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국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호앙 수안 빈(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은 베트남의 스포츠 영웅이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문재인 정부의 주요 경제 정책 가운데 하나인 ‘신남방정책’이 가시화되면서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이 지역 나라들과 한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편집자 주>
 
베트남은 1976년 전까지 한국처럼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올림픽에는 1952년 헬싱키 대회부터 1972년 뮌헨 대회까지 월남(그 무렵 남베트남 호칭)만 출전했다. 월맹(그 무렵 북베트남 호칭)은 올림픽 무대에 나서지 않았다. 북한이 동계 대회에는 1964년 인스부르크 대회, 하계 대회에는 1972년 뮌헨 대회에서 올림픽에 데뷔한 것과 대조된다.
 
통일 베트남은 1980년 모스크바 대회에 육상 수영 레슬링 등 31명이 참가했으나 노메달이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는 보이콧 대열에 동참했지만 1988년 서울 대회에는 육상 복싱 사이클 사격 수영 레슬링 등에 9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메달은 따지 못했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베트남은 자국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다. 태권도 여자 57kg급 은메달리스트인 트란 히우 능안이 주인공이다. 한국의 국기(國技)인 태권도에서 베트남이 올림픽 메달을 땄다는 사실은 한때 총부리를 겨눴던 한국과 베트남이 종전 이후 불과 25년여 만에 급속히 가까워졌다는 방증이다. 한국군은 베트남 전쟁 때 남베트남 지역에 태권도를 전파했다.
 
베트남은 2008년 베이징 대회 역도 남자 56kg급에서 호앙 안 투안이 은메달을 들어 올린데 이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호앙 수안 빈이 대망의 금메달을 기록했다. 호앙 수안 빈은 남자 50m 권총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는데 이 종목 금메달은 한국의 진종오, 동메달은 북한의 김성국이 획득했다. 베트남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나라 선수들이 동시에 시상대에 올랐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렇게 굴러가고 있다.
 
올림픽 메달이 없다고 베트남의 스포츠 실력이 보잘 것 없는 건 아니었다.
한국은 1958년 제3회 도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탁구 종목에 출전해 여자 단체전에서 2위, 여자 단식에서 조경자가 동메달, 여자 복식에서 위쌍숙-최경자 조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남자 단체전에서는 7개 출전국 가운데 필리핀과 공동 꼴찌를 했다.
 
그런데 이 종목에서 남베트남이 일본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한 게 눈길을 끈다. 남베트남은 1959년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에서 중국과 공동 동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남베트남 남자 탁구는 그 무렵 세계 정상권 수준이었다.
 
그러나 일부 종목은 경기력 수준이 매우 낮았다. 1970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남베트남을 98-8로 꺾었다. 우승국 일본이 인도를 152-28로 누르는 등 각 나라의 경기력 차이가 큰 시절이었지만 대회 45경기에서 10득점 이하로 묶인 건 남베트남이 유일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1950년대 이전에 한국과 베트남은 스포츠로 교류의 물꼬를 텄다. 1949년 대한축구협회는 대표 팀을 꾸려 동남아시아 원정에 나섰다. 1차 원정지인 홍콩에서 2승2패를 기록한 대표 팀은 1월 15일 사이공에서 가진 남베트남과 첫 경기에서 4-2로 이겼다. 남베트남 수도인 사이공 시내는 총소리가 들리는 등 어수선했다.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와중이었던 까닭이다. 대표 팀은 2차전에서 3-3 무승부를 기록했고 3차전에서 남베트남 주둔 프랑스군과 경기를 가져 5-0으로 이겼다.
 
2012년 9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배구연맹컵 여자 대회 8강전에서 런던 올림픽 4강국인 한국은 베트남에 세트스코어 2-3으로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013년 월드 그랑프리 출전권 획득은 이 패배로 물거품이 됐다. 베트남은 조별 리그에서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일본을 세트스코어 3-2로 잡기도 했다. 준결승에서 우승국인 태국에 세트스코어 0-3으로 져 결승에 오르진 못했지만 급성장하는 베트남 스포츠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대회 결과였다.
 
베트남은 2019년 제18회 하계 아시아경기대회를 하노이에서 열기로 했지만 국내 사정으로 대회를 반납했다. 이 대회는 내년 자카르타-팔렘방(인도네시아)이 개최한다. 베트남은 경제 발전에 집중한다는, 1970년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를 반납한 한국과 비슷한 이유로 대회 개최를 포기했다.
 
하노이든 호치민(옛 사이공)이든 베트남은 머지않아 아시아경기대회를 열 것이고 그때 한국은 대규모 선수단을 보내 미래를 향한 친선의 무대를 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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