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대 중반에 다시 만난 곤도 유키와 고노 아키히로. 둘의 파이터 인생은 일본 종합격투기 역사를 관통한다.

[스포티비뉴스=이교덕 격투기 전문 기자] 1975년생 곤도 유키(43, 일본)와 1974년생 고노 아키히로(44, 일본)가 처음 싸운 건 혈기왕성하던 2001년 12월 1일이었다. 당시 곤도 만 26세, 고노 만 27세. 둘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판크라스 프루프 7(Pancrase: Proof 7)에서 소속팀의 명예를 걸고 맞섰다.

곤도는 판크라스를 대표하는 팀 '판크라스이즘'의 젊은 피였다. 고등학교 때 소림사 권법을 배운 뒤, 1996년 프로로 데뷔해 31승 3무 11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체급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던 당시, 80kg대 몸무게로 212cm 거인 세미 슐트에게 2번 이기고 1번 졌을 정도로 화력이 뛰어났다.

고노는 그래플링 바보라는 뜻의 '그라바카'가 내세우는 타격가였다. 기쿠타 사나에를 중심으로 미사키 카즈오·사사키 유키를 앞세운 그라바카는 2000년대 초 판크라스에 침공한 외부 세력이었는데, 판크라스이즘과 팀 대항전을 펼치던 일명 '항쟁 시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고노는 슈토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막 판크라스로 활동 무대를 옮겨 2승을 거둔 자객으로, 총 전적 13승 5무 8패였다. 1994년 삼보 파이터로 종합격투기를 시작했지만 타격 센스가 좋은 아웃파이터여서, 왼손잡이 인파이터 곤도와 맞대결에 팬들의 비상한 관심이 쏟아졌다.

승자는 곤도였다. 2라운드부터 그라운드 앤드 파운드로 고노를 두들겼고 3라운드에도 테이크다운에 성공한 뒤 파운딩을 내리꽂았다. 고노가 웅크리고 맞고만 있자, 세컨드로 있던 기쿠타가 체념하듯 수건을 던질 때 관중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들었다 놨다 했다.

곤도는 이 승리로 판크라스이즘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2003년 11월 그라바카 주장 기쿠타에게도 KO승을 거두면서 소속팀의 자존심을 챙겼다.

두 번째 대결은 5년 뒤인 2006년 12월 31일 프라이드 남제에서 펼쳐졌다. 당시 곤도 만 31세, 고노 만 32세. 고노가 더 잘나갈 때다. 2004년부터 프라이드 링에서 마우리시오 쇼군·댄 헨더슨에게만 졌을 뿐, 크로슬리 그레이시·다니엘 아카시오·김대원에게 이겼다.

특히 2006년 프라이드 웰터급(83kg) 그랑프리에서 헥터 롬바드·게가드 무사시를 차례로 꺾어 4강에 올랐고 데니스 강에게 판정패해 아쉽게 결승행이 좌절됐을 정도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었다. DJ DOC의 런투유를 일어로 번안한 곡을 배경으로, 뽀글뽀글 곱슬머리 가발을 쓰고 춤을 추며 등장하는 입장신으로 유명했다. 당시 전적 27승 7무 12패.

반면 곤도는 프라이드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감량 없이 미들급(93kg)에서 활동해 상대의 힘과 체격에서 밀렸다. 마리오 스페리에게 이겼으나, 반더레이 실바·댄 헨더슨·이고르 보브찬친·나카무라 가즈히로·필 바로니에게 고배를 마셨다. 당시 전적 46승 6무 18패.

2차전은 프라이드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던 고노의 2-1 판정승이었다. 고노는 오소독스 아웃파이팅으로 사우스포 인파이터 곤도에게 포인트 싸움에서 앞섰다.

2007년 프라이드가 UFC에 흡수되면서 일본 종합격투기의 침체기가 시작됐다. 곤도와 고노의 시대도 서서히 저물었다.

곤도는 판크라스로 돌아가 싸움을 이어 나갔다. 경쟁력은 떨어졌지만 2016년을 제외하면 매년 2경기 이상을 꼬박꼬박 뛰었다. 어느덧 전적은 104전 60승 9무 35패가 돼 있었다. 고노는 UFC와 센고쿠에서 활동했다. 2012년 5월 벨라토르 67에서 마이클 챈들러에게 1라운드 56초 만에 TKO로 지곤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듬해 복귀해 선수 활동을 이어 가다가 2017년 판크라스로 돌아왔다. 전적은 66전 36승 8무 22패가 됐다.

두 베테랑이 13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근육은 빠지고 주름은 늘고 머리는 허옇게 샌, 두 40대 중년 파이터들의 3차전. 승리는 다시 곤도에게 돌아갔다. 지난 26일 일본 도쿄 신키바스튜디오코스트에서 열린 판크라스 305 웰터급 경기에서 곤도는 고노를 3라운드 종료 3-0(30-27,29-28,29-28) 판정으로 이겼다.

18년 전, 그리고 13년 전 스타일이 그대로 나왔다. 곤도는 왼손잡이 인파이팅, 고노는 오른손잡이 아웃파이팅으로 맞섰다. 20·30대 때 폭발력은 확실히 줄었지만 수 싸움이 치열했다. 고노가 뒤로 빠지면서 날카로운 오른손 펀치를 여러 차례 맞혔고, 곤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하며 싸움을 걸었다. 심판들은 유효 타격 횟수보다 공격 적극성에 더 높은 점수를 줬다.

일본 종합격투기 역사를 관통하는 두 노장의 3차전.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경기에서 곤도와 고노는 승패가 결정된 후에도 표정 변화 없이 악수를 나눴고 서로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18년 동안 이어진 라이벌 관계는 조금은 '슴슴'하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곤도는 경기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번이 우리의 마지막 경기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또 모른다. 언젠가 4차전을 펼칠지도." 인생은 알 수 없다. 둘 다 계속 싸워 나간다면 50대에 4차전을 가질지 모른다. 혹시나 그렇게 된다면, 그때도 곤도는 전진하며 싸움을 걸 것이다. 그러면 고노는 뒤로 빠지며 카운터펀치 타이밍을 계산할 게 분명하다.

스포티비뉴스=이교덕 격투기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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