다.

같은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병역 문제 앞에서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불거진 병역특례 논란이 제도 폐지 논의로 확대되고 있다. 일부 선수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병역 형평성에 대한 비판이 커졌고, 국방부는 예술·체육요원을 포함한 보충역 제도의 단계적 감축과 궁극적인 폐지 방향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제도를 없애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병역의 공정성을 확보하면서도 선수들의 경력 단절을 막고, 국가대표의 전문성을 국민에게 돌려줄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병역특례 논란, 폐지론으로 번지다

논란은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대표팀의 우승 직후 시작됐다.

한국은 일본을 꺾고 아시안게임 4연패를 달성했지만 일부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강조하는 발언을 하거나 전역모를 착용한 사진을 공개하면서 비판을 받았다.

국가대표의 성취를 개인의 병역상 이익과 연결해 표현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병역의무를 이행한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가볍게 볼 수 없다.

논란은 국회 국정감사로 이어졌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7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병역특례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궁극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목표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현행 체육요원 제도는 올림픽 3위 이상 또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에게 편입 자격을 부여한다. 흔히 '군 면제'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34개월간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며 544시간의 특기활용 공익복무 등을 이행해야 한다.

제도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병역 혜택 대상자로 집계된 43명 가운데 축구와 야구 선수가 36명이라는 수치가 국회에서 제시됐다. 다만 최종 편입 인원과 종목별 대상자 수는 확인이 필요하다.

반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선수라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정해진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편입 대상에서 제외된다.

현행 제도의 기준이 모든 종목의 국제경쟁력을 공정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선수의 전성기와 겹치는 군 복무

병역특례는 단순히 메달 획득에 대한 보상만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선수들이 경기력을 유지하면서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수행해 왔다.

운동선수에게 20대는 신체적 능력과 기술, 경험이 결합하면서 기량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시기다. 남자 선수들의 경우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시기와 겹칠 수 있다.

종목별 특성도 다르다. 체조와 레슬링, 유도처럼 신체적 능력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종목과 사격, 양궁처럼 기술과 감각, 경험의 비중이 큰 종목은 전성기와 선수생활의 지속 기간이 다를 수 있다.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선수에게 훈련 공백은 세계랭킹과 국제대회 출전권, 소속팀 계약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해외 프로리그에서 뛰는 선수는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국내로 복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물론 군 복무를 마친 뒤 정상급 기량을 되찾는 선수들도 있다. 그러나 국가가 오랜 기간 예산과 전문인력을 투입해 육성한 선수가 병역 문제로 선수생활을 중단한다면 선수 개인은 물론 한국 스포츠에도 손실이 될 수 있다.

학교 운동부가 위축되고 선수 육성 기반이 약화하는 상황에서 정상급 선수들의 경력까지 단절된다면 한국 스포츠의 인적 기반은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선수 한 명이 국제무대에 오르기까지는 학교와 종목단체, 지도자, 국가의 오랜 지원이 투입된다. 병역제도 개편이 선수 개인에 대한 혜택 문제를 넘어 국가 스포츠 육성 정책과 함께 논의돼야 하는 이유다.

◆하계 322명, 동계 4명…같은 국가대표의 다른 현실

이러한 문제는 동계종목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동계올림픽종목협의체가 밝힌 국군체육부대 운영 현황에 따르면 하계종목은 24개 종목에서 약 322명의 선수가 군 복무와 선수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반면 동계종목은 1개 종목 4명에 불과하다.

국군체육부대는 병역특례 대상이 아닌 선수들에게 군 복무 중에도 훈련과 대회 출전을 이어갈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종목에 따라 격차가 크다.

스켈레톤 국가대표 정승기는 지난 3월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선수단 격려 오찬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동계종목 선수들의 군 복무 문제를 직접 건의했다. 이 대통령은 관계 부처에 동계종목 선수들도 군 복무 중 훈련을 이어갈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동계종목 경기단체들이 협의에 나섰다.

동계올림픽종목협의체는 "지난 8월 국방부로부터 동계종목 선수 22명의 정원을 확보했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이후 종목별 배정안과 입영 대상자 명단, 국제대회 실적, 2027년도 훈련계획까지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9월 말까지 모집공고와 선발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협의체는 "당초 추진되던 22명 규모의 편성이 국방부 내부 행정 처리 과정의 문제로 다시 불투명해진 것으로 알려졌다"며 "22명 규모를 전제로 종목별 배정과 훈련계획까지 마친 뒤 다시 백지화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군 복무를 앞둔 선수들의 어려움도 호소했다. 협의체는 "일부 선수들은 더 이상 입영을 미루지 못하고 이미 일반 군 복무를 선택했다"며 "세계 최고 수준급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체육부대 나이 제한으로 올해 모집이 안됐을 경우, 군입대와 함께 선수생활을 사실상 지속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 선수는 국군체육부대의 선발 연령 제한으로 올해 모집이 무산되면 다시 지원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협의체의 설명이다.

동계종목은 월드컵과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 출전권 확보 과정이 여러 시즌에 걸쳐 이어진다. 선발 일정의 지연이 단순히 몇 개월의 문제가 아니라 2030년 동계올림픽 도전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협의체는 "동계종목 선수들이 요구하는 것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병역면제가 아니다. 군 복무를 성실히 수행하면서도 국가대표 선수로서 훈련과 국제대회 출전을 이어갈 기회를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론에 편승한 폐지론보다 공정한 제도 개선이 먼저

병역의 형평성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다. 현행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선수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악화된 여론에 편승해 제도 폐지부터 거론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선수 개인의 언행과 국가 스포츠 정책의 필요성은 구분해야 한다. 일부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제도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정감사에서 경력 단절을 방지하기 위한 복무형 대안이 함께 제시된 것은 의미가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기존 제도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더라도 선수들이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복무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도 편입 기준 개선과 국군체육부대 활성화 방안이 논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조계원 의원은 특정 종목에 혜택이 집중되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국제대회에서 거둔 누적 성과를 반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예술·체육요원 제도가 선수들의 기량 유지와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관계부처와 협의해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국회에서 국군체육부대 활성화가 대안으로 거론되는 동안 정작 동계종목 선수들은 국군체육부대 편성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새로운 제도를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추진 중인 선수 경력 보호 대책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종목별 특성을 반영한 공정한 편입 기준이 필요하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성적을 기본으로 하되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아선수권대회 등의 성적을 누적해 평가하는 포인트제도 검토할 수 있다. 다만 대회마다 권위와 경쟁 수준이 다르므로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국군체육부대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안도 중요하다. 군 복무와 선수생활을 병행할 기회를 동계종목과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한 종목으로 넓힌다면 병역의무와 경력 보호를 함께 고려할 수 있다.

체육요원의 공익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도 나왔다. 강호석 국가대표지도자협의회 전 회장은 병역특례 제도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스포츠 복지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전 회장은 "국방의 중요성과 병역의 공정성은 존중해야 한다. 그 위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의 전문성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에게 더 큰 기여가 되는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대안으로 가칭 '예술·체육 공익복무단' 신설을 제안했다. 개별적으로 봉사 시간을 채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교와 지역 복지기관을 연결해 정기적인 스포츠 교실을 운영하는 조직이다.

강 전 회장은 "가정 형편이나 지역 여건 때문에 운동을 배우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국가대표 선수의 전문성이 닿을 수 있었으면 한다"며 "아이들이 운동의 즐거움을 배우고,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선수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름만 바꿔서는 안 된다. 정해진 복무 일정과 교육 프로그램, 전문적인 지도 준비, 현장 관리와 성과 확인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며 실질적인 운영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사회에 환원하고 국민이 그 효과를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면 병역특례 제도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체육계 역시 국가대표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병역특례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 뒤따르는 제도라는 인식을 확립해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도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폐지를 거론하기보다 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실행 가능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역특례의 기준이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다면 고쳐야 한다. 그러나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과 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국 체육에 필요한 것은 여론에 편승한 성급한 폐지론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병역특례 제도로 발전시키고 선수들이 병역의무를 이행하면서도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책임 있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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