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영화 파워 오브 원(Power of one : 한 사람의 힘, 1992)의 주인공인 PK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을 위해 온몸을 내던진다. 그는 "한 사람의 힘이 나중에는 거대한 물결로 이어질 것입니다. 한줄기 물줄기가 모여 거대한 폭포수를 이루듯 말이죠"라고 이야기 한다.

'한 사람의 힘'이 스포츠와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은 어떨까. 그런 점에서 다시 한번 김연아(25)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연아가 21세기 한국스포츠와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하다. 국내에서 김연아 외에 세계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와 비교해 김연아는 피겨 여자싱글 최고점을 11번이나 경신했고 밴쿠버 동계올림픽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스포츠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비단 김연아의 성과는 국내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피겨 여자싱글 전체를 통틀어 봐도 그만큼 압도적인 점수 차로 금메달을 목에 건 이는 없었다. 신채점제가 도래한 이후 여자싱글 사상 처음으로 총점 200점을 돌파했고 역대 최고점인 228.56점을 기록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피겨 여자싱글 역사의 한순간이었다. 그만큼 김연아의 경기력은 대단했다. 기술과 예술성 그리고 정신력을 모두 갖춘 스케이터의 장점이 최대치에 오를 때 어떤 연기가 나오는 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의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 도전을 선언했고 2013 캐나다 세계선수권에서 정상에 등극했다. 이 때 그가 은반 위에서 펼친 ‘레 미제라블’의 연기는 밴쿠버에서 선보인 ‘조지 거쉰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 못지 않았다.

소치올림픽에서 은메달에 그쳤지만 그의 위상은 추락하지 않았다. 당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서 펄쩍펄쩍 뛰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20, 러시아)는 ‘인상적인 올림픽 챔피언’으로 남 아있지 않다. 4년 전 올림픽 챔피언 김연아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은퇴 이후 김연아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각종 CF 촬영과 행사에 출연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연아는 지난해 봄에 열린 아이스쇼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빙판을 떠난 지 1년이 지났지만 그의 위상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피겨 여제'의 새로운 도전

김연아는 지난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삼성 플레이 더 챌린지’ 행사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삼성그룹이 도전 정신의 가치를 젊은이들에게 일깨워주려는 캠페인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강연이 아닌 토크쇼 형식으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김연아가 이 자리에서 밝힌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사연이었다. 7살 때 취미로 스케이트를 배우던 중 류종현 코치의 권유로 선수를 시작하게 된 사연 부상과 발에 맞지 않는 스케이트로 선수 생활 위기에 봉착했던 점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동기부여를 찾기 힘들어 했던 점들을 담백한 말투로 들려줬다.

김연아는 자신이 최고점을 11번이나 경신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신기록 자체에 크게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처음 알았다고 대답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국내에서 큰 관심을 얻지 못하는 점도 지적했으며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돕고 싶다는 말도 남겼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는 세 번의 도전 끝에 얻어냈다. 그러나 평창올림픽 준비는 여러 가지 문제로 삐꺼덕거리고 있다. ‘김연아 이후’를 책임질 선수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세계 정상급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김연아는 1주일에 2~3번 서울 공릉동에 위치한 태릉아이스링크를 찾는다. 이곳에서 후배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며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인 그는 대회와 관련된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해서 이들이 더 좋은 프로그램을 보여 드릴 수 있게끔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크게 보면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서의 일이 중요하다"며 "국내에서도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 특히 동계스포츠는 인기 종목이 거의 없어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남은 3년간 큰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선수 시절 '완벽한 연기'를 위해 정진했던 '도전 정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는 물론 후배들의 지원을 위해 나서는 것이 그의 새로운 목표가 됐다.

'한 사람의 힘', '모두의 힘'으로 이어져야 결실

선수시절 김연아의 위상을 놓고 볼 때 그의 발언이 큰 화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김연아 한 사람의 힘은 이제 모두의 힘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김연아는 현재 분명 은퇴했고 그가 남긴 기록도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이다.

김연아 만큼 홍보대사로 자주 얼굴을 비친 체육인은 드물다. 이러한 점에서 다시 한번 그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김연아는 경기장 안이 아닌 밖에서 활동하고 도와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정한 스타에 의존해 동계올림픽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준비와 그에 걸맞은 마케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연아 이후 미래를 책임질 기대주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정상급 선수들은 여전히 배출되지 못하고 있다. 선수들의 훈련 환경 및 유망주 육상 방안도 여전히 답보 상태다.

애석하게도 국내 동계종목 최고의 별인 김연아는 평창 무대에 설 수 없다. 만약 2010년이나 2014년 올림픽 개최에 성공했다면 김연아가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김연아는 분명 링크장 밖에 있고 선수가 아닌 일반인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김연아는 "선수시절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많았다. 하루하루 연습하는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좋은 기억은 순간뿐이었고 그런 슬럼프는 거의 항상 함께였다"고 털어놓았다. 선수 생활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털어놓은 그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17년 넘게 선수로 활약해온 김연아의 여정은 분명히 막을 내렸다. 이제 '한 사람의 힘' '모두의 힘'으로 이어져야할 시기다.

[사진] 김연아 ⓒ 스포티비뉴스 한희재 기자

[영상] ‘플레이 더 챌린지’에 출연한 김연아 ⓒ 스포티비뉴스 편집 배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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