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생일'의 설경구. 제공|NEW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설경구(51)는 바쁘다. 이수진 감독의 '우상'을 개봉하고 채 한 달이 안돼 이종언 감독이 연출한 신작 '생일'을 선보이고, 그 사이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 변성현 감독 신작 '킹메이커' 촬영에 돌입했다. 그 다음엔 이준익 감독과 함께하는 사극 '자산어보'에 출연한다. 숨가쁘지만, 하나하나 의미와 애정과 인연이 남다른 작품들이다.

그 중에서도 3일 개봉한 영화 '생일'은 특히 묵직하다. 알려졌다시피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가족의 이야기다. 설경구는 뒤늦게 가족 곁에 돌아온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이들이 주인공 없는 생일 모임을 준비하는 과정이 담담하고도 사려깊게 그려진다. 아이에 대한 기억이 쏟아지는 마지막 생일 모임은 눈물 없이 지켜보기 힘들다. 하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선 관객이라면 분명 들어갈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을 작품이다.

'생일'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에 나선 설경구는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입을 열자 영화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했다. 큐 사인을 받은 배우처럼.

▲ 영화 '생일'의 설경구. 제공|NEW
설경구가 '생일'을 제안받았을 때도 지금처럼 스케줄이 난감했다. 친분이 남다른 이창동 감독, 이준동 대표가 제작자지만, 그는 영화 '우상'을 촬영 중이었고, 답을 하기까지 1주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상황이 안 되니까, 편하게 거절해도 된다 싶었"던 설경구의 생각은 시나리오를 읽고 달라졌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종언 감독은 제작자들과의 인연 탓에 안면이 있었을 뿐 깊이 알지 못했지만 설명만으로 믿음이 생겼단다.

"쉽게 접근하지 않은 책(시나리오)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남아있는 부모 이야기라지만 저는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이웃의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극적이지도 않았고, 주장도 없었다. 일방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게 좋았다. 툭 뱉었는데 칼같이 들어오는 말까지 담담하게 담은 책. 그런 말을 하는 사람까지 미워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이웃을 두루 살핀다는 느낌이었다. 기분만으로 쓴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더 믿음이 갔다."

▲ 영화 '생일'의 설경구. 제공|NEW
뒤늦게 가족에게 돌아온 아버지 정일은 설경구를 자극하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감독에게도 물었다. 왜 정일을 이렇게 돌아오도록 했냐고. 그의 어깨를 통해서 관객들이 주변을 보다가 점점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배우로서는 이야기도 이야기인데 설정도 재미있었다. 이 사람은 감정을 쓰면 안되는 인물이었다. 이제와서 감정을 쓰는 것마저 죄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담담한 모습에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있어서 배우로서의 욕심이 들었다."

영화 '생일'엔 침몰 사고에 대한 직접적 묘사가 없다. '세월호'란 세 글자조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시나리오부터 없었다. 많은 이들에게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긴 아픔에 영화 '생일'이 어떻게 접근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리라.

설경구는 "사명감 이런 게 아니라" 배우로서 혹은 그들의 이웃으로 접근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촬영때는 영화를 둘러싼 복잡한 상황과 우려는 가능한 지워내고 카메라 앞에 섰다. 늘 그렇듯이 연기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상황에 그저 실려가자."

하지만 개봉이 다가오고 영화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늘어나며 그의 생각도 점점 늘어난다. 혹여 상처를 건드리거나 아픔을 자극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는 유가족들을 '아, 그 세월호'라고 지칭하던 연극을 접했다며 '그 단어가 어느 순간 세졌다'고 안타까워 했다. 설경구는 "세월호 유가족이 아니라 그냥 이웃"이라며 "평범한 일상을 살았고, 지금도 평범한데 그들을 다른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나가듯 툭 던진 그의 한마디가 말을 쳤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도 있다. 그저 위로할 뿐."

조심스럽게 쓴 초대장. 영화 '생일'을 본 느낌이다. 함께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초대장을 받아든 이의 몫이다. 설경구에게 그 초대장에 쓸 문구를 부탁했다.

"저희 '생일' 모임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기꺼이 동행해 주셨으면, 하는 이야기를 간절히 드리고 싶다. 객석에서 생일모임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 모임에 앉아있네 하는 생각이 드실 거라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 앉아있다는 게 위로고 힘이 되실 거라고 생각한다. 기꺼이 와주시길 바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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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생일'의 설경구. 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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