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역도 56kg급 금메달리스트인 전병관은 전국소년체육대회가 배출한 스타플레이어 가운데 하나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대한체육회가 주관하는 2017년 제46회 전국소년체육대회가 27일부터 나흘 동안 아산 등 충청남도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 대회에는 전국 17개 시도에서 1만6,964명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한다. 대회는 충남 도 내 15개 시·군, 51개 경기장에서 35개 종목의 경기가 펼쳐진다.

스포츠 팬들 귀에 익은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라도 튼튼'이라는 구호 아래 열리는 이 대회는 언제 어떻게 출발했을까. 또 대회 초창기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1979년 10월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다시 한번 흔든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이후 1980년의 정치 사회적 혼란기를 겪고 제5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첫 번째로 열린 전국 규모 대회는 1981년 제9회 전국소년체육대회다. 이 대회는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광주와 목포에서 나뉘어 열렸다. 이 대회에서는 전 대회에 이어 종합 채점을 하지 않고 축전의 성격을 강조했다. 다만 중학부 최고 기록은 집계한 결과 남중부 원반던지기 등에서 좋은 기록이 나왔다.

1982년 제11회 대회는 대전에서 5월 19일부터 닷새 동안 열렸다. 이 대회에서는 종합 채점제를 부활했다.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해 종합 채점제를 없앴더니 기록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종합 채점제의 실시로 146개의 대회 신기록이 쏟아진 가운데 충남이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했다.

1983년 5월 21일부터 25일까지 전주와 이리, 군산에서 분산 개최된 제12회 대회에는 4년 만에 다시 참가한 재일 동포 선수단 등 1만 명이 넘는 선수단이 23개 정식 종목과 3개 시범 종목에서 기량을 겨뤘다. 전국소년체육대회 출전 선수단이 1만 명을 넘긴 건 이 대회가 처음이었고 이후 계속 이 정도 규모로 진행되다 마지막 전국 규모 종합대회로 치러진 1988년 제17회 대회에는 1만4.570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다.

제12회 대회에서는 서울이 대회 사상 처음으로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한 가운데 한국 신기록 1개와 대회 신기록 55개가 수립됐다. 이 대회 중학부 역도 48kg급에서 인상 67.5kg, 용상 92.5kg, 합계 160kg의 대회 신기록으로 우승한 전병관은 1988년 서울 올림픽 52kg급 은메달리스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56kg급 금메달리스트로 성장한다. 이때부터 5년 뒤인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전병관이 은메달을 따며 세운 기록은 인상 112.5kg, 용상 147.5kg, 합계 260kg이다. 전병관 스스로의 노력과 스포츠 과학이 어우러진 결과물로 평가할 수 있다.

1984년 제13회 대회는 5월 25일부터 29일까지 대회 사상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열렸다. 제주도는 이 대회를 개최하며 구축한 스포츠 인프라를 활용해 1998년 제79회 전국체육대회 등 각종 국내외 대회를 유치하고 있다. 전병관은 이 대회에서 52kg급으로 체급을 올려 인상 90kg, 용상 115kg, 합계 205kg의 대회 신기록으로 성장세를 이어 갔다. 서울이 2연속 우승한 가운데 개최도인 제주도가 홈의 이점을 살려 만년 꼴찌에서 벗어나 11위를 차지했다.

서울 아시아경기대회를 1년 여 앞둔 1985년 제14회 대회는 5월 22일부터 닷새 동안 포항과 경주에서 열렸다. 지방에서 열린 대회 가운데 처음으로 도청 소재지가 아닌 도시에서 분산 개최됐지만 경기장 시설 등에서 큰 문제없이 대회를 치렀다. 이 대회에서는 양궁에서만 비공인 세계신기록 3개와 한국 신기록 1개가 수립됐다. 1983년 제12회 대회부터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양궁 남중부의 양창훈은 이 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워 유망주로 더욱 기대를 모았다. 양창훈은 불과 1년 뒤인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 대회 개인전 30m, 50m, 70m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다시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직전에 열린 1986년 제15회 대회(5월 5일~9일)는 제주도를 뺀 전국 12개 시도에서 분산 개최됐다.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 대비하고 비대화한 대회 규모를 줄이는 한편 지나친 예산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였다. 개회식의 공개 행사와 성화 봉송 등 모든 부대 행사가 생략된 채 오로지 경기만 치렀다. 서울이 4연속 우승한 가운데 경남이 2위, 충남이 3위를 차지했다.

제16회 대회는 1987년 5월 21일부터 25일까지 부산, 대구, 울산, 포항 등 14개 도시에서 분산 개최돼 서울이 5연속이자 마지막으로 종합 순위 1위가 됐다.

1988년 제17회 대회는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제69회 전국체육대회, 종목별 경기 단체의 전국 규모 대회와 묶어서 열렸다. 전국 11개 시도의 40여개 경기장에서 4월부터 2개월 여 동안 개최된 병합 대회에서는 34개 종목이 치러졌다. 이 가운데 소년체육대회 종목은 25개였다. 전국소년체육대회는 이 대회를 끝으로 전국 규모 종합 대회가 아닌 지역별 대회로 전환했다.

전국소년체육대회는 우수 선수의 조기 발굴과 육성 그리고 경기력 향상, 학교 체육의 활성화와 지역 스포츠 발전의 순기능이 있었던 반면 대회의 비대화에 따른 개최 시도의 재정 부담, 과열 경쟁에 따른 부작용 등 역기능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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