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티비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가진 구자철 ⓒ곽혜미 기자

| 구자철이 돌아본 2014년 브라질 월드컵
| "제가 팀을 이끌어야 한다고 착각을 했던 거 같아요."

[스포티비뉴스=용산, 한준 기자] 2014년 FIFA(국제축구연맹) 브라질 월드컵은 한국 축구의 거대한 트라우마였다.

한국 축구 불멸의 캡틴으로 불과 2년 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신화를 쓴 홍명보 감독은 국민적인 비난을 받으며 사퇴했고, 축구 대표팀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한국 축구 전체가 적폐로 몰렸다. 2018년 FIFA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을 꺾는 기적을 일으키기까지, 4년 동안 한국 축구는 유례없는 암흑기를 보냈다.

상처가 아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상처는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것이었다. 대회를 경험한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웠다. 지금도 하지 못한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잠들어 있다. 그 뒤로 한 번의 월드컵이 더 있었고, 2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은 한국 축구 역사에 희미한 기억이 됐다.

대회를 직접 치른 이들에겐, 떠올리면 여전히 선명한 기억이다. 2019년 AFC(아시아축구연맹) UAE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 구자철에겐, 주장으로 참가한 2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이 국가 대표 경력의 가장 화려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구자철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주장이자, 2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의 주장이었다. 2009년 FIFA 이집트 U-20 월드컵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거치며 '홍명보호'의 중심에 있던 선수다. 홍명보 전 감독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성실의 아이콘이던 구자철을 주장으로 택했고, 내내 신임했다. 

스포티비뉴스와 만난 구자철은 브라질의 실패가, 주장이었던 자신의 리더십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하던 대표팀은 대회 전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당시 대표팀이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자는 런던 올림픽 동메달로 인한 동기 저하를, 체계적이지 못했던 월드컵 행정 지원을, 도를 넘어선 여론의 비판을 말합니다. 당시 대표팀의 주장으로 느낀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그것보다, 개인적으로 제가 그때 주장이었는데, 제가 그 팀을 뭔가 이끌만한 경험도 없었고, 저 자신조차, 좀 버거워했었던 것 같아요. 그게 그 팀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주축으로 경기를 뛰고 있고, 주장으로서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고, 5천만 국민이 뒤에서 응원하고 있는 팀에 주장을 하면서, 제가 팀을 이끌어야 한다고 착각을 했던 거 같아요. 내가 이 팀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 거죠.” 

▲ 알제리전에 만회골을 넣은 구자철

구자철은 자신이 리더를 맡았지만, 리더가 되려고 했기 때문에 리더가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회를 때, 그리고 치르고 나서도 한 동안은 깨닫지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깨달음은 불현듯 찾아왔다.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브라질 월드컵 때 이랬었구나. 나 진짜 어렸었구나. 뒤늦게 모든 분들에게 죄송했어요. 모든 분들에게.”

구자철은 브라질의 경험을 통해 2018년 FIFA 러시아 월드컵에서 주장을 맡은 ‘친구’ 기성용에게 조언했다. 

“(기)성용이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주장을 했는데, 자주 얘기를 했어요. ‘너 혼자 뭘 하려고 하지 마라. 이 팀을 이끌려고 하지 마라. 절대로.’ 월드컵 대표팀은 제가 해보니까 제일 중요한 건 운동장 안에서 훈련장에서 리더가 되는 거에요. 솔선수범하고, 경기력으로 증명하는 거죠. 거기에 모든 포커스를 맞춰야 해요. 그게 리더에요. 훈련장 안에서 누구보다 진중하고, 재미있고, 최선을 다하고, 팀이 긍정적으로 자연스럽게 풍기는 카리스마를 보이는 게 리더지, 운동장 밖에서 팀을 이끌려고 하는 건 진정한 리더가 아니에요.” 

▲ 기성용(왼쪽)과 구자철

구자철은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야 한다고 했다. 자신은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작 리더가 보여야 할 가장 중요한 것들을 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인터뷰가 됐든, 미팅하자고 하고 말로 뭘 하려고 하는 건 진정한 리더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건 리더가 아니에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저는 2014년에 후자였어요. 경기장에서 솔선수범해서 내 몸으로, 경기력으로, 내 투지로, 근성으로 모든 열정을 경기장에서 보여서 팀원들이 불타오르게 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고. 경기 외적으로 뭔가 팀을 이끌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 팀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였다고 저는 생각해요.”

구자철은 스스로 훈련장과 경기장에서 보여주기보다 밖에서 리더가 되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훈련장에서든 경기장에서든 늘 헌신했던 선수다. 실제로 2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그가 전력을 다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스스로도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문제는, 그 최선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전 제 모든 걸 쏟아서 노력을 했어요. 그런데 다만, 리더 역할을 하려고 했어요. 그게 다른 거에요. 그냥 내가 이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런 리더가 되어야 했는데. 다른 리더가 되려고 했던 거죠.”

구자철은 당시 대회를 마친 뒤에 품었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고백했다. 

“2014년 월드컵이 끝나고 ‘나도 진짜 잘하고 싶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랬는데 안된 걸 그럼 어떡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국가 대표라는 책임감을, 그것도 월드컵 멤버로서의 책임감을 가졌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됐죠. 국민은 월드컵을 보면서, 축구를 통해 희열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풀고 즐기고 싶어해요. 그 5000만 국민의 대표로 제가 그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데, 오히려 실망감을 보여드렸는데, 그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그땐 못 가졌어요. 그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 2019년 국가 대표 은퇴를 선언한 구자철 ⓒ한희재 기자

구자철은 축구 국가 대표, 그리고 월드컵 대표 선수에게 주어지는 책임감과 사명감의 크기를 말했다. 자신이, 대표 선수로 그에 준하는 책임감을 인지하고 대회를 준비한 것인지, 돌아봤다. 스스로 태극마크를 반납한 구자철은, 어쩌면 현역 선수 중 누구보다 그 의미와 무게를 잘 아는 선수일 것이다.

“지금 환경이 축구 대표팀은 좋은 지원을 다른 종목보다 받고 있고요.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월드컵이라는 특수한 대회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많이 응원해주고 있어요. 월드컵 대표팀을 통해, 축구로 행복을 갖고싶어 하는데, 그에 대해 실망감을 안겨드린 것에 대해 충분히 그 분들에게, 그 당시 제가 월드컵 끝나고 나서 죄송하다는 말을 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 워낙 비판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가요?

“비판은 기억이 안 나요. 아예 보질 않았기 때문에. 근데 단지, 제 스스로한테만 얘기하는 거죠. ‘그래도 나 진짜 최선을 다했잖아. 준비하는 거부터 최선을 다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했잖아.’ 제 스스로만 패배를 인정한 거에요. 응원해준 분들한테 고맙고 죄송한 건 몰랐던 거죠. 그런데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언젠지 모르겠는데, 내가 그때 참 어렸구나, 경험이 없었구나, 국가대표라는 책임감을 갖고는 있었나? 그렇게 제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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