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그랜드 챔피언스 컵에서 부상으로 많이 불안했는데 아버지가 ‘그 정도면 괜찮다’며 격려해주셨어요. 아버지 말씀에 한층 단단해질 수 있었죠."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은 지난 10일 일본에서 막을 내린 국제배구연맹(FIVB) 그랜드 챔피언스 컵에서 5전 전패에 그쳤다. 김연경(29, 중국 상하이)을 비롯한 주전 선수 상당수가 빠진 상황에서 세계 최강 팀들과 맞붙었다. 5경기에서 한 세트도 따내지 못했지만 나름 값진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하혜진(21, 한국도로공사)이라는 진흙 속의 진주를 발견했다.

하혜진은 2014~2015 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순위로 도로공사에 입단했다. 그의 프로 무대 데뷔는 많은 관심을 모았다. 하혜진의 아버지는 '왕년의 거포' 하종화(48) 전 현대캐피탈 감독이다. 하 전 감독은 한양대 시절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다. 현대자동차서비스(현 현대캐피탈) 입단 이후 국내 무대를 평정한 그는 세계무대에서도 맹활약했다. 특히 하 전 감독은 당시 일본을 대표했던 걸출한 공격수인 나카가이치 유이치 현 일본 남자 배구 대표 팀 감독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숱한 명승부를 펼쳤다.

▲ 하혜진 ⓒ 진천선수촌, 스포티비뉴스

하 전 감독의 차녀인 하혜진은 이러한 아버지의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는 소속 팀 도로공사에서 주전 선수로 많이 출전하지 못했다. 호쾌한 공격력이 장점이지만 외국인 선수에 밀려 벤치를 지킬 때가 많았다. 그동안 자신의 가능성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하혜진은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된 그랜드 챔피언스 컵 대표 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혜진은 지난 5일 열린 그랜드 챔피언스 컵 한일전에서 두 팀 최다인 20점을 기록했다. 일본의 끈끈한 수비도 하혜진의 호쾌한 공격을 막지 못했다. 하혜진은 청소년 대표로 두 번 차출됐고 23세 이하 대표 팀으로 한 번 뛴 경험이 있다. 시니어 대표 팀에 처음 발탁된 그는 데뷔전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팀에서는 제가 주전도 아니고 백업 선수였는데 그랜드 챔피언스 컵에서는 주전 아포짓 스파이커(라이트)로 들어가게 됐죠. 그동안 볼을 많이 때려볼 기회가 없었는데 큰 대회를 치르면서 많이 즐기고 배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혜진의 상승세는 8일 열린 중국과 경기에서 멈췄다. 2세트에서 발등에 부상을 입으며 벤치로 들어갔다. 코트를 떠나 숙소로 이동한 하혜진은 남은 경기에 뛰지 못했다. 다행이 큰 부상은 피했다. 하혜진은 그랜드 챔피언스 컵에서 보여준 활약을 인정받아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 예선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한일전에서 20점을 올린 점에 대해 하혜진은 "언니들이 도와주시고 볼을 잘 올려주셨기 때문"이라며 수줍게 말했다. 그는 "그랜드 챔피언스 컵에서 전위는 물론 후위에서도 뛰었는데 평소 후위 공격에 자신이 있었다. 잘하는 언니들이 이끌어주셔서 저도 잘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5일 대표 팀 훈련에서 하혜진은 제외됐다. 그러나 16일부터 훈련을 시작했고 김희진(26, IBK기업은행)의 백업 멤버로 뛸 예정이다. 홍성진(53) 대표 팀 감독은 "하혜진은 앞으로 많은 국제 대회를 경험하면 지금보다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칭찬했다.

김종민(43) 도로공사 감독은 "하혜진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주전 선수로 나서려면 외국인 선수보다 더 공격을 잘하거나 리시브가 가능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주전으로 넣기에는 아직 모호한 점은 있다. 그러나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 2017 FIVB 그랜드 챔피언스 컵 한일전에서 스파이크하는 하혜진 ⓒ FIVB

대표 팀의 아킬레스건 가운데 하나는 김희진의 뒤를 받쳐줄 백업 멤버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국내 V리그에서 아포짓 스파이커를 담당하는 이들은 대부분 외국인 선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제 대회에서 경쟁력이 있는 아포짓 스파이커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혜진은 가뭄 속의 단비처럼 나타났다. 호쾌한 백어택을 내리꽂는 하혜진은 아버지의 장점을 물려받았다. 그는 "아버지는 직접 먼저 조언해주시지는 않고 제가 배구에 대해 질문했을 때 알려주신다"며 "이번 그랜드 챔피언스 컵에서도 조언해주셨다. 부상 때문에 많이 불안했는데 '그 정도면 괜찮다'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예선을 앞둔 하혜진은 "(김)희진 언니 백업으로 활약하는 점만으로도 제겐 영광이다. 꿈은 항상 크게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큰 대회에서 더 많이 경험해 도움이 되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하혜진은 물론 세계선수권대회 예선에 출전하는 14명 선수의 목표는 같다. 내년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본선 티켓을 거머쥐는 것이다. 대표 팀은 오는 18일 오전 대회가 열리는 태국으로 떠난다.

"최종 엔트리에 올라갔는데 이번에도 언니들을 믿고 따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큰 부상은 아닌데 몸 끌어올려서 세계선수권대회는 물론 나중에 올림픽까지 가고 싶어요."

한편 SPOTV는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예선 한국 팀의 전 경기를 위성 생중계한다. SPOTV+는 오는 20일 오후 5시 20분부터 한국과 북한이 맞붙는 남북전을 위성 생중계한다.

[영상] 2017 FIVB 그랜드 챔피언스 컵 한일전 하혜진 활약 ⓒ SPOTV 미디어 서비스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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