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육진단④] “요즘 선수 통제 어렵다”…달라진 선수, 지도자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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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 숫자만으로 한국 스포츠의 현재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의 국가주도형 선수 육성 시스템과 일본의 탄탄한 스포츠 저변이 경쟁력을 입증했다. 반면 한국은 학교체육의 위축과 선수 육성 기반의 약화, 변화하는 선수들의 특성에 맞는 지도자 육성 체계의 필요성, 부처별로 나뉜 스포츠 정책의 조정과 실행 등 여러 과제를 확인했다. 스포티비뉴스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국 체육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다각도로 진단하고, 국민의 체육활동 확대와 안정적인 선수 육성 기반 구축을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정형근 기자] “밀라노에서 가장 뼈아프게 생각한 게 체력이었다. 우리 선수들이 안타깝게 체력적인 부분이 부족하다.”
지난 2월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을 치른 뒤 김택수 국가대표선수촌장이 한국 선수단을 돌아보며 꺼낸 말이다.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결국 충분한 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김 촌장의 진단이었다. 그는 “국가대표들이 세계 무대에서 금메달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할 때는 훈련밖에 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과거의 훈련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는 아니었다. 김 촌장은 선수와 지도자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선수에게 훈련을 일방적으로 지시하기보다 왜 이 훈련이 필요한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밀라노 현장에서 시작된 고민은 분명했다. 체력은 더 끌어올려야 하고 훈련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도자가 정한 프로그램을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선수에게 밀어붙이는 과거 방식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필요한 훈련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선수가 스스로 몰입하도록 만들 것인지까지 지도자의 능력이 됐다.
7개월 뒤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취재하면서는 ‘얼마나 훈련할 것인가’만큼 ‘달라진 선수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이끌 것인가’라는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현재 국가대표와 실업팀, 대학팀의 중심에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선수들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장에서는 젊은 선수들을 흔히 ‘MZ세대 선수’라고 부르며 이전 세대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의 몸 상태와 훈련 방식, 경기 출전과 역할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지도자의 지시에도 이유와 설명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요즘 선수들은 통제가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단순히 선수들이 자신의 의견을 많이 표현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훈련 강도와 방식, 출전 여부, 선수단 운영을 놓고 지도자의 판단과 선수의 생각이 충돌했을 때 과거처럼 지도자의 지시만으로 선수단을 움직이기 어려워졌다는 고민이 담겨 있다.
지도자들이 느끼는 어려움도 현실이다. 선수의 자율성이 중요해졌다고 해도 국가대표팀에는 함께 지켜야 할 원칙과 규율이 있다.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훈련을 요구하고 선수단 전체를 하나의 목표로 이끄는 것도 지도자의 책임이다. 선수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과 지도자가 정당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법을 다시 과거의 ‘통제’에서 찾을 수도 없다. 지도자의 지시가 곧 규칙이 되고 선수가 무조건 따라야 했던 시절에는 강압적인 훈련과 폭력, 선수의 선택권 침해라는 부작용도 있었다. 선수 인권과 자율성의 확대는 한국 스포츠가 오랜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변화다. 필요한 훈련은 분명하게 요구하되 왜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선수의 의견을 들으면서도 팀이 지켜야 할 기준은 세울 수 있는 새로운 지도력이 필요한 이유다.
나고야 현장에서는 선수와 지도자의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현실도 확인됐다. 국가대표라고 해서 모든 선수가 아시안게임 하나만 바라보고 한 시즌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선수는 시도체육회와 실업팀, 대학 등에 소속돼 있다. 국제대회에서는 태극마크를 달지만 일상적인 훈련과 선수생활의 기반은 소속팀에 있다.
이번에는 아시안게임이 끝난 같은 달 전국체전까지 예정돼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는 현실적으로 아시안게임 메달권과 거리가 있는 일부 선수들이 이후 전국체전까지 고려해 몸 상태와 부상 위험을 관리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를 단순히 국가대표 의식의 부족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선수에게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책임이 있는 동시에 자신에게 급여와 훈련 환경을 제공하는 소속팀 선수라는 현실도 있다. 전국체전 성적은 시도와 소속팀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고 선수 개인의 입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대표팀 지도자로서는 아시안게임에서 선수의 경기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반면 선수에게는 대회 직후 소속팀의 중요한 일정이 기다린다. 선수의 몸 상태와 소속팀의 이해관계, 대표팀의 목표가 한꺼번에 맞물린다. 선수와 지도자의 관계가 어려워진 이유를 단순한 세대 차이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도자의 역할은 그만큼 복잡해졌다. 선수에게 단순히 ‘더 하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체력과 부상 위험을 살피고 훈련량과 회복을 조절하는 동시에 심리와 동기, 소속팀과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한다. 기술과 전술을 잘 가르치는 것을 넘어 왜 이 훈련이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갈등을 관리하며 신뢰를 만드는 능력까지 지도자의 전문성이 됐다.
문제는 이런 지도자를 어떻게 키울 것이냐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에서 좋은 지도자를 판단하는 가장 선명한 기준은 오랫동안 성적이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어떤 색깔의 메달을 땄는지, 전국체전에서 몇 위를 했는지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지도자의 능력을 가장 쉽게 보여주는 지표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메달과 순위만으로는 선수를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어떤 훈련을 설계했는지, 선수와 어떤 관계를 만들었는지를 모두 알기 어렵다. 특히 선수의 자율성이 커진 시대에는 ‘선수를 얼마나 강하게 통제하는가’보다 서로 다른 선수들을 하나의 목표로 이끄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에 지도자 교육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체육지도자 자격제도가 있고 종목단체별 연수와 각종 교육도 진행된다. 선수 인권과 스포츠윤리 교육도 강화됐다. 그러나 자격을 취득하고 교육을 이수한 뒤 지도자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국가대표 지도자를 선임할 때는 경력과 자격, 서류와 면접을 살핀다. 하지만 선임된 뒤 실제 훈련 현장에서 자신의 코칭을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선수와 심각한 갈등이 생기거나 문제가 발생한 뒤 조사하고 책임을 묻는 것만큼 문제가 생기기 전에 지도자가 더 좋은 코치로 성장하도록 돕는 시스템도 중요하다.
밀라노와 나고야에서 확인한 문제도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충분한 훈련은 해야 하지만 과거처럼 강압적으로 시킬 수는 없다. 선수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지만 대표팀이 지켜야 할 원칙까지 포기할 수도 없다. 여기에 부상과 회복, 심리와 동기, 소속팀과 대표팀의 이해관계까지 관리해야 한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이렇게 달라졌는데, 정작 그 지도자를 키우는 방식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여기서 주목할 만한 개념이 ‘Coach Developer(코치 디벨로퍼·코치 성장 지원 전문가)’다.
영국 버밍엄대에서 스포츠교육학을 연구하는 김윤진 교수는 “코치 디벨로퍼는 아주 쉽게 얘기하면 ‘코치들의 코치’”라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정의는 ‘코치의 학습과 성장을 지원하는 전문가’”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지도자 교육과정을 만들거나 강의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코칭 현장에 들어가 지도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피드백하며, 지도자가 자신의 코칭을 돌아보고 개선하도록 돕는 역할까지 포함한다. 교육과정 설계와 평가, 멘토링, 현장 지원 등 지도자의 성장 과정 전반을 돕는 전문 조력자에 가깝다.
선배 지도자가 후배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하는 것과도 차이가 있다. 김 교수는 “선배 코치가 비공식적으로 건네는 단발성 조언이나 경험담은 전문적인 코치 디벨로퍼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일정 기간 지도자의 현장을 지켜보고 대화를 이어가면서 지도자가 스스로 자신의 코칭을 성찰하고 변화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김 교수는 이를 한국 초중등 교육 현장의 ‘수석교사’에 빗댔다. 수석교사가 동료 교사의 수업을 살펴보고 신규·저경력 교사의 현장 적응과 수업 개선을 돕듯 코치 디벨로퍼 역시 스포츠 현장에서 지도자를 직접 지원하고 지속적인 성장과 학습을 돕는 역할을 한다.
실제 지원 방식도 일회성 강의와는 다르다. 김 교수가 사례로 든 잉글랜드 수영협회의 1년 과정 ‘수영 코치 멘토링 프로그램’에서는 참가 지도자가 자신의 코칭 현장을 직접 관찰받고 멘토의 코칭을 참관하거나 함께 지도한다. 일대일 개인 멘토링과 소그룹 논의도 병행한다. 자신의 코칭 방식을 논의하고 새로운 접근을 현장에 적용한 뒤 중간·최종 점검을 거치는 방식이다.
좋은 선수 지도자가 곧 좋은 코치 디벨로퍼가 되는 것도 아니다.
김 교수는 “선수 지도 경험이나 코칭 경력이 풍부하다고 해서 자동으로 훌륭한 코치 디벨로퍼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코칭 경력과 경험은 ‘선수를 가르치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지만 코치 디벨로퍼에게는 성인 학습자인 코치가 스스로 배우고 변화하도록 돕는, 이와는 다른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스포츠 자체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코치가 어떻게 배우는지에 대한 교육학적 이해, 대인관계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역량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영국에서는 이런 역할이 실제 지도자 육성 시스템 안에서 활용되고 있다. 모든 종목의 지도자 교육과 자격을 하나의 국가 공통 과정으로 묶기보다 종목단체가 주도하고 UK Sport(영국 엘리트 스포츠 전담기구)와 UK Coaching(영국 코치 교육 및 연수 지원기관), 대학과 프로 구단 등이 역할과 대상에 따라 지원하는 구조다.
잉글랜드축구협회는 리즈 베켓대와 코치 디벨로퍼 육성을 위한 대학원 디플로마 과정을 운영한 바 있고, UK Sport도 엘리트 스포츠 현장에서 코치 디벨로퍼의 역량 개발을 지원해왔다. 수영과 조정, 사이클 등에서는 일대일 멘토링과 현장 관찰·피드백, 소규모 워크숍 등을 연결한 종목별 지도자 육성 프로그램에 코치 디벨로퍼가 활용된다.
한국에 코치 디벨로퍼라는 이름의 제도를 그대로 가져온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출발점으로 제도보다 철학을 강조했다.
그는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조건이라면 우선 ‘좋은 코치란 무엇’이고 ‘어떻게 좋은 코치로 성장해 나가는가’에 대한 철학의 확립이라고 생각한다”며 “공통의 전제와 목표가 서 있어야 정렬된 제도를 설계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도자의 경력 단계에 따라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는지 구체적인 성장 경로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처음 지도자가 된 사람과 국가대표를 이끄는 베테랑 지도자에게 똑같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각 단계에서 필요한 역할과 능력을 정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코치 디벨로퍼라는 직함은 낯설지만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이미 한국 스포츠 현장에도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자신의 코칭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선하면서 경험과 방법을 동료 지도자들과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전문적인 교육과 역할을 부여하고 체계적인 지도자 육성 시스템 안에서 활동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코치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교육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고, 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도 제도적으로 충분히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대표 선수에게는 감독과 코치뿐 아니라 체력과 의무, 스포츠과학, 영상분석, 심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붙는다. 선수의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세밀한 지원체계를 만든다. 그렇다면 선수와 가장 밀접하게 호흡하며 이들을 이끄는 지도자의 성장은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지도자의 업무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더 훈련시켜야 하지만 무조건 몰아붙여서는 안 되고, 선수의 의견을 들어야 하지만 대표팀의 원칙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체력과 부상, 심리와 동기, 소통까지 책임의 범위도 넓어졌다.
그 역량을 지도자 개인의 경험과 연륜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선수에게 코치가 필요하다면 코치에게도 코치가 필요하다. 좋은 선수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 것처럼 좋은 지도자도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수를 장기간 육성하듯 지도자 역시 현장에서 배우고 자신의 코칭을 점검하며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선수가 달라진 시대다. ‘통제가 안 된다’고 선수의 변화만 탓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선수가 달라졌다면 지도자도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달라진 지도자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밀라노와 나고야 두 현장에서 확인한 한국 스포츠의 또 하나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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