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흔 ⓒ 잠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홍포' 홍성흔(41)이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홍성흔은 3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시즌 3차전을 앞두고 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미국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산하 루키 팀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있는 홍성흔은 은퇴식에 참석하기 위해 28일 귀국했다.

두산과 롯데 팬들 앞에서 은퇴식을 치를 기회를 얻었다. 두산은 프로 생활 시작과 끝을 함께한 팀이고, 롯데에서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뛰면서 지명타자로 전성기를 보냈다.

홍성흔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1999년 프로에 데뷔했다. 2004년 최다 안타 1위(165개), 타율 3위(0.329)를 시작으로 2008년부터 3년 동안 타율 부문 2위에 올랐다. 18시즌 통산 타율 0.301를 기록했다. 1999년에는 신인왕을 차지했고, 골든글러브는 6개(포수 2회, 지명타자 4회)를 품에 안았다. 2015년 시즌에는 오른손 타자 최초로 2,000 안타를 달성했다. 

국가 대표 주전 포수로도 활약했다. 홍성흔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음은 홍성흔과 일문일답.

-유니폼의 의미는?

2001년 우승했을 때 유니폼이다. 포수하면서 우승했을 때 유니폼이라 구단 측에서 배려했던 거 같다.

-근황은?

변신을 하고 싶어서 살을 조금 뺐다. 올해 2월 27일 미국에 들어가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루키 팀 코치를 하고 있다. 정식은 아니지만, 인턴 코치로 포수와 타격을 같이 맡고 있다. 박찬호 선배가 샌디에이고 팀을 알아봐 주셔서 소개로 자리를 잡게 됐다. 박찬호 선배가 '적응력 하나는 끝내 준다'고 하셨다. 말(영어)도 조금씩 늘었다. 가기 전에 3개월 정도 공부했는데,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움이 됐다. 국내에서 니퍼트, 에반스, 우즈 선수와 대화했던 게 도움이 됐다.

-루키 리그 일정이 빡빡하고 쉽지 않은 거로 알고 있는데.

코치들은 새벽 4시 반부터 일어나서 훈련을 시킨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차이를 엄격하게 둔다. 선수가 원하면 코치는 모든 걸 만족시켜 줘야 한다.

-살이 많이 빠지고 힘들었나 보다.

솔직히 만만하게 보고 갔다. 미국은 야간 훈련이 없고 편할 거라 생각했는데 대신 새벽 훈련이 있더라. 메이저리그를 생각하고 갔는데 마이너리그와 차이가 컸다. 거의 뛰어다니고, 군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식 코치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과 도전 의지가 있다. 가능성이 희박하다고는 하는데 한국인 선수로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 홍성흔 ⓒ 잠실, 곽혜미 기자
-두산과 롯데 팬 앞에서 은퇴식을 하는데.

생각도 못했다. 두산이 많은 배려를 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껄끄러울 수 있는데, 두산에서 마음을 크게 써 주셨다. 은퇴식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18년을 뛴 게 아니라 4년 동안 롯데에서 뛰어서 조금은 인정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감사하다.

-두산과 롯데 모두 각별한 감정이 있을 텐데.

두산과 롯데가 아닌, 야구인으로서 다 고마운 팀이었다. 나누자고 하면 말이 안 될 거 같다. 두산과 롯데 모두 소중한 팀이었다. 은퇴식에서 절대 울지 말자 울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나왔다. 마음의 준비는 했는데, 떠난다는 마음보다는 새로 출발한다는 기쁜 마음으로 하고 싶다.

-많은 후배들이 축하해 줄 거 같은데.

이대호를 잠깐 만났다.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냐고 물어보더라. 50살까지 야구 할 거 같더니 일찍 그만 뒀냐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내려가서 왜 어제 퇴장당했는지 물어봐야 할 거 같다(웃음). 두산에서는 오재원, 김재호, 양의지 등 다들 축하해 줬다. 제가 잘 모르는 어린 선수들이 많더라.

-은퇴식을 가족과 함께해 특별한지.

가족은 당연히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미가 크다.

-은퇴 발표 당시와 지금 마음의 차이는?

그때 인터뷰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자리 잡은 상태에서 기자 분들과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새롭다. 그때는 조용히 떠나고 싶었다. 무언가 만들어 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람이 직업을 잃으면 당황스러운 게 있다. 좋은 말이 나올 거 같지 않아서, 제 것을 만들어 놓고 이야기해야 할 거 같았다. 

-코치로 방향을 정한 건지.

방송 쪽에서 정말 많은 콜이 왔다. MC 자리를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야구 코치 수업과 연예계 두 가지 길을 두고 고민했을 때 연예계 진출은 마음이 불편하더라. 야구인으로 살았고, 어린 선수들과 같이 땀 흘리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거 같았다. 지금 정말 행복하고,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치 연수 기간은 기약이 없다. 코치로 인정받을 때까지 목표를 두고 있다.

-프로 생황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신인상 받았을 때가 기억난다. 2001년 포수로 유니폼을 입고 마해영 선배 삼진 잡고 진필중 선배랑 끌어안으면서 첫 번째 우승 기쁨을 누렸을 때. 그리고 2015년 제가 제대로 뛰진 못했지만, 후배들이 열심히 뛰어서 우승했을 때가 기억난다.

-기억에 남는 기록은?

2,000안타 친 게 기억이 난다. 200병살타도 있지만(웃음), 루키 팀 선수들이 제가 오른손 타자 최초로 2,000안타 친 선수로만 알고 있다. 선수들이 200병살타는 아직 모른다.

-아쉬운 점은?

팬들께 실망을 안긴 점이다. 말실수도 많이 했고, 팬들께 더 인정받을 수 있었는데 언행을 가볍게 했던 점을 반성하고 있다. 팬들의 사랑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실력으로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수 생활을 연장하지 않은 것도 더 뛰면 팬들의 마음이 더 떠날 거 같았다. 몸은 더 뛸 수 있는 상태였다. 제 실수가 있기도 했지만, 팬들의 힘으로 온 선수라고 생각해서 더 그랬다. 팬들께 감사 인사 드릴 수 있는 데 감사하다.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나?

선수들과 같이 뛰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무게 잡는 걸 잘 못한다. 이 감독, 코치 정말 열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감독직은 하늘에서 내려 줘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은퇴 선수들 선배들도 감독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을 거다. 저도 제안이 들어오면 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가족에게 한마디?

선수 생활 끝나면 같이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따로 떨어져 있다. 근데 화리 엄마가 다 이해해 주더라. 공부해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라고 하고, 딸과 아들 모두 응원해 줘서 힘낼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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