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지난달 13일 서울시 강서구 내발산동 '크로스 멀티 킥복싱 체육관'. 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www.koreaart.ac.kr) 스포츠건강관리학부 무도스포츠과 종합격투기 수업이 한창인 현장. "으윽", "아아아", "악" 등 괴상한 신음소리가 가득했다.

8명의 학생들이 2명씩 짝을 지어 미트를 치는 중. 1세트(5분 5라운드)를 소화하고 2세트(3분 5라운드)로 넘어가자 그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처지기 시작했다.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었다.

그러나 '악마' 같은 교수는 이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자극했다. 얄밉게 약을 살살 올렸다. 악에 받친 학생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괴성을 짜내며 사력을 다해 펀치를 뻗었다.

교수 "할 만해?"
학생A "(미트 치는 도중 목에 핏대를 세우며)네, 할 만합니다!"
교수 "여학생처럼 치니까 할 만하지. 난 우리 수업에 여학생이 있는 줄 처음 알았어."

학생B "(미트를 치다가 괴성을 지른다)으아아아아아."
교수 "챔피언 돼야지. 부모님께 집 사드려야지. 벤츠 사야될 거 아냐. 쉬는 건 집에 가서 쉬어."

학생들 "헉헉헉…"
교수 "죽도록 쳐봐. 만약 미트 치다가 죽잖아. 그럼 내가 책임질게."

어린 학생들의 오기를 건드리는 악마교수는 다름 아닌 UFC 웰터급 랭커 '스턴건' 김동현(33·부산 팀매드). 올해부터 크로스 멀티 킥복싱 체육관 조정훈 관장과 함께 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의 겸임교수직을 맡아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2주일에 한 번 서울로 올라와 스턴건식 스파르타 훈련을 전수한다.

김동현은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 "나도 팀매드 양성훈 감독님에게 이렇게 배웠다"면서 "종합격투기를 하려면 오기와 깡이 있어야 한다. 힘이 빠졌을 때 힘이 나도록 응원의 말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힘이 더 빠지는 말로 극한을 느끼게 해야 할 때도 있다. '2분 같은 20초 지났다', '아직도 3라운드 더 남았다. 어떡할래?' 이런 식으로 자극하곤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파이터가 지켜보고 있다. 게다가 촬영까지 와서 카메라를 들이미니 요령을 피우기도 힘들다. 학생들은 죽을 맛이다. 이중에는 XTM 격투기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 '주먹이 운다' 우승자 출신인 로드FC 파이터 임병희도 있었다. 여러 해 훈련을 이어오고 있는 그도 숨을 헉헉거리긴 마찬가지.

약 2시간 동안의 '훈련'이, 아니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김동현을 바라보며 앉았다. 신기하게도 김동현의 악마 같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파이터의 꿈을 키우는 학생들의 질문에 친철하게 답하는 조언자가 돼있었다.

"감량은 최대한 단기간에 빼는 게 몸을 상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지금 무릎을 조금 다쳤지만 운동선수라면 부상은 안고 가야 한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훈련하다 보면 다칠 수 있어. 그걸 극복하는 정신이 중요하다", "훈련에서 마지막까지 사력을 다해서 펀치를 뻗어. 결국 그게 경기에서 나오고, 그 펀치가 KO승을 가져다 준다"

UFC 출전을 앞두고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제자들에게 그는 아낌없는 조언으로 기운을 북돋아주고 있었다.

김동현은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 아이들과 함께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가르쳐주고 싶은 게 정말 많다. 학기가 끝나면 아이들을 부산으로 불러 함께 훈련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아직 난 B학점 정도의 지도자가 아닐까. 선수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더 가르쳐주지 못하는 게 미안하다"며 학생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180도 상반된 경기스타일로 '스턴건'과 '매미'라는 두 가지 별명을 지닌 김동현은 '악마교수' 이전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파이터다. 2004년 스피릿MC를 통해 데뷔해 2008년 9승 1무의 프로 전적으로 옥타곤에 진출, 한국인 1호 UFC 파이터가 됐다.

지난 24일 UFC 187에서 조쉬 버크먼에 3라운드 암트라이앵글초크로 승리, 선수층이 두꺼워 '지옥의 체급'으로 불리는 UFC 웰터급에서 옥타곤 11승 고지를 밟았다.

김동현은 우리나라 종합격투기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 실적과 성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리더의 자리에서,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길을 제시하는 것이 '맏형'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길을 개척하면서 후배들까지 챙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그래서 한국인 파이터 홍보대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선후배 사이의 예의는 분명하게 지켜야 한다"며 무서운 군기반장 역할을 할 때도 있지만, 틈만 나면 UFC의 여러 관계자들에게 "한국의 파이터들을 주목해달라"고 외친다.

조쉬 버크먼에게 승리한 뒤에도 잊지 않았다. 미국의 여러 미디어와 인터뷰에서 "처음 UFC에 진출할 때, 한국선수들이 강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 꼭 이겨야 했고 그래서 지루하게 경기를 펼쳤다. 현재 여러 한국선수들이 UFC에 진출해 있지만, 아직 기회가 많이 열려있지 않은 것 같다"며 "한국선수들이 다른 아시아 선수들과는 정말 다르다고 내가 보장할 수 있다. 한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한국선수는 언제나 포기하지 않는다. UFC 팬들이 원하는 경기를 한다. 많은 기회를 달라"고 강조했다.

오는 11월 28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첫 UFC 한국대회 출전을 원하는 것도 맏형의 책임감 때문이다. 이 대회가 성공해야 더 자주 한국에서 대회가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버크먼 전 직후 스포티비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한국대회를 준비하고 싶다. 다른 대회에서 부상을 당해 한국대회를 망치고 싶지 않다. 제일 맏형으로서 대회를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며 "한국대회에 실력 있는 한국선수들이 더 진출할 수 있도록 UFC에 어필을 하고 있다. 후배 2명 정도가 더 UFC와 계약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동현도 여기에 오기까지 시행착오를 수차례 겪었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 미래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한때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쳐 종합격투기를 떠나있었다. 운동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으로 2005년 어학연수를 위해 뉴질랜드로 향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종합격투기를 포기할 수 없었고 3개월 만에 돌아왔다. 그때 김동현이 부모님께 한 말은 "1년만 하게 해주십시오. 다치면 바로 그만 두겠습니다"였다.

우여곡절을 거쳐 파이트머니 1억 원 이상을 받는 파이터가 된 김동현은, 그래서 후배들에게 꼭 할 말이 있다. 당장의 성과보다는 미래의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20대 초반에 챔피언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경험이 쌓이는 30대에 비로소 기량이 꽃 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길게 봐야 한다. 타고난 재능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엔 노력과 열정이다. 타고난 것과 노력이 함께라면 대성하겠지만, 타고난 것만 가지고는 이 분야에 오래 있지 못한다. 고되고 힘든, 오랜 수련을 거쳐야만 성공이라는 걸 할 수 있는 곳이다. 좋은 자질을 가진 선수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도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한다. 몇 년을 지켜봐야 그 선수의 가치가 나온다. 노력과 열정이 있는 선수는 꼭 선수가 아니라도 지도자나 다른 곳에서 성공하는 걸 발견한다."

9개월 만의 경기에서 값진 승리를 거뒀으니 김동현은 이제 다시 학생들 앞에 '악마교수'로 돌아올 것이다. 또 약을 올리며 오기를 끌어내려 할 것이다. 대전 팀매드의 정진석, 문기범 등 선수들도 지도하고 부산 팀매드의 최고참으로 군기를 잡을 것이다.

하지만 지도자보다 아직은 선수가 체질에 더 맞는다. "운동을 하면 개운한 맛이 있는데, 누군가를 가르치면 기가 빨리는 느낌이다. 참 힘든 일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양성훈 감독님이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는 김동현은 "아직은 선수가 더 맞는다. 가늘고 길게 가겠다. 오랫동안 정상권에서 활동하는 선수로 남고 싶다"는 계획을 밝힌다.

공교롭게도 지난 26일 김동현은 웰터급 랭킹 7위에 올랐다. 그의 앞에는 이제 딱 7명뿐이다. 만 33세, 아시아를 대표하는 톱클래스 파이터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동현은 여전히 후배 파이터들에게 보여줄 게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다. 롱런을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추)성훈 형이 아직 활동하고 있다. 나도 마흔 살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술, 담배도 안 하고 몸에 해가 되는 약도 안 한다. 건강식을 챙겨 먹는다. 게다가 동안이다. 신체나이도 29살 정도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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