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과 최근 만남에서 역대 두 번째로 패배한 한국 ⓒ게티이미지코리아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한국 축구가 아시아 맹주라는 이야기는 옛말이다. 11월 발표된 국제축구연맹(FIFA) 남자 랭킹에서 다시 중국(60위)을 제친 한국은 59위로 올라왔으나 여전히 이란, 호주, 일본에 이은 아시아 3위다. 물론, FIFA 랭킹이 축구 실력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치른 경기가 누적된 결과다. 일본은 한국에 앞서 있고, 중국은 한국을 따라왔다. 114위에 머물러 있는 북한은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정신력과 투지로 따지자면 무시할 수 없다.

동아시아 축구 판도는 요동치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해도 한국이 동아시아 축구의 절대 강자였다. 1986년 멕시코 대회부터 2018년 러시아 대회까지 이어진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기록은 아시아 무대에서 독보적이다. 일본은 1998년 처음 본선 무대를 밟았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예선을 치르지 않은 2002년 대회에 처음 입성했다. 북한은 1966년 잉글랜드 대회에서 8강 신화를 쓴 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에 겨우 출전했다.

◆ 고른 능력 갖췄던 아시아 강자 한국…각자 특색 살린 일본과 중국의 추격

한국은 가장 꾸준했다. 정신력이 강했고, 아시아에서 체력적으로도 우수했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아시아에서는 최상위권이었다. 세계 수준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한국 축구가 가진 장점이 현대 축구의 지향점과 잘 맞아떨어진 2002년 대회에서 4강 신화를 썼다. 아시아 축구 역사에 다시 나오기 힘든 성과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 축구 판도는 한국이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각자 가진 개성에 체계적인 시스템과 투자, 노하우를 입혀 성과를 내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J리그 출범을 기점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체구는 작지만 기술과 전술에 공을 들였다. 일본은 유소년 시절부터 탄탄한 기본기와 패스 축구로 발전했다. 전술의 나라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장점을 받아들였다. 프로 리그 운영 체계도 유럽 모델을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아기자기한 패스 축구는 아시아 축구계에서 일본의 색깔이 됐다. 미드필더 나카타 히데토시가 이탈리아에서 성공했고, 가가와 신지가 독일에서 또 한번 빛을 발하며 유럽 무대에서 일본의 기술을 인정받았다. 최근에는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이 일본에 힘의 축구를 입히고 있다. 2020년 도쿄 하계 올림픽을 목표로 육성하고 있는 연령별 대표 팀은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강력한 전방 압박과 조직 수비를 펼치며 기술에 규율을 입혀 과거의 단점 보완에 성공하고 있다.

일본도 야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이지만, 지역 연고 밀착을 내세운 J리그 백년 구상이 자리를 잡았다. 야구의 인기에 비할 수는 없지만, J리그 구단은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수준의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다. 2016년 J1리그 경기당 평균 관중은 1만 7,803명. 인구 차이가 있지만 만 명을 채우기도 힘든 K리그 현실과 차이가 있다.

인프라와 지역 밀착에 성공한 J리그는 최근 영국 퍼폼 그룹의 투자로 날개를 달았다. 퍼폼 그룹이 J리그 중계권을 10년간 2조 원의 거액에 구입하면서 전 구단이 자금력을 갖췄다. 성장세가 주춤했던 일본 축구는 이 계약으로 도약의 계기를 만들었다. 이제 막 시작된 투자다. 해가 갈수록 J리그 구단은 투자의 선순환으로 강해질 것이다. 당장 2017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우라와 레즈가 동아시아 대표로 올랐다.

▲ 기술과 저변에서 오래전에 한국을 넘은 일본 ⓒ게티이미지코리아


◆ 일본은 기술, 중국은 투자, 북한은 정신

중국 축구의 성장세는 비약적이다. 경제 발전과 더불어 축구가 국민의 단합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시진핑 주석의 정책적 지원 속에 인프라가 대폭 강화됐다. 중국 기업이 정치적 목적으로 앞다퉈 축구에 투자했다. 축구을 무척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세계적인 스타 선수와 감독들이 안방으로 오자 열렬히 반겼다. 2016년 중국 슈퍼리그 경기당 평균 관중은 2만 4,159명에 달했다. 

투자의 결과는 아시아 제패다. 이탈리아 대표 팀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마르첼로 리피 감독, 브라질 대표 팀의 월드컵 우승을 이룬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광저우 헝다는 2013년과 2015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뤘다. 

2014년에 호주 웨스턴 시드니, 2016년에 한국의 전북 현대가 광저우 독주를 저지했으나 중국  팀들은 최근 고르게 성장세를 보였다. 상하이 상강은 2017년 우승에 근접한 경기력을 보였다. 지난 19월 발표된 AFC(아시아축구연맹)  클럽 대회 랭킹에서 동아시아 2위로 일본을 추월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한국을 제치고 동아시아 1위로 올라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펠릭스 마가트 등 유럽의 명장이 합류하고 유럽 리그에서 전성기를 보내던 선수들이 슈퍼리그에 합류하면서 중국 선수들의 실력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은 중국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역대 두 번째 패배를 했다. 내용과 결과 모두 뒤졌다. 힘의 축구를 앞세웠으나 투박하고 거칠었던 중국은 이제 자신들의 체력적 강점을 영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기술력도 향상됐다. 전술적으로도 리피 감독이 대표 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체계를 갖췄다.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팀이 됐다.

일본은 기술적으로, 중국은 힘이 좋다. 여기에 북한의 정신력은 한국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아직 환경이 열악하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장 위원장이 축구를 애호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북한 축구 역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축구 유망주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교육을 받았다. 연령별 대표로 주목 받던 한광성은 이탈리아 세리에 B 페루자에서 연일 활약하며 빅 클럽의 관심을 받고 있다. 북한의 메시로 불리던 정일관은 스위스 루체른에 입단했다.

▲ 이탈리아 페루자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한광성(왼쪽) ⓒ게티이미지코리아


◆ 동아시안컵, 동아시아 축구 현주소 확인할 무대

한국은 기술, 힘, 정신력을 두루 갖춰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각각의 장점을 강화하고 단점을 보완한 상대국의 성장세에 비해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리그는 침체되고, 대표 팀은 주춤하다. 11월 A매치에서 반전했으나 콜롬비아와 세르비아의 준비가 부족했던 점도 있다. 12월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풋볼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서 만날 일본, 중국, 북한은 같은 조건이다. 서로 유럽파를 부를 수 없고, 경기와 대회에 나서는 자세가 비슷하다. 각 국의 뿌리를 바탕으로 정면 승부를 벌이는 무대다. 

일본의 저변과 중국의 투자, 북한의 정신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회다. 유럽파가 없지만, 한국 축구의 저력과 기반을 확인할 수 있는 대회가 동아시안컵이다. 당장의 결과보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을 위한 준비 과정이 돼야 한다. 엇비슷한 수준의 동아시아 경쟁국 사이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이지 못한다면, 우려를 거두기 어렵다. 

한국은 J리그 일정이 12월 2일에 끝나는 개최국 일본에 비해 일주일 가까이 먼저 소집해 대회를 준비하기도 한다. 중국이 정예 멤버로 나서지만, 한국 역시 최근 대표 팀 내 국내파 비중이 높아져 핑계를 대기 어렵다. 동아시안컵은 동아시아 축구 판도 변화 속에 한국 축구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대회가 될 것이다. 대회 남자부 경기는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12월 8일 중국, 12일 북한, 16일 일본을 만난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